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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해야 할 파견업체 지원이 '애국'이라고?

[박점규의 동행] SK하이닉스 임금공유제와 '사내하청=불법' 판결

초기 방역 실패에 따른 대유행으로 온종일 메르스 뉴스만 나오던 지난 8일 아침, <조선일보> 1면을 장식한 노동 기사가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가 국내 최초로 직원 임금 인상분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임금 공유제'를 시행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직원 2만2000여 명이 임금 인상분의 10%를 내고 회사도 10%를 부담해 올해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 직원 4000여 명에게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올해 임금 인상률이 기본급 3.1%이기 때문에 협력사에 66억 원 정도가 지원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조선일보>만이 아닙니다. 경제지들도 메르스를 뚫고 신문 1면에 SK하이닉스 기사를 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국민일보> "SK하이닉스式 상생협력 임금공유 두루 확산돼야", <서울신문> "SK하이닉스 상생 노력 다른 대기업도 본받아야", <세계일보> "기업 상생에 희망의 불 밝힌 SK", <조선일보> "정규직 양보로 비정규직들 숨통 터준 하이닉스 勞使" 등 많은 언론이 사설까지 실었습니다.

<중앙일보>는 "하이닉스의 '임금 공유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라는 제목을 사설에서 "월급쟁이가 자기 몫을 남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SK하이닉스 노조의 '통 큰 결단'은 박수 받을 만하다"며 "상당수 대기업 노조가 '철밥통' 고수를 위해 사측과 대립하는 우리 노동 현실에서 이 또한 노사 간 상생 모델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고 썼습니다.

SK하이닉스 협력업체는 사내하청업체

SK하이닉스 노사가 돈을 모아 협력업체를 지원한다는데 괜한 트집을 잡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협력업체'라는 게 도대체 어디일까요? SK하이닉스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시달리는 부품사일까요? 아니면 SK하이닉스 이천과 청주공장 안에 있는 사내하청업체일까요?

10일 SK하이닉스 문유진 노사협력실장은 "임금 인상분 3.1% 가운데 셰어링(나눔)을 통해 조성한 약 66억 원은 5개 협력업체에 특별도급비 형태로 지급된다"고 말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협력업체(사내하청) 직원의 처우는 50∼60%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제조 라인이나 기타 직역까지 이를 좀 더 끌어올릴 때까지 상생 모델 운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SK하이닉스의 임금공유 대상 협력업체는 부품을 납품하는 1~2차 밴더가 아니라 같은 공장, 같은 제조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업체라는 것입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오는 16일 5개 사내하청업체와 협약식을 열어 특별도급비로 지급된 임금 인상분을 임직원 처우개선과 복지증진 외에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는다고 합니다.

▲하이닉스 임금 공유제를 다룬 9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PDF

SK하이닉스는 2011년부터 납품업체와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협약을 하고 있고, 매년 '동반성장 협의회 정기총회'와 '동반성장 데이'를 개최하며 기술과 정책 등도 공유하고 있다고 언론보도를 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반도체 장비 1차 부품업체에 케미칼 용기와 장비용 히터 등을 공급하는 2차 협력사 지오엘리먼트를 방문해 "2차 협력사 지원을 위한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상생결제시스템 도입을 통해 대금지급 체계가 개선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240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제조업의 원가절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청업체들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로 '원청업체의 이익추구를 위한 일반적 강요'(42.9%)를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이 외에도 △관행적 요구(20.8%) △기술지원 및 성과보상 없음(18.8%) 등의 이유로 원청업체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김모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가격을 원청업체로부터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적정 수익이 담보되지 않아 결국 임금 인상 및 투자 지연 등으로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원청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부품단가 인하 '갑질'에 대해 정규직 노사가 함께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임금공유제 대상은 부품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정규직과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생산직 노동자였습니다.


2014년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와 고용노동부 고용공시 현황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490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청소, 식당, 시설, 경비 등 비생산부문 비정규직을 빼면 생산 공정에는 4000여 명 정도입니다.

