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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포만 '오 과장'과 '장그래'가 손 잡고 간다"

[박점규의 동행]<52> 정규직 노조가 앞장 선 비정규직 노조 가입 운동

울산 미포만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20년을 숨죽이던 조선소 '장그래'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조선소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 간부들이 4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가입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조선소 역사상 처음입니다.

현대중공업 가공 소조립부 김태광(37) 대의원은 5월 7일 아침 6시 30분 회사에 도착해 정규직 대의원, 소위원들과 함께 대조립부 탈의실로 향했습니다. 대조립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피켓을 들고 노조 가입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한 정규직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2003년 현대중공업에 사내하청노조가 만들어졌지만 노조에 가입하면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을 외면한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청노동자라서 도와주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같은 노동자라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들도 집단적으로 노조에 가입했을 때 사측에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저희와 함께 싸운다면 현대중공업은 바뀔 것입니다."

"같은 노동자라서 함께 하는 것"

김태광 대의원이 솔직하게 얘기하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정규직 대의원들이 인사를 하고 탈의실을 나서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시간에도 노조 가입 캠페인을 했습니다. 울산공장 식당마다 정규직노조 간부들과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대대적인 노조 가입 운동을 벌였습니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전하문. 신호가 바뀔 때마다 400여대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공장을 빠져 나가갑니다. 김 대의원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간부들과 함께 퇴근길 노조 가입 캠페인을 합니다. 선거 때 쓰는 LED 차량이 공장 문을 돌며 노조 가입을 호소합니다.

"정규직이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함께 하는구나 하고 느꼈을 때 하청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겁니다."

2001년 정규직으로 입사해 올해 2월 노조 대의원으로 뽑힌 그는 요즘 몸은 고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노조와 현중사내하청지회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원청노조의 보호 아래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1987년 7월 5일 현대중공업(현대엔진) 노조 설립 이후 28년 만에 처음 벌어지는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노조가입 운동이 미포만을 조용히 흔들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에서 제작한 비정규직 하청노조 가입 독려 유인물. ⓒ박점규

1987년 노조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

현대중공업노조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하청노조), 지역의 노동사회단체가 함께 구성한 '조선하청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이 5월 4일부터 14일까지 현대중공업 안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하청노동자를 대상으로 노조 가입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하청노조가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청노조로 가입을 받습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나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2013년 10월 현대중공업 20대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노사협조주의 심판 연대회의' 소속 정병모 후보가 52.7%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12년 만에 민주노조가 부활한 것입니다.

1987년 7월 민주노조가 건설되고 1989년 128일 파업, 1990년 25일 골리앗 파업, 1994년 63일 LNG선 점거 파업 등 현대중공업은 민주노조의 선봉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은 조금씩 노사협조주의로 무너져 내렸고, 2002년 어용노조로 바뀌었습니다.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을 때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과 연대에 나서기는커녕 간부들이 농성장을 때려 부수고, 탄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결국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은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했습니다.

정병모 위원장은 12월 3일 노동조합 이·취임식에 하청노조 하창민 지회장을 초대했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나 용역 경비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10년을 살아왔던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초대장을 들고 당당하게 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하창민 지회장을 현대중공업 사장, 민주노총 위원장과 무대 위 의자에 나란히 앉게 하고, 임직원을 상대로 연설을 하게 했습니다. 정병모 위원장은 비정규직을 외면한 역사가 담긴 영상을 상영하며 과거를 반성했고 "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당연히 같은 권리, 같은 복지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노조 이·취임식에 초대받은 하청노조 지회장

하지만 현장을 바꾸는 일을 쉽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의 허리인 대의원들이 회사에 의해 95% 이상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민주노조가 추진하는 사업은 사사건건 제동이 걸렸습니다. 과거 집행부의 비리도 조사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조합원들을 믿고 2014년 임금과 단체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지난해 11월20일, 울산공장에서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의 극심한 방해와 어용 대의원들 때문에 몇 백 명도 모으기 힘들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잔업을 거부하고 진행한 '성실교섭촉구! 부실경영규탄! 2014투쟁 승리! 조합원 결의대회'에 3000명의 노동자가 모여들었습니다.

11월27일 20년 만에 벌어진 4시간 파업과 집회에는 무려 600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습니다. 하청노조도 파업에 함께했습니다. 고요하던 미포만이 노동자들의 함성으로 요동쳤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노조는 4차례의 파업을 벌여 임금과 단체협약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난해 11월 20년만에 벌어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 ⓒ박점규

조합원들은 2015년 1월 노조 대의원 선거에서 민주파 대의원들을 대거 당선시켰습니다. 100%에 가깝던 회사측 대의원들은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출마조차 하지 못했고, 예전에 후보로 나서지 못했던 민주파 대의원들은 85% 이상의 지지로 당선됐습니다. 전체 대의원의 7~80%가 민주파로 채워졌습니다.

