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저마다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도망치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쳇바퀴 도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내가 원했던 배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다섯 동갑내기 부부였던 나와 남편은 이런 고민을 나누며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했고,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는 답을 얻었다.
남편은 올해 초부터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인드라망대학에 입학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고, 나도 여름에 10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마감하고 농촌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동안 서울과 남원에서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우리는 ‘귀농·귀촌’이라는 주제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지난 2월부터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소농학교에 입학해 농사를 배우고 있는데, 한 해 동안 생태철학, 농기구 다루는 법, 다양한 작물의 경작법을 배우고, 같은 계획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있다.
농촌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귀농·귀촌’을 결심하자 회사 동료나 친구들은 나의 준비과정을 궁금해했다. 아마 ‘귀농귀촌·’이라는 주제보다, 당장 본인들의 삶에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 막막해서 내 계획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나도 농촌으로 가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시작하려고 했을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시골에 먼저 정착한 분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고,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이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나의 귀농 준비 과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준비했다.
① 활동가의 귀촌 생활
시골에서 농사지어 먹고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귀농을 결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하는 생각일 것이다. 안드라망대학 사무처장인 서만억(41세), 김은미(41세) 님 부부는 여덟 살, 다섯 살 된 두 딸과 함께 전북 남원 산내면에 살고 있다. 실상사 귀농학교를 졸업한 아내 김은미 님은 그때 실상사 작은학교 선생님이었던 서만억 님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대전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도시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고, 도시생활 3년째에 둘째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산내로 돌아왔다.
조옥연: 시골에서 도시로 나갔을 때는 큰 결심이 있었을 텐데, 다시 시골로 돌아온 까닭은 무엇인가?
김은미 : 도시에서 남편은 기간제 교사로 일했고, 저는 의료생협 활동을 했어요. 아이가 생기고 생활비도 많이 들고 현실의 벽에 부딪혔죠. 이 무렵 ‘가난한 삶’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늘 ‘누구에 비해서’ 얼마나 가난한지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도시 빈민으로 살 바에는 시골로 돌아가자고 결심한 뒤 다시 산내면으로 온 거죠. 물론 시골에서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소비 위주의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놀이 문화가 도시와 달라서 아이들이나 우리 부부나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도 마음이 더 편해졌죠. 삶이 자연스러워졌다고나 할까요.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어서 무척 만족스러워요.
조옥연: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식재료를 대부분 사야 하고, 차 유지비도 필요했을 텐데 4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어느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한가?
김은미: 아이들 옷은 거의 물려입고, 물건을 사는 게 거의 없어서 네 식구가 먹고사는 데 100만 원이면 충분해요. 이 돈으로 아이들 필요한 교육도 다 하고 먹을 것도 부족함 없이 충분히 먹고 살아요. 이 동네의 특성상 젊은 부모들이 많아서 교육 품앗이를 많이 해서 유리한 점도 있고요. 우리 아이들은 피아노를 배우는데 하나를 배워도 즐겁게 하고 싶은 것만 배워서 그런지 그 시간을 무척 즐거워해요. 그리고 가끔씩 오일장에 가거나 동네 소모임에 참석해서 친구들을 만나는 정도로 문화생활을 하다 보니, 돈을 많이 쓸 일이 없어요. 도시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강박적으로 아이들 데리고 놀러 가려고 해서 돈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돈은 거의 안 쓰게 돼요. 다만 가끔 주변에 갑작스럽게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막막해질 때도 있어요. 그런 거 말고는 평상시에는 큰 불편한 점은 없네요.
*이 마을에는 젊은 세대가 많이 귀농해 살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마을 안에 40개의 소모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정도 숫자면 웬만한 문화생활 욕구는 모두 충족하면서 살 것 같다. 대부분의 소모임이 한 달에 1~2만원을 내고 참여한다고 하는데, 기타를 배우거나 바느질을 배우더라도 기본 10만 원 정도의 수강료를 내는 도시생활과 굉장히 비교되었다. 도시에서는 가끔 비싼 수강료 때문에 취미 생활도 사치라는 생각을 했는데, 김은미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궁금해졌다.
