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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홍콩, 스코틀랜드, 한반도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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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홍콩, 스코틀랜드, 한반도의 공통점은?

[좋은나라 이슈페이퍼]<54> ‘정치계획’으로서의 민족

2014년 국제무대 뉴스 가운데 우크라이나, 스코틀랜드, 홍콩은 서로 다른 이유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서구와 러시아 사이의 ‘신냉전’의 원인이자 현장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올 2월 우크라이나의 마이단 혁명을 통해 등장한 정부는 유럽연합과의 친밀한 관계를 지향하는 반면, 남부 크림 반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합병되었고 동부 친 러시아 지역에서는 내전의 상황이 전개되는 중이다. 9월말부터 벌어진 홍콩의 민주화 시위 역시 서구와 중국의 관계를 냉각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국은 홍콩에서 온전한 자유 민주주의의 경험을 허용하는데 여전히 주저하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 세력은 2017년 치르는 선거부터 자유로운 입후보와 선택이라는 기본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서구 중심의 세상을 만드는 데 역사적으로 기여한 영국 통합왕국(United Kingdom) 역시 지난 9월 18일 거행된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를 통해 지도에서 사라질 뻔 했다는 점이다. 독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결과로 영국은 유지되었지만 미래의 스코틀랜드 독립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홍콩, 그리고 스코틀랜드는 21세기 민족의 개념과 현실이 겪고 있는 변모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민족은 국제무대에서 생존할 수 있는 규모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 민족 자결 원칙이 공표되면서 점차 작은 규모의 민족도 국가를 가지려 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와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은 19세기와 20세기와는 달리 기존 민족을 넘는 지역통합이라는 흐름과 민족을 나누는 분리주의적 성향의 소규모 민족주의 운동이 동시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론 발칸 반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종족 중심 민족주의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홍콩, 스코틀랜드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21세기적 현상은 ‘정치계획’(political project)으로서 민족의 개념이다. 이러한 거시적 변화에서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과거의 뿌리가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는 것 못지않게, 미래의 공통된 계획이라는 청사진을 통해 민족의 해체와 결합이 이뤄지는 시대가 왔다는 말이다.

정치단위가 만든 민족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남짓하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독립 국가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국 시절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민족성을 인정받고 하나의 공화국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중국의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만큼이나 형식적인 공화국이고 민족일 뿐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탈냉전의 기류를 타고 얼떨결에 독립 국가로 출발했지만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했다. 

우선 러시아계 인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크림 반도와 동부 지역이 영토 안에 있었으며, 우크라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중부와 서부가 있다고 하지만 이들도 반 러시아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서로 매우 유사한 슬라브 언어이며, 문화적으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매우 근접하고 친화적이다. 반대로 발트 3국은 1990년대 이미 반 러시아적 선택을 통해 유럽에 통합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05년 유럽연합 가입에 성공하였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문화적으로 가까운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득이 되는 유럽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2014년의 마이단 혁명은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 가치로 하는 유럽연합을 지향하는 세력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국익 차원에서 크림 반도 합병을 주도하고 동부 러시아계를 자극하여 혼란스런 상황을 초래했지만 궁극적으로 위기와 대립을 통한 결집력 강화로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에 민족을 선사하는 셈이다.

