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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신입사원에게 '씨' 호칭 쓰면 무례?

[복지국가SOCIETY]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3번째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후배

해마다 1월이면 사람들이 새해 계획과 다짐을 하며 올해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런 막연한 희망조차 원천적으로 거부당하고 절망으로 새해를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지난 연말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났던 한 후배가 그렇다. 올해 35살인 그 친구는 이번 1월 말이면 3번째로 직장의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외국어를 잘 하고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큰 키에 호감이 가는 인상을 지닌 그 후배는 대학 다닐 때는 자신의 진로를 항공기 승무원으로 정하고 일찍부터 필요한 준비를 했었다. 그러다가 원하던 항공사 입사시험과 면접시험에 모두 합격하고, 입사 서류를 준비하던 중에 건강검진에서 허리 디스크가 발견되어 다 잡은 기회를 접었다고 한다.

후배는 치료를 위해 2년을 보낸 후 계약직 비서로 30살에 첫 직장에 들어갔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계약 만료 후 정식 직원 채용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기에 후배는 당시 성취감과 기쁨으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정규직 채용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되었고, 그 실망감으로 1년을 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계약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고, 지금도 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이 서른에 어렵게 시작한 첫 직장부터 그동안 일했던 직장들은 모두 2년짜리 계약직 일자리였다. 이제 신입사원 역할을 하기에는 나이도 어느 정도 들어 버렸고, 특정한 분야에 의미 있는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올해도 다시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신년을 맞았다. 고용 안정에 대한 보장이 없는 비정규직 직장인이기에 결혼은 생각지도 않고 있고, 연애도 망설여진다고 했다. 후배의 새해 소망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정규직이 되어 잘릴 걱정 없이 열심히 일을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경력 2년 차 비정규직, 신입사원에게 '씨' 호칭 썼다가 혼나는 현실

같은 직장 내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피고용인들 사이에도 '갑-을' 관계의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경력 2년 차인 비정규직 사원이 신입으로 들어온 정규직 사원에게 ○○ 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가 상사로부터 호된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비정규직 사원이 근무연수도 더 길고, 나이도 더 많았지만 정규직 사원에게 비정규직이 '씨' 호칭을 사용한 건 무례하고 '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당연히 그런 지적을 받았던 비정규직 근로자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겠지만,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그런 정도의 차별이나 감정상의 문제 같은 것은 전혀 고려되지도 않는 분위기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계층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갖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육 참가와 사내 모임 활동, 회식에서의 배제, 호칭 문제 등 비정규직 근로자가 겪는 차별은 다양하고도 절박하다. 같은 직장의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지만, 명절 선물의 차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차 한 잔 마시는 데서부터 보너스 지급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처우를 받는다. 드라마 <미생>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 만성화된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미생>에서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온 비정규직의 심리적인 문제를 잘 그려낸 부분은 시청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냈다.

ⓒch.interest.me

비정규직 노동3법이 발효된 2007년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급증해서 지난해 8월 기준 통계청 공식 수치로 607만 명이다. 노동조합에서는 약 8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후 비정규직은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1.7배까지 커졌다. 법률에서 정한 2년 이상 근무 후 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은 10%도 안 되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이 당사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별 호응도 없고, 실제로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런 경험과 현실상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적게는 전체 근로자의 32%에서 많게는 50%나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노사 간의 이야기로만 한정될 일이 아니다. 이는 전체 국민의 삶에 관한 문제다. 드라마 <미생>이나 전지전능한 비정규직 미스 김을 주인공으로 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국민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비정규직의 슬픈 삶이 우리네 주변에서 너무나 보편적이기에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비정규직 양산할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는 원하는 경우 현행 2년에서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해서 총 4년으로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장 기간을 포함하여 총 4년이 지났을 때,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면 근로자에게 이직수당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회사가 비정규직을 사용 후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계약직 근로자에게는 지원금을 통해 구직활동을 돕게 하자는 취지이다.