조옥연: 마을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김은미: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을 했어요. 겨울에는 보통 동네 경로당에 어른들이 모여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과 함께 가서 앉아 있었어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같이 밥도 먹고 얼굴도 익히니까 점점 동네 사람으로 인정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마을 신문 만드는 모임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집집마다 다니면서 신문을 돌렸어요. 그러다 마을 곳곳의 어른들을 만나면서 얼굴도 익히고 자연스럽게 집안 사정도 알게 됐지요. 어르신들의 생각이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아서 모두 다 이해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어울려 살다 보면 서로 공감되는 부분도 찾게 돼요. 한 가지 재밌는 건,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만나서 그런지 도시에 나가서도 모르는 할머니한테도 언제나 인사를 해요. 아이들에게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식구처럼 느껴지는 거죠. 요즘 아이들이 도시에서는 갖기 힘든 감수성이에요.
조옥연: 부모님들은 자식이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하면 실패라도 한 것처럼 걱정하며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은 농촌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나 우려는 없었나?
김은미: 부모님께서는 아직까지도 많이 아쉬워하세요. 도시에서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지 걱정이시죠.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나 주변의 시선이 걸림돌이 된다는 말은 그만큼 절실한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저희는 일단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결정했어요. 삶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아내나 남편 없이 혼자 귀농하는 사례도 비슷해요. 서로 뜻이 안 맞는데 억지로 맞출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결혼 초에는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뜻을 맞춰볼 필요는 있지만, 40대 이후 정도 되면 서로 다르다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혼자 귀농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진짜로 원한다면 해봐야죠. 사실 합의가 안 되기 때문에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수 있어요.
김은미: 정착하려는 지역의 특성을 먼저 고려해봐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는데 여기서는 귀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잘 다루면 영농조합 같은 곳에서 홈페이지 관리나 포토샵을 이용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나 독서지도, 보육사, 방과후 프로그램 교사 등 잘하는 분야를 찾아서 미리 배워오면 뭐든지 도움이 돼요. 사실 농촌에서의 활동가는 내가 원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직업이에요. 이 마을만 해도 8월 한 달 동안 열 개 넘는 캠프가 진행되는데, 그 중에 시골살이 캠프도 있어요. 그런 것도 기획해볼 수 있는 거죠. 본인이 부지런하고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농사 말고 먹고살 수 있는 일은 많아요.
조옥연: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은미: 귀농자들 생각이 너무 이상적인 게 많습니다. 실제로 귀농한다고 해도 사는 곳이 바뀔 뿐이지 인생이 확 바뀌지 않아요.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귀농을 추천하고 싶어요. 만약 이곳에 왔다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른 곳으로 가보거나 다시 도시로 돌아가면 되죠. 이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야 본인이나 주변에 설득이 쉬울 거예요. 그리고 수입과 지출에 대한 계획은 명확히 세우는 게 좋아요. 얼마 정도는 번다더라 하는 얘기는 소용없습니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면 힘들겠지만, 다른 일로 돈을 벌겠다고 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죠. 그리고 도시에 비해서는 수입이든 지출이든 적게 잡아야 해요. 아무리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갖고 온다고 하더라도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 것인지 미리 예상해보는 게 중요해요. 시골살이에서는 마을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생계유지가 더 중요한 문제예요. 자신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쓸 것인지 본인만의 기준이 없으면 와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옷은 더 이상 안 사겠다든지, 보험은 들지 않겠다든지 하는 삶의 원칙을 미리 세우고 오는 게 좋습니다.
*농촌에 계신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조언은 농사를 짓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로 준비해야 하는 자격증이나 받아둬야 하는 교육도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한다. 누군가 답을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는 데 익숙했던 나는 어쩌면 이곳에서도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이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활동가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나도 그런 직업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② 30대 부부의 귀농 생활
‘농가 소득 1억 신화.’ 이런 얘기를 들으면 희망적이기보다 은근히 기가 죽기도 한다. 그분들과 감히 경쟁할 생각도 없고 경쟁이 되지도 않겠지만, 어쩐지 나 같은 사람이 농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벌어 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농사를 해본 경험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농사를 준비하고 시작하는지, 젊은 귀농 부부를 만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내 오남도(38) 님과 남편 정광하(35) 부부는 충남 논산 ‘꽃비원’이라는 과수농원에서 사과, 배를 비롯해 70가지 정도의 작물을 농사짓고 있다. 지난해에 처음 조성한 과수원에서 본격적으로 수확을 하는 데는 1~2년의 시간이 더 필요해서 배밭에 여러 작물을 심고 있다. 잎채소, 뿌리채소, 여러 가지 허브, 양파, 마늘, 고춧가루까지 실제로 식생활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재배한다. 이른바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바람직한 소농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꽃비원의 아담하고 정겨운 컨테이터 농막에서 이들 가족을 만나 남편 정광하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옥연: 귀농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정광하: 아내와 나는 둘 다 대학에서 농업 관련 분야를 전공했어요.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일도 많이 도와드렸고요.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서 계속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촌에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국내에서 원예연구소, 가락시장 농산물 유통회사 들에서 일하다가 미국에서 3년 동안 살면서 곡물을 수입‧가공하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바로 귀국해서 귀농을 준비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죠.