홍콩의 사례도 하나의 행정구역 또는 정치단위가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유사하다. 홍콩은 특별행정자치구가 공식 명칭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표현이 잘 보여주듯이 독특한 정치 및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단위다. 홍콩은 주지하다시피 1842년 아편전쟁의 결과 영국에 빼앗긴 영토이며 1997년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중화민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홍콩은 19세기와 20세기 약한 국력으로 상실했던 영토의 일부를 우여곡절 끝에 되찾아 온 셈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2017년으로 예정된 선거의 자유에 관한 대립이다. 중국의 정부는 공산당이 선별한 후보자를 놓고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홍콩의 민주 세력은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는 가운데 자유롭게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종족적 의미에서 홍콩인은 크게 보면 한족(漢族)이다. 홍콩 민주화 운동이 티베트나 위구르 족의 독립 및 자치권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홍콩인은 광둥인(廣東人)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일상 언어도 보통화가 아닌 광둥어 생활권이다. 게다가 150년이 넘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 홍콩 민주세력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온전한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희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경제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홍콩은 실질적 독립을 획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외세로부터 되찾아왔더니 내부적으로 들고 일어나 공산독재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셈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잉글랜드와 하나의 통합된 왕국을 형성하여 UK(United Kingdom)라는 이름으로 19세기의 팩스 브리타니카에 동참했다. 잉글랜드가 축구경기를 하면 스코틀랜드인들은 상대팀을 응원한다. 이처럼 둘의 관계가 항상 절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일랜드가 독립해 나갈 때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통합왕국을 유지할 정도로 정치적 공동체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스코틀랜드에서 독립적 성향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부에서는 북해 석유 생산이 스코틀랜드의 자원으로 독립 주장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무엇보다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블레어 시절에 시행한 분권(devolution) 정책이다. 스코틀랜드는 영국과 구분되는 많은 제도와 법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는 통합왕국을 유지시켜 준 자율성의 측면이다. 그러나 1997년의 분권은 스코틀랜드에 독립적 의회와 이에 기초한 정부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정치적 대의제도가 스코틀랜드의 독립 성향을 적극적으로 자극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부상과 집권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민족은 정치계획

우크라이나, 홍콩, 스코틀랜드의 세 사례는 각각 커다란 차이점을 드러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독립 국가이지만 너무나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직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크림 반도의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내전이 진행 중인 동부의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와 서부가 지배하는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국이다. 반면 마이단 혁명을 주도한 우크라이나인과 현 정부는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한다. 달리 표현해서 우크라이나 내전의 대립 구도는 과거에 뿌리를 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족의 갈등이 아니라 서구식 민주주의/시장경제의 지향성과 러시아 제국의 재건에 동참하려는 정치 계획의 경쟁과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민족은 이러한 계획을 추동하는 과정과 그로 인한 투쟁의 경험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고 하겠다.

홍콩도 비슷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족적 관점에서 홍콩이 하나의 민족을 형성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홍콩이란 식민지 도시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홍콩은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 보았듯이 홍콩 기(旗)를 앞세우고 국제경기에 참여할 뿐 아니라 독립적인 정치 및 경제 체제를 보유하고 있다. 홍콩 시민의 주장은 준 국가적 단위에 적합한 준 민족적 지위를 인정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홍콩 시위에서 민족의 맹아(萌芽)를 관찰할 수 있는 이유다. 보다 노골적으로 대만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드러나고 있다. 특히 민주화 이후 민진당이 독립적 성향을 대변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지난 3월 대만에서 대학생들이 3주 동안 의회를 점령하여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발언권과 결정권을 주장한 운동은 공산당 체제가 있는 중국과는 다른 공동체의 미래를 계획한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 주었다. 대만인들은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대만의 미래를 중국에 엮는 데 대한 우려를 표명한 셈이다. 2016년으로 예정된 대만의 총통선거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우크라이나와 홍콩은 모두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하는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경우, 영국은 민주주의의 대명사가 아닌가. 실제로 주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이 다수를 차지했다면 영국의 통합왕국은 붕괴하고 스코틀랜드는 독립의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선거의 결과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혼란을 초래하는 푸틴의 러시아나 자유로운 선거 자체를 거부하는 중국과 영국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분리주의 민족의 탄생 기제는 민주 영국에 위치한 스코틀랜드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여기서도 독립운동이 지향했던 바는 체크 치마에 파이프 오르간을 부는 전통의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석유 자원을 통해 시민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치계획으로서의 스코틀랜드 민족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이 발전함에 따라 소규모 지역이 독립을 하더라도 EU의 커다란 틀 속에서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 인구 500만의 스코틀랜드는 덴마크, 핀란드, 슬로바키아 수준이며 200만 전후의 슬로베니아나 발트3국보다 크다. 스페인의 카탈루냐는 독립을 추진하는 또 다른 세력이다. 이번 스코틀랜드에서 파운드화의 지속적 사용이 문제가 되었지만, 카탈루냐의 경우 유로라고 하는 이미 다국적 화폐를 계속 사용하면 그만이다. 스페인 중앙정부가 이런 분리주의를 막아서겠지만 카탈루냐의 미래 정치계획이 어떻게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사례 가운데 종족적 성격이 가장 강한 경우는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 등이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민족으로 규정되었고 지칭되어 온 과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에서조차 중요한 것은 과거보다 미래다. 우크라이나와 홍콩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민족이란 공동의 역사와 문화와 관습에 기초한 ‘상상의 공동체’임과 동시에,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청사진과 계획이라는 사실을 21세기의 다양한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의 두 민족?

