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어떻게 가야할까? 우선 반드시 가야 할 대륙을 고른다. 그리고 그곳을 어떤 교통수단과 어떤 길을 통해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우리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에 방점을 두고 한국을 출발해서 그곳들을 경유하며 여행하는 경로를 탐색했다.
우리가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를 고른 이유는 이렇다.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시작된 서구문화의 기원이 되는 곳으로서 역사와 전통 및 수많은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이 집약되어 있다. 또한 아이들이 교과서나 책에서 접했던 친숙한 나라들이 많아서 이른바 현장 교육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더불어 세계에서 선진국들이 가장 많이 밀집된 곳이어서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며 어떤 태도와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개개인이 여유가 있고 행복할 때 남을 돕는 배려심을 더 가지게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서 그 사회의 삶의 만족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아프리카다. 우리가족 모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다. 각자의 이유는 다르더라도 인류역사의 근원인 아프리카를 찾아간다는 것! 수많은 야생의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행태와 습성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천 년 전부터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원시 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이런 단순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 아프리카는 절대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륙이었다. 특히 동물을 좋아하는 둘째아이는 모든 여행이 끝난 후에도 가장 좋은 곳이 아프리카였다고 말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중·남미에 방점을 둔 것은 그곳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호주는 에펠탑, 자유여신상, 오페라하우스 등 어떤 것이 있을지 상상이 가는 곳이다. 그러나 중·남미의 경우는 정보의 제약이 가져오는 한계일지는 모르지만 마치 신기루처럼 어떤 곳일지 선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신비로 둘러 쌓인 듯한 미지의 세계! 그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칠레와 쿠바다. 칠레에 가면 독재자 피노체트에 항거하다 마지막 시와 같은 연설문을 남기고 간 아옌데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고, 전 국민 무상의료와 전 국민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쿠바에 가면 체게바라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가고 싶은 이유가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더라도 어쩌겠는가? 항상 인생의 변화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시작되는 것을.
이렇게 가야 할 대륙을 정하고 나니 세부적인 경로를 탐색해야 했다. 세부적인 경로탐색 과정에서는 어느 구간을 항공으로 갈 것인지 어느 구간을 육로로 갈 것인지 아니면 해상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대륙 간 이동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비행기는 타지 않고 주로 버스와 기차 그리고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여행자금 사정상 비싼 항공료를 다 감당할 수 없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비행기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면 빠르게 이곳저곳을 많이 둘러볼 수는 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잠시나마 함께 호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나라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타고 느릿느릿 다니며 사람들도 만나고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고 그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이렇게 느리게 여행을 진행하면 때로는 계획하지 않았던 낯선 곳에 머물게 된다. 여행하면서 계획하지 않았던 낯선 곳과의 만남은 생각 이상의 상당한 감흥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낯선 곳은 무엇을 보게 될 것이라는 선입견 없이 우리의 오감으로 직접 만난 곳이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오롯이 우리의 감정으로 대면하게 된다. 그래서 그곳이 사소하고 소박하더라도 유명도시의 이름난 명물들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여행 중 우연히 들렀던 아름다운 도시들의 수수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그런 잔잔한 감동으로 여러 번 행복감에 빠져든 기억이 있다.
물론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낭패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면 꽉찬 계획이라는 짐을 어깨에 가득지고 가는 무거운 여행이 아니라 여행 자체를 즐기며 가볍게 여행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여행이므로 이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시 항상 잠자리와 삼시세끼 해결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매일 최소한의 정보를 필수적으로 점검하곤 했다.
이런 큰 여행의 경로와 우리 여행의 기조대로 가능한 육로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을 고민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북경을 거쳐서 몽골의 광활한 초원을 보고 러시아로 올라가 약 3000만 년 전에 형성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3월 중순의 몽골과 러시아는 봄이 다가오기는 해도 상당한 추위와 강한 체력이 필요해 보였다. 긴 여행에서는 초반 컨디션 조절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상당한 추위와 저질 체력으로 감기 등의 병치레를 한다면,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자칫 피곤함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또한 평소 운동과는 거리가 먼 우리와 어린 두 딸들을 데리고 강행군을 한다면 버티지 못할 듯 보였다. 그래서 날씨도 따뜻하고 우리와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이 유사한 동남아를 경유해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무난하고 평범한 경로로 변경했다.
이제 여행경로에 따른 대략적인 일정을 정해야 했다. 대략 동남아 1달, 유럽 3달, 그리스․터키 1달, 아프리카 2달, 남미 4달, 중미 및 미국 1달로 정하였다. 약 11개월의 일정이다. 그러나 이런 큰 줄기의 일정도 여행하면서 바뀌기 일쑤다. 여행 동안 갑자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경로를 변경해야 한다면 여행 전 세운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부담도 줄이고 가볍게 여행하기 위해 1년 여행 계획 중 국내에서 준비한 것은 단 두 가지! 한국을 출발해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편과 한 달 후에 유럽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편을 예약했고 유럽에서 렌터카로 3개월간 돌아다닐 요량으로 렌터카 예약을 미리 해 두었다. 그 외에 숙박과 교통 및 이후 일정에 따른 준비는 모두 현지에서 직접 해결하기로.
우리의 실제 이동경로를 표로 정리해 보았다. 큰 줄기는 한국을 출발해서 동남아, 유럽, 그리스․터키를 지나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와 중미를 거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초의 취지대로 대륙별 이동은 비행기로, 대륙 내에서의 이동은 주로 버스와 자동차를 이용하였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 3개국만을 주로 버스로 여행하였다.
유럽에서는 렌터카를 타고 독일을 출발해서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태리 순서로 약 3개월간 여행하였다.
그리스는 육로가 아닌 해상으로 배를 타고 징검다리를 건너듯 여러 개의 섬을 거쳐 터키로 들어갔다. 터키에서는 모두 버스로 이동했다.
그 후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이집트에서 잠시 머문 후 바로 남아공으로 내려갔다. 계획은 이집트에서 순차적으로 남쪽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여행 당시 에볼라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에 위험경보가 많아서 바로 남아공으로 내려가서 나미비아, 보츠와나를 렌터카로 한달간 여행하였다. 당초 계획은 아프리카를 대략 2개월 정도 여행할 예정이었으나 아프리카에서 약 1.3개월 정도 머물고 남는 기간을 남미와 중미에서 더 보내게 되었다.
남아공에서 브라질로 건너가서 페루로 이동, 페루에서 한 달 간 한곳에 정착하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본격적인 남미여행은 페루를 출발해서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를 거쳐 쿠바를 가기 위해 콜롬비아까지 이어졌다.
중미에 있는 쿠바와 멕시코 역시 주요 교통수단은 버스였고, 멕시코를 지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에 잠시 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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