2014년 임금과 단체교섭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생산 공정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의 손을 잡지 않으면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3년 투표 당시 1만8000명이던 정규직노조 조합원수가 지난해 1만60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1000명 이상이 정년퇴직으로 공장을 떠나고, 회사가 신규채용을 하지 않아 정규직이 점점 줄어듭니다. 10년 후에는 정규직이 없는 조선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중공업노조 정병모 위원장과 대의원들이 앞장서서 노동조합 집단 가입운동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하청노동자 연대해야 공장 멈출 수 있다는 깨달음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는 9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스에 질식해 죽고 철판에 깔려 죽고 바다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모두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지난 4월 28일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울산지역 노동자건강권 대책위원회는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통계자료를 기초로 현대중공업을 '울산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지난 1월 말 기준 현대중공업에는 577개 하청업체 4만783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2월 말 확인해보니 549개 업체 3만 8296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한 달 사이에 28개 업체가 폐업하고 2487명이 쫓겨난 것입니다.

노동조합에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까지 하청업체를 A~E 등급으로 분류했고, 6월부터 등급이 낮은 업체부터 폐업을 추진합니다. 폐업 대상이 무려 126개 업체에 달해 1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공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126개 하청업체 폐업 하청노동자 1만 명 쫓아낸다?

정규직노조가 앞장서서 하청노조 집단가입을 추진하는 '비정규직 동행'은 민주노조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2001년 광주의 캐리어노조는 정규직 대의원들이 노조 가입원서를 들고 다녀 하청노동자 460명을 노조에 가입시켰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규직 요구안만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고립시키면서 '비정규직 동행'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의 구사대와 함께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공장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로 인해 캐리어노조는 민주노총에서 제명됐습니다.

2004년 고용노동부로부터 127개 하청업체 1만 명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은 현대자동차에서는 2005년부터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와 함께 노조 집단가입을 받아 2000명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규직 대의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통합을 세 차례나 부결시켰습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을 통제하기 위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빼내 정규직노조에 가입시키는 '이상한 1사1노조' 운동을 벌였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어 지금은 기아차의 간접고용 노동자 4878명 중에 2700명이 정규직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동행'의 모범은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입니다. 노조는 2008년 9월 사내하청 노동자 341명 전원을 정규직노조에 가입시키고 매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지난 5월 1일부로 5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이제 공장 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명만 남았습니다. 조만간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 됩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다스지회도 2013년 7월 93명의 하청노동자를 노조에 가입 받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조 역사에서도 드문 '비정규직 동행'


하지만 세계 최대 '비정규직 조선소' 현대중공업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일은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지난해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가 공동으로 진행한 '사내하청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청노동자 78.7%가 노동조합에 가입할 의향이 있지만 75.7%는 해고와 블랙리스트가 두려워서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노조가입 운동을 시작한 첫날, 하청노조 간부와 통화한 어느 하청업체 관리자는 "부서장들이 업체 대표들 모아 놓고 그런 얘기(정규직들 접근 못하게 하라는 지시) 다하고, 생산과장들은 소장들 이렇게 저렇게 하고. 그 얘기를 했다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부서장이 하청업체 사장들을 소집해 노조 가입을 막을 것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청노동자는 노동조합에 하청업체 관리자가 업체 인원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가입원서를 흔들며 "노조 가입하면 안 된다. 업체 문 닫는다"고 협박했다는 제보를 했습니다. 그는 "정규직노조가 어떻게 보호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식당에서 벌어지는 노조 집단가입 캠페인을 보지 못하도록 업체별로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고 있다는 증언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2010년 3월 25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한 노조간부들과 공개된 조합원들이 속해 있던 하청업체들을 폐업시키는 방법으로 하청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킨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원·하청노조는 현대중공업의 불법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노조법 81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부당노동행위를 적극 찾아내 원·하청 관리자들을 고소할 계획입니다. 원·하청노조는 신고센터를 운영해 제보와 증거를 바탕으로 진상조사를 벌여 현대중공업의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방침입니다.

5월 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울산과 전국의 58개 법률·인권·노동·시민단체들이 '하청노동자 노조가입 불법탄압 감시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습니다. 거대 자본의 불법과 협박을 시민사회의 힘으로 막아내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용기와 정규직의 연대입니다. 5월 14일 오후 6시 10분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하청노조 집단가입 및 원·하청 공동투쟁 결의대회'가 열립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보호 아래 하청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5월30일에는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대의 버스를 타고 거제도 대우조선으로 향합니다. 세계 1위 조선강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생산직 어디에도 안전한 일자리는 없습니다. 함께 어깨 걸고 싸워서 고용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6월부터는 원하청 노동자들이 공동 임금 투쟁을 벌이고 공동파업에 나선다는 목표입니다.

지금, 전국의 조선소 '장그래'들이 가슴 졸이며 '미포만의 동행'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 과장과 장그래의 아름다운 연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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