내년이면 분단 70년을 맞아 3세대 시간대에 가까워진다. 한반도에는 과거에 탄탄한 뿌리를 둔 하나의 민족이 존재한다. 실제로 남북은 장기간의 분단과 단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높은 언어, 문화, 종족적 동질성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나 브라질과 같은 다민족 사회는 물론 심지어 한족(漢族)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 종족 공동체 중심의 중국보다도 그 동질성은 더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에서 살펴본 중국 사례에서 광둥인과 베이징인은 서로 언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홍콩과 같은 민주화의 시도가 언어라는 문화적 차이점을 활용하여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강한 종족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단절과 서로 다른 방향으로의 사회 전개는 한반도에서도 커다란 변화와 차이를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고 이미 상당 기간의 공고화를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독재체제와 개인숭배 사상은 단순한 차이에 그치지 않고 강한 이질감과 거부감을 초래한다. 국가 정체성과 민족주의의 상호관계 연구에서는 이미 ‘대한민국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와 민족을 포괄하는 개념이 등장하여 활용되고 있다. 이 민족주의에서는 북의 동포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의 국적과 생활여건에 기초한 민족의 정의가 사용된다. 이 새로운 민족에는 당연히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선진화’, ‘복지한국 건설’ 등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열망이 담겨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족류성(族類性)/족류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한반도에 있는 하나의 족류 공동체가 ‘대한민족’과 ‘조선민족’의 두 민족으로 나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도 있다. 민족이란 무엇보다 미래를 향한 정치적 계획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이상의 분석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한반도의 주민이 두 개의 민족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2개의 정치계획으로서의 민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둘의 재결합은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이라고 하는 하나의 족류이자 종족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두 개의 민족으로 존재하며, 두 개의 국가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결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흡수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독일통일의 경우 동독이 서독의 체제에 그야말로 녹아들어갔다. 요즘 ‘통일대박’의 담론은 독일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 1) 정치제도에서 서독은 각 주의 자율성이 매우 높은 연방 국가였기 때문에 동독을 5개의 새로운 주로 흡수하는데 제도적으로 수월했다는 사실 - 이런 의미에서 서독의 동독 흡수라기보다는 16개 연방국가의 5개 새로운 주의 가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 2) 통일비용의 측면에서 서독은 발달한 복지국가체제를 동독에 그대로 적용했고 또 화폐교환정책에서도 커다란 비용을 기꺼이 치렀다는 사실, 3)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동독의 주민들은 서독과 지속해서 교류했고 그에 따라 서독의 정치계획에 동참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 등을 모두 무시하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홍콩, 스코틀랜드 등의 사례가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실은 그것이 지정학적 선택이 되었던(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우크라이나), 정치적 제도에 관한 갈등이건(민주주의와 공산당 독재), 또는 정책적 방향이 문제가 되건 간에(석유자원과 복지국가), 가장 기본적인 공통의 정치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민족은 분리주의적 원심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지정학적 변화와 정치적 진화로 결정되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정치계획으로서 하나의 민족을 만드는 과제가 남아있다. 우리는 왜 함께해야 하는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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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택.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 대한민국 민족주의” 강원택 편. 『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 정치』서울: 동아시아연구원, 2007.
(2) 김인중. 『민족주의와 역사: 겔너와 스미스』서울: 아카넷, 2014.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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