SK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냉동 보일러, 폐수 처리, 정비, 초순도제도 같은 반도체 부품의 섬세한 환경을 조정하거나 전기, 공조, 자동화설비 정비 등 공장 가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41, 42부는 지난해 9월 18~19일, 9월 25일 현대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정규직 소송에서 소송자 전원이 현대와 기아차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현대차와 하청업체(협력업체)가 맺은 계약의 목적이 '일의 완성'이 아니라 '노동력 제공' 자체이고, 하청업체가 고유기술, 자본, 전문적 기술, 특화된 업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 파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자동차 라인의 모든 공정이 ①일련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②정규직 업무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이루어지며 ③작업 결과가 누구의 작업인지 구별이 곤란하기 때문에 '합법 도급' 공정이 단 한 곳도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이닉스 사내하청, '시혜' 대상 아니라 '정규직 전환' 대상

하이닉스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 7월 21일 대전지방노동청은 하이닉스 청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적정한 도급 범위를 벗어나 근로자 파견 사업을 행한 것으로 근로자 파견 사업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파견 근로자 사용이 제한된 반도체 제조업의 보진 업무 등에 근로자를 파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이닉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불법 파견'이라는 판정이었습니다. 당시 청주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년 넘게 싸우고 나서 노사 합의로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2015년 SK하이닉스 이천과 청주공장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업무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작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정규직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지 않을까요? 반도체 생산 결과가 누구의 작업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요?

만약 SK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법원에 SK하이닉스의 정규직이라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면 현대나 기아자동차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요?

대법원에서 지방법원까지 최근 제조업 사내하청 판결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 4000명은 정규직이 '임금 공유제'로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용을 금지해야 할 대상이고,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대상입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불법 논란 사내하청 지원이 '최고의 애국'?

SK하이닉스의 임금 공유 소식이 전해지자 6월 1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SK하이닉스가 공생하는 노사관계, 상생하는 기업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이 시대 최고의 애국이라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 경제의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하청업체 간 임금격차가 큰 문제인데 이번 SK하이닉스와 같은 모범 사례가 많이 나와 노동계에 널리 확산되고 우리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무성 대표에게 묻습니다. SK하이닉스의 임금 공유가 대기업-하청업체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입니까?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라면, 제조업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은 합법입니까? SK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현대차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십니까?

불법 사업장을 '우수 기업'으로 발표한 이명박 정부

4년 전이었습니다. 2011년 7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명박 정부는 그해 12월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한국지엠 등을 '가이드라인 준수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기아자동차에 대해 "생산라인 중 의장(조립) 등은 원청 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하청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아 불법파견 관련 법적 분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사내하도급 노동자 처우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지엠에 대해서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1400여 명의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직접 고용"했고,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 성과급의 70%를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지급하거나 임금 인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수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 도급이고 심지어 '사내 하도급 가이드라인 우수기업'이라고 홍보한 한국지엠은 2013년 2월 28일 대법원에서, 2014년 12월 4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모든 노동자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 작업을 하고 있지 않아서 우수기업이라고 주장한 기아자동차도 2014년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468명 전원이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불법 사업장을 '우수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불법파견이 확실한 사업장을 '최고의 애국'으로 칭송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고공에 오른 이유…'법대로만 하라'고 외치는 노동자들

16일 SK하이닉스 임금 공유 협약식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것입니다. 바로 다음날인 17일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향후 추진 계획으로 '세대간 상생 고용', '원하청 상생 협력' 방안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SK하이닉스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19일에는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노동시장 개혁과제 중 정규직 비정규직 상생 촉진을 위한 보호조치 추진'을 논의한다고 합니다. 4년 전 이명박 정부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 SK하이닉스 사례를 포함시켜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두 명이 올라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사용을 금지해야 할 대상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전광판 위에 오른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금속노조

박근혜 정권은 상시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불법파견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실시 및 직접고용 명령이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습니다. 당선 이후 현대, 기아, 한국지엠, 쌍용차 등 완성차 4사는 물론 남해화학, 금호타이어, 한전KPS 등 소송을 제기한 제조업 사업장은 모두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는 단 한 사업장에서도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와 국민들은 공약을 지킬 의지도 없고, 비정규직을 보호할 능력도 없는 박근혜 정권에게 기대를 접은 지 오래입니다. 환자보다 병원을, 사람보다 이윤을 보호하려다가 이역만리에서 발병한 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져나가 창궐하게 만든 정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다시 묻습니다. 2005년 정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SK하이닉스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은 지금 합법입니까? 당신이 입이 부르트도록 비판하는 현대차 정규직 노사가 돈을 모아 사내하청업체에 특별도급비를 지급하면 애국이 된다는 것입니까?

파견법 19조에 따라 폐쇄해야 할 불법파견 하청업체를 지원하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애국'이라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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