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두주자, 한국외대도 불안한 구조개혁
지난해 12월 26일 한국외대 총학생회와 학생들은 대학 본부 행정팀 사무실에서 무기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가 1주일 정도만에 농성을 풀면서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이유는 성적 평가방식의 변경, 즉 한국외대가 2학기 종강 이후 성적평가 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변경하자 학생들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그 이전에 한국외대는 12월 22일 학생복지처장 명의로 "2014년 2학기(계절학기 포함)에 기존의 학부 성적평가 방식을 모두 상대평가로 변경한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학생들에게 보냈다. 그러면 학생들은 2학기부터 교직과목, 군위탁생, 외국인학생, 대원생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강의 성적을 상대평가로 받는다. 문제는 기말고사까지 모두 끝난 방학 기간에 성적 평가 방식을 모두 상대평가로 바꾸겠다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이다.
한국외대는 여러 면에서 특수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가진 경쟁력이 있는 대학인데도 이 같은 무리수를 두야할 정도의 긴박감이 구조개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앞서 지적한대로 실제로 구조개혁 지표에 있어서 대학간의 점수차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야할 상황인 것이다.
대학의 입장이야 부실대학으로 선정되면, 학자금 대출, 정원감축 등에서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겠지만 학생들은 사전에 충분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 통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새해에 들자마자 학생들은 학교정책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였고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총학 비대위)와 학생 80여명은 1월 2일 오전 11시 '신년하례식 평화시위'를 벌였고 학생들은 '대학의 주인',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세요', '학생들은 왜 항상 통보받아야 하나'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가처분신청에는 서울캠퍼스 학생 299명이 참여했다.
살인을 더 많이 저질러도 안전한 나라라니?
구조개혁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구조개혁 평가 내부의 숨겨진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조항들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즉 외형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내부를 보면 조삼모사격의 조항들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정도 시급하다.
대표적인 것이 구조개혁 평가(1단계 지표) 지표 가운데 학사관리다. 학사관리에서 학생평가가 불합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구조개혁평가(1단계 지표) 현황을 보면, 아래와 같이 구성돼 있다.
문제는 학사관리 가운데 학생 평가이다. 학생평가는 그 동안 대부분의 대학들이 학생들이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웬만하면 학점을 높게 주는 방향으로 학사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학점인플레이션이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학점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교육부가 이를 조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A·B·C·D·F 등의 학점이 가급적 정규분포에 가까운 형태를 구성함으로써 학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는 취지이고 이것은 대학교육 정상화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A등급이 30%, B 등급이 30%, C등급이 25%, D 등급 이하가 15% 등으로 학생을 평가하라는 식이다. 이렇게 해야 학점을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학생평가의 세부 평가 비중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적 분포의 적절성의 가중치는 1에 불과하고 제도 운영의 가중치는 이의 3배를 두고 있다. 희한한 말이다.
즉 제도를 가진 것이 실제로 학생평가를 정규분포에 가깝게 적절히 수행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실제로 평가한 것보다도 제도만 잘 갖추고 있으면 더 높은 점수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만약 사회 안전율(Socil Safety rate)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교도소만 있다면, 살인범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여도 그 나라는, 교도소의 역사가 길지 않더라도 살인이 없는 나라보다도 더 안전하다고 평가한다는 말이다.
취업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최근 3년간의 성적부여실적(1)보다 성적부여를 위한 관련 제도(3)에 가중치를 높게 책정했다는 말이다. 사실 학생평가에 있어서 거대 대학들에서는 평가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교육일선에서 학생수가 소규모 대학일수록 학점을 부여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령 15인 정도의 강의에서 교수 - 학생 접촉빈도도 높은 상태에서 A 학점을 3∼4명에게만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 학점으로 장학금과 기숙사 입사, 각종 혜택 등이 연계되어있을 경우은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대학과 같이 다양다종의 언어가 많은 어문계열은 10여명 정도의 수업이 많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상대평가를 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특히 아프리카어, 미얀마어과나 몽골어과 등 특수언어들이 많은 경우에는 5명의 학생 수강생이 있어도 상대평가를 하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대학들은 학생들의 취업에 불리함을 알고 있지만, 그간 정부정책에 부합하여 실제로 엄정하게 학점을 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 대학보다는 역사가 오래되어 상대적으로 관련제도만 잘 확립되어 있으면서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의 비중이 높았던(성적인플레이션이 된) 대학들에게 매우 유리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평가가 대부분 실적을 반영하는 지표들인 만큼 본 지표의 가중치도 반드시 실적이 가중치가 높도록 개선해야만 한다.
부실대라니? 누가?
사실 부실대는 부실교육의 가능성이 높은 대학을 말하는 것이다. 학생수가 많다고 좋은 대학이 아니다. 시청률만 높다고 좋은 드라마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나아가 부실대학은 학생수가 적은 곳이 아니라, 학교 수용능력에 비해 학생수가 많은 곳을 말하는 것이다. 일부 언론의 대학평가에는 "콩나물 지수라는 것이 있어서 교육의 질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학생 수가 많은 수도권 대학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교수신문> 2011.6.21)
과밀 대학교의 대표적인 예로 재학생충원율이 120%를 초과한 대학은 28개교로 모두 수도권대학이고 그중 대표적인 과밀 대학이 성균관대(충원율 136.6%), 연세대(132.9%)로 과밀현상을 빚어 교육여건이 악화된 상태이다.(<서울신문> 2011.6.17)
또 교육 부실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서 학점 인플레이션 상황을 보면 대부분 지방 소재의 사립대학들이 관리를 보면 학점 관리가 엄격한 것을 알 수 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20여개의 대학들 가운데 서울 지역은 불과 3개에 불과하다. 수도권 지역은 4개 나머지는 모두 지방 소재이고 이들 가운데 목포해양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립대학들이다. 국립대의 성적 인플레이션이 사립대보다도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국립대는 일종의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이기도 한 모양이다. ([표 ➀] 학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대학들의 졸업생 평점평균 )
나아가 2013년 서울의 주요대학 A학점 비율은 한국외대가 75.8%, 서울대가 61.7%, 이화여대가 59.5%, 연세대가 52%, 고려대가 48.1% 등으로 거의 주요대학들의 A학점 비율은 거의 60%에 달하고 있다([표 ②] 참조). 도대체 이들 대학들, 특히 서울대에서 왜 A학점을 60%나 주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물론 외대의 경우는 특수언어 학과가 많아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외대 내에서도 그런 예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 A학점은 과장해서 말하면, 일종의 '별따기' 같이 어려웠다.
누구를 위한 구조개혁인가?
구조개혁에 있어서 학생평가 문제는 당장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평가지표를 만들 때 아무런 준비나 시뮬레이션이 없이 행해지는 법은 없기 때문에, 이 지표는 결정되기 전에 분명하게 조정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는 자체적인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수도권대학들에게 유리하게 가중치가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 구조개혁을 전면적으로 폐기하라고 요구하기는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사평가가 이 같은 꼼수로 진행된다면 구조개혁 자체의 취지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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