고용주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초단기 계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경우 계약 갱신 횟수도 2년에 세 차례로 제한된다. 지금은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만 퇴직금을 주게 되어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3개월 이상 일하는 경우에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또 정부의 대책에는 현재는 32개 업종에서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지만, 55살 이상 고령자의 경우에는 파견 허용 범위도 더 확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철도, 항공, 선박 등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직종에는 비정규직의 사용을 제한하고, 경영상 해고(정리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마련해서 해고를 할 때 '가이드라인'으로 삼도록 하는 내용도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포함되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대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기업의 정규직 채용 문화를 확산하고,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확대하는 등 고용의 형태와 유형별로 고용안정성을 높인 맞춤형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비정규직 대책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고, 향후 노사정 위원회에서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정부의 "안"일 뿐이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협상을 벌이고 3월까지는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도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개최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상시 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화',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3대 원칙으로 밝혔었다.

박 대통령은 "노사정 대표들께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하지 않고는 정말 우리나라에 지속가능한 발전은 없다는 인식들을 하고 계신다. 윈-윈(win-win)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사회적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물론 좋은 말들이고, 실제로도 그 말대로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대타협을 이루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더 이상 양보할 것도 물러설 곳도 없는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체 무엇을 더 내 놓아야 할지, 내 후배와 <미생>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자 노동계는 반발했다. ⓒ연합뉴스
1월 말로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또 다시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을 걱정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 안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35살의 그 후배는 비정규직 대책 안에 의해 기간이 연장되면 2년 마다 직장을 구하는 번거로움이 한 번 줄어드는 대신, 앞으로 4년간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므로 39살이 되었을 때 또 다시 비정규직의 새 직장을 구해야 한다. 정규직이 되어 일을 해보는 것이 소원인 후배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조치이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반대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과 통계 자료들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은 실제로 젊은 노동자들을 더 긴 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기간제로 머물도록 할뿐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심지어는 앞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남은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고착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55세 이상 노동자에 대한 파견 확대 역시 고령 노동자들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며, 심지어는 청년 일자리를 고령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고령의 노동인구는 해마다 50만 명씩 급속하게 늘고 있다. 55세 이상 노동자에 한하여 파견업종을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이들 노동자들은 이제 60세를 넘어 70세까지 평생을 계속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하게 될 것이 눈에 선하다.

복지국가의 비정규직 해소 정책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MF 체제를 수용한 이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와 차별은 점점 더 심화되어 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차별과 양극화,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격차와 양극화는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소비의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50%가 비정규직이어서 정규직에 비해 월 90만 원 정도의 월급을 적게 받으니, 국가 전체적으로 임금으로 1차 재배분 되어야 할 엄청난 돈이 재벌 대기업의 배당 이익과 사내 유보금으로 쌓여가고 있다. 이런 식의 구조화된 양극화는 우리나라 경제의 활성화와 내수 진작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복지국가 방식의 비정규직 대책은 첫째, 노동 보호를 위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이제 비정규직의 문제는 더 이상 고용 차별의 문제나 인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별도의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4년으로 사용기간만 연장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노동의 유연안정성 중에서 기업에게 유리한 유연성만 강조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 강화는 다양한 방법의 정규직화 외에는 답안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정규직화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그 외에는 모두가 편법이고, 이런 편법은 어떤 경우에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정규직이 소망인 근로자들에게 해답이 되는 대책은 '비정규직을 단계별로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양산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의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그야말로 "길로틴(기요틴)"으로 돌파하고 나가야 할 혁파의 대상이다.

복지국가 방식의 두 번째 비정규직 대책은,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의 확대를 통한 사회안전망 확충 정책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기업 내부의 노사관계 문제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가 원-하청관계의 정상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듯이, 비정규직의 문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더불어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편적 복지 확대 정책과 직접 고용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좋은 일자리는 공공부문의 5%와 대기업의 5% 등 전체적으로 10%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공공부분의 일자리가 적어도 전체 고용의 20-30%를 차지한다. 그렇게 공공부문이 고용을 많이 하는 이유는, 한편에서는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 서비스를 정부로부터 누리게 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발전이나 경쟁의 심화 등으로 인해 상시적으로 기업들이 직면하게 되는 구조조정의 부담을 정부가 완화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비정규직이 아니라도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우와 조건이 좋은 공공부문 일자리와 민간부문 일자리가 경합해서 비정규직의 질 낮은 일자리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로 전환되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도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정규직을 늘리는 모범을 보이고,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관계 문제를 넘어 국가의 경제정책으로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재원을 투입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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