조옥연: 귀농을 준비하면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이다. 나는 도시에서만 자랐고 부모님도 귀농을 반대하는데, 내 삶의 뿌리가 되는 가족들로부터 지지와 도움을 받고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의 지지가 있어도 본인의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광하: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막상 대학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을 벌려고 했어요.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면서 <슬로 라이프>라는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았죠. 그러고는 책에 나와 있는 모습대로 살고 싶었고, 지금 당장은 못 하더라도 언젠가는 귀농을 하겠다고 다짐했죠. 그때가 10년 전인데 다양한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과수원을 머릿속으로 그렸어요. 사람들이 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정원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꽃비원이라는 이름도 지었고요. 구체적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계속 머릿속으로 구상을 했던 거죠.
조옥연: 누구나 막연한 미래에는 어떤 것을 시작하겠다는 꿈은 꾼다. 하지만 시작하는 사람과 꿈으로 남는 사람은 다르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 시기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
정광하: 미국에서 일한 회사에서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걸 봤어요. 사료용으로 키운 작물을 수입해서 사람들에게 식품용으로 팔려고 했는데, 그걸 보고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했죠. 그때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주변에서 모두 아이 시민권은 따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죠.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2012년 1월에 바로 귀국했어요. 그해 10월에 땅을 사고, 2013년부터 바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보통 아이 때문에 귀농을 하지 못한다는 부부도 있는데, 이 부부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귀농을 한 것이다.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쥐어주거나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것보다 더 값진 선물은 부모로서 정직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삶에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옥연: ‘꽃비원’은 논산 연무대 신병훈련소 바로 옆에 있었다. 귀농지로 다들 꿈꾸는 ‘경치 좋은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됐는가?
정광하: 저희는 처음부터 과수원을 하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후나 토질 등 그에 맞는 조건을 봤어요. 논산은 과수가 잘 되는 편인데 천안에 사시는 아버지 고향도 논산이었고, 친척들도 많이 살고 계셔요. 친척들에게 얘기를 듣고 알아보니 충청도에서 그나마 이곳이 아직까지 싼 편이더라고요. 사실 귀농귀촌지원센터 등 정부 관련 기관도 많이 찾아다녔는데 어떤 땅을 사는 게 좋을지, 예산은 어느 정도 필요한지 같은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어요. 결국 제가 알아본 부동산 여섯 곳을 통해서 스무 군데 넘는 땅을 돌아다녀보고, 6개월 정도 여기저기 알아본 뒤에 이곳을 샀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적도 떼보고, 농로 같은 길이 들어가는 곳도 보고 여러 가지 위치 조건도 따져보면서 땅을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외관을 예쁜 노란색으로 칠한 컨테이너가 보였다. 버려진 가구들로 아기자기하게 손수 꾸민 공간이 작은 카페 같았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의 농사철학, 앞으로의 계획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광하: 농사를 할 때도 농사짓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좋아하는 작물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나중에 농가 레스토랑을 할 계획이에요. 내가 키우는 작물을 좋아하고 먹는 방법에도 관심이 있으면, 풀 뽑으면서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고 정성을 기울이게 돼요. 그럼 당연히 농사도 더 잘 되죠. 팔 때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요리에 응용하는지 해줄 말도 많고요. 얼마를 받고 팔 수 있을까보다는 소비자들이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더 많이 연구했던 것 같아요. 이 공간도 앞으로 농장에서 나오는 작물을 이용해 손님들이 오면 같이 요리도 해먹을 수 있고, 농산물을 팔면서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만들었어요.
조옥연: 대부분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귀농을 선택할 텐데, 농사지을 작물을 선택할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일과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결국 어떤 삶의 형태든 인생의 전환점에서는 외부의 조건이나 상황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을 했다.
