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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산 입에 밥 넘기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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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산 입에 밥 넘기며 울었습니다"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11>]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생명평화를 위한 도보순례 8일째. 걷기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담양에서 장성을 거쳐 고창에 이르는 길입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호명하는 사제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물기를 머금고 떨립니다. 그리고 침묵, 드디어 큰 절을 올리고 출발합니다.

기도, 명상, 책읽기, 글쓰기, 대화.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사제들의 걷기는 분명 익숙지 않은 것입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그런 몸뚱이를 움직여 걷겠다는 것은 바라던 바를 이루기 위한 몸의 기도이고, 무언가 새로운 지경에 이르러 깨닫기 위함이고, 무엇보다도 호명한 이들에게 속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인가, 앞서 걷는 동료 사제의 굽은 등 위에 매달아놓은 노란 천에 새겨진 ‘미안합니다’라는 까만 활자가 오늘따라 눈에 새롭게 들어옵니다. 활자중독자들인 저희에게 그 활자가 낯설게 보인다는 것은 그 의미가 비로소 나에게 온다는 신호이기에 피곤한 눈을 부라려 집중해봅니다.

‘미안합니다.’ 무어가 그렇게도 미안해서 그것을 등짝에 붙이고 걷는가. 왜 미안해서 그것을 깃대에 매달아 높이 들고 걷는가. 그대들을 구조하지 못해서? 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지 못해서?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이들을 설득하지 못해서? 우리 사회를 아직 한 치의 변화도 못 시켜서? 과연 그런가? 그걸 내가 왜 그대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어지러운 상념들로 무릎에 힘이 빠지고 걸음걸이가 흔들릴 때, 앞서 걷던 늙은 사제의 한 마디 혼잣말이 나를 깨웁니다.

‘아! 정말 아름답다.’

그때서야 끝없이 펼쳐진 황금 들녘이 눈에 보이고, 눈부시도록 높고 파란 하늘이 보이고,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멀리 한가로운 이름 모르는 마을이 보이고, 유유히 흐르는 황룡강 지류 물줄기가 보이고, 끝없이 이어진 완만한 노령산맥이 눈에 들어옵니다. 또 우리 도보행렬을 눈으로 좇는 마을 어귀 장자의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도 편안하기만 합니다. 그때서야 그 늙은 사제의 등짝에 매달아놓은 ‘미안하다’라는 말의 의미가 나를 아프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황금들녘을 나만 혼자 봐서 미안하구나. 이 따스한 가을 햇볕을 나만 쬐어서 미안하구나. 저 아름다운 강의 흐름을 나만 바라보니 미안하구나.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린 감들을 나만 볼 수 있으니 미안하구나. 이 아름다운 가을 속을 나만 걸으니 정말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그게 미안하구나. 내가 살아서 이런 호사를 누리니 그게 정말 미안하구나.”

“오늘 아침 호명했던 2학년3반 너희들이 보고 느껴야 할 이 아름다운 가을을, 살만큼 산 나만 보고 느끼는 것이 왜 이렇게 미안하냐!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미안하고, 무릎의 통증을 느끼는 것도, 입이 타서 목구멍으로 물을 넘기는 것도, 그것조차 할 수 없는 너희들에게는 미안한 것이었구나. 그게 난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구나!”

휴식시간. 잠시 길가에 앉아 쉽니다. 첫날부터 걸은 한 사제가 신발 끈을 풀고 발을 꺼내 양말을 벗으니 물집에 피가 비칩니다. 그 부르튼 발을 주무르고 그는 다시 양말을 신고 더 여물게 신발 끈을 조입니다. 힘들게 일어서며 그는 또 걷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묵주는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가고, 그의 조용한 기도소리가 뒤에 있는 제게 어렴풋이 들립니다. 그 기도소리는 분명히 흐느낌에 가깝습니다.

그 사제가 설마 물집 잡힌 발이 아파서 흐느끼겠습니까? 아침에 기도하며 호명했던 그 어린 학생들이 이 좋은 가을을 경험하지 못함을, 나만 이 좋은 가을 속을 걷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묵주를 꾹꾹 눌러 돌리며 그들을 위해 먼 산을 바라보며 떨리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흐느낌으로 오르내리는 등짝에서 흔들리는 ‘미안하다’라는 활자의 의미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겨우 이틀을 걷고 저는 돌아왔습니다. 다국적기업에서 만든 비타민을 챙겨먹는 것으로 서둘러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아침, 꾸역꾸역 산 입에 밥을 넘기며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냥 그들에게 미안해서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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