*이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생산해낸 생산물로 다양한 연구를 한다고 한다. 겨울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요리책을 보면서 연구도 많이 하고, 같이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여행 겸 공부도 많이 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 욕심 내지 않고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다.
조옥연: 농사를 지어서 어느 정도 버는가?
정광하: 지난해에 생산한 농산물을 버리는 거 없이 전부 다 팔았어요. 주변 지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직거래로 팔기도 하고요. 무 같은 경우는 무말랭이를 만들거나 말린 무를 볶아 무차를 만들기도 했죠. 또 효소를 만들거나 과일청, 장아찌, 말린 대파 들을 만들어서 팔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귀농 첫해인 작년에는 1천만 원 정도를 벌었죠. 10월부터는 서울 대학로 마르쉐에 나가서 팔기 시작했어요. 마르쉐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인데 거기서 저희를 알게 된 분들이 나중에 연락해서 다른 걸 더 사기도 하고요. 올해 5월부터는 지인들 요청으로 꾸러미도 시작했어요. 열 가구 정도를 하고 있는데, 저희 둘이 하기에는 그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한 농가에서 재배한 작물로만 꾸러미를 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고 하는데, 저희는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니까 가능했어요. 꾸러미를 하면서 재밌는 부분도 많아요. 그날 수확 전에 밭을 둘러보면서 어떤 걸 보내줄까, 포장은 어떻게 하는 게 예쁠까,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게 드실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귀국 첫해에 귀농까지 하려니 이것저것 사야 할 것도 많고 아이도 어려서 다른 때보다 지출이 많아 작년에는 생활비가 대략 2천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적자였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번 것에 내심 놀랐다. 농산물을 얼마를 남겨서 팔겠다는 전략보다 내가 기른 농산물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농사를 지으니, 그 정도 수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광하: 보통 귀농을 하면 경제적으로 불안해서 아내는 다달이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남편이 농사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게 맞지 않았어요. 아이가 어려서 아내가 일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둘 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경제적으로는 물론 많이 어려웠죠.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저희들에게는 소중한 재산이 되는 것 같아요. 같이 살아도 서로 하는 일이 다르면 공감이 안 되니 쉽게 지칠 수도 있고요. 특히 농사일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같이 하면서 서로 의지가 되지 않으면 자리잡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정광하: 작년 한 해는 농사일이 힘들었던 것보다 확신이 안 서는 게 더 힘들었어요. 일의 우선순위도 모르고, 어떻게 재배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둘 다 농업 관련 분야를 전공했지만 대학에서는 농사일을 실제로 해보지는 않았으니까요. <텃밭백과> 같은 책을 보기도 하고, 밭에 나가서 동네 어르신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관찰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갔어요. 지난해에는 날마다 농사일지를 적었는데, 겨울에 쉬는 동안 새 다이어리에 모두 옮겨 적었어요. 그 시기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미리 적어두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같이 농사를 짓지는 않더라도 궁금할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나 네트워크는 중요한 것 같아요. 농사에도 경향이 있어서 서로 의논하면서 보완해나갈 관계가 있으면 더 도움이 되겠죠.
조옥연: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광하: 누구나 각오는 하고 오겠지만, 농촌 생활을 한 번쯤이라도 미리 경험해보고 오면 좋을 거예요. 여자들은 농사일도 힘들지만 육아가 겹치면 더 힘들어져요. 주변에 비슷한 또래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도 미리 감안해야 하고요. 남자도 아무리 육체노동에 자신있어도 생각보다 힘든 경우가 많아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농사일을 많이 돕고, 몸으로 하는 일에 대해 자신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죠. 하지만 저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도 본인이 즐겁게 일하고 다양하게 시도하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예요.
*꽃비원은 저장창고를 만들지 않고 그해 수확한 농산물은 모두 파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현재는 여러 가지 허브나 서양채소가 재배 작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런 게 자연스레 농장의 특징이 됐다. 구하기 힘든 식재료를 찾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재배를 하는 농부와 농산물을 받는 고객이 공통의 관심사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농산물 유통구조에서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농과 예비 젊은 귀농인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인터뷰 내내 자연을 닮아 있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를 보니 이 부부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들 부부의 귀농 이야기는 대안적인 삶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얘기해주고 있다. (☞ 꽃비원 카페 http://cafe.naver.com/flowerraining)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10월 현재 71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