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6월 22일 자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섰다. 강 교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조차 중앙 권력을 염두에 둔 이슈와 전략이 지배하는 것을 지적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구호에서부터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자"는 구호까지 나왔다. 지방자치가 20년을 넘어 민선 6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지방이 여전히 중앙의 식민지임을 통감했다.
'지방 식민지'의 현실
전체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된 나라는 일부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 경제 활동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어 광역시조차도 점차 인구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의 소득 격차, 유명 대학 입학생 중 서울 강남 3구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40%를 넘는 교육 격차, 그리고 각종 문화 향유의 기회를 비롯한 전반적인 삶의 질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의학과 법학 등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학과에서 서울의 마지막 주요 사립대까지 성적 순서대로 정원을 채우고 나서야 지방 국립대 지원이 시작된다는 어느 국립대 입학처장의 자조적인 푸념은 가볍게 넘겨버릴 사안이 아니다. 지역 발전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지역의 인재들이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지방대 졸업생들조차 기회만 된다면 서울로 가겠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격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현실이 개선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잡대', '지방충', '지균충' 등과 같이 사이버상에 떠도는 지방 모독적 단어들은 젊은이들도 중앙-지방 문제에 포획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지방 식민지화가 인정 욕구의 획일화와 서열화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성적으로 서울과 지방 대학에 각각 진학했던 같은 고등학교 졸업생들 간의 비교에서 서울의 대학에 간 경우가 10년 또는 20년 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았다. 기회의 차등뿐만 아니라, 내재한 열등감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의 차별화와 고착화라는 결과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이안나, 계명대 박사학위 논문, 2014).
심지어는 기본권인 건강권마저 지방에 거주하면 차별을 받는다. 연간 국민건강보험 급여비만 1조 원을 청구하는 거대 병원 5곳이 모두 서울에 있고, 이들 거대 병원과 지방 국립대 병원들 간의 격차는 병원의 규모나 장비의 차이를 넘어 수술 성공률과 각종 질병 사망률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명을 지키고 좋은 진료를 받으려고 KTX를 타고 서울까지 다니니,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병원 진료비만 연간 2.11조 원(강기정, 손숙미 의원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에 이른다. 또 대형 병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각종 암 치료율과 뇌 심혈관 질환 생존율, 의료 이용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높다는 보고(복지국가소사이어티, 2012)도 있다. 이 정도면 지방이 식민지라는 강 교수의 주장이 그리 과격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 시기, 대통령 공약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천명하고 추진하였지만 '관습 헌법'이라는 생소한 잣대로 위헌 결정이 났다. 일부 정부 부처가 행복 도시로 이전했고 공기업 지방 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지방 차별 문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그린벨트 해제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설정해 둔 수도권 규제들이 신임 경제부총리를 통해 대폭 완화된다면, 장차 지방의 소외와 차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방에 대한 차별은 정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방선거 후보를 공천하는 것에서부터 지방선거 주요 공약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6번에 이르는 지방선거에서 지방 정부의 독립과 자율성이 공론화된 적은 거의 없었다. 광역 후보들뿐만 아니라 기초지방자치단체 후보들까지 모두 중앙당에서 낙점하니,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 중앙 정치권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공천받을 확률이 항상 더 높았다. 그래서 모두가 중앙당의 눈치를 보면서 줄서기에 열중한다.
이번 7.30 재보궐 선거에서도 중앙당의 당권을 잡은 세력이 후보를 결정하면서 또 한 번 지방 유권자들은 정치적 무시를 당했다. 안철수 의원은 중앙당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 길은 중앙당이 기초지자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민주당과 합당을 감행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세운 그 원칙마저 포기하면서 중앙당의 전횡을 합리화하더니, 이번에는 역으로 본인이 당 대표로서 중앙당의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천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낡은 정치 행태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해결 기미 보이지 않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문제
새로 당선된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입을 모아 중앙 정부의 과도한 권력을 비판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당선자는 거의 없다. 예산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비율이 8 대 2인데 업무는 4 대 6이라는 이들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중앙 정부와 자신을 공천한 중앙당에 세원 재배분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정부로의 권력 이양을 구체화할 실질적인 법률 개정안을 제안하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중앙 정부에 잘 보여서 지역 개발 명목의 토목 건설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재부 등 중앙 정부의 공무원들이 지방 예산의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니다. 전체 당선자의 25%가 임기를 마치기 전에 구속되었던 민선 4기와 비교해, 민선 5기에서는 전체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의 약 10%인 25개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이 임기 중간에 사법 처리 되어 물러났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방 정부의 비리와 단체장들의 무능은 아직도 심각한 수준이다.
세수 자체가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 정부가 징수할 수 있는 세원이 적으니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앙 정부도 지방 정부를 믿지 못하니 각종 교부금이나 분담금 등을 족쇄와 미끼로 사용하여 지방 정부를 통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부자 감세 정책으로 지방 정부의 세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참여정부 때 지방 정부에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해 시행했던 64개 사회복지사업의 지방 이양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인력 증가 없이 업무만 지방으로 이전하다 보니 지방 정부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사회복지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데, 중앙 정부가 사업을 이양하면서 지방 정부에 넘긴 관련 예산 증가율은 서비스 수요 증가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받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증가는 이전보다 줄어드는 현상이 빚어졌다.
지난해 보육 예산을 두고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간에 벌어졌던 대립이 좋은 사례다. 대통령 공약으로 보육을 확대하면서 지방 정부에 대한 지원은 동결해버리니, 결국 지방 정부는 다른 사업을 줄여서 중앙 정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대립이 벌어졌고, 이런 현상은 이번에 기초연금 지급을 계기로 내년이면 또다시 재연될 전망이다.
2008년부터 지방 정부에 공무원 채용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대신 지방 공무원 정원 총액 예산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인건비 총액이 정해지다 보니, 총액 예산 제도는 공무원 숫자 동결이라는 또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방의 식민지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 지방은 점점 쇠락하고, 수도권의 비대화는 지방 거주 국민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넘어, 국토의 균형 발전 저하와 국가 전체의 비효율에 인한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나쁜 구조가 이미 자리를 굳게 잡아가고 있다.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은 복지국가 운동에서부터
무상 급식을 계기로 보수 일색이던 교육 행정에 교두보를 구축했던 진보 교육감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포진하면서 혁신학교 확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학교 복지사업의 확충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정부에서 시행한 통장 중심의 자살 예방 사업(노원구 자살 예방 사업)이 효과를 내면서 보건복지부가 역으로 지방 정부의 프로그램을 배워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복지국가 후보'들은 도서관을 단순 설립하는 것을 넘어 지역 주민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확충 사업을 시행하거나, 수백억 원을 들여 종합실내체육관을 건립하기보다는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체육시설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등의 정책을 공통 공약으로 채택했다. 이런 조그만 변화들은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나는 강준만 교수의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 주장을 지지한다. 그러나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행정 수도 이전이나 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민주 정부 10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 본사나 고등 교육기관, 거대 의료기관의 지방 이전이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도 명확하다. 지방 정부에 대한 세원 이전이나 자율적인 예산 확보, 지방 공무원 인력 확충, 그리고 법률적 자율성의 확보만으로는 지방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방 공약이라고 하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나 특정 산업단지 설치, 도로와 철도 개통 등의 개발 공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정부에 재정권을 주면, 불필요한 도로나 항만의 건설로 또 한 번 거대한 낭비가 되풀이되고, 지방 주민의 실망이 재연될 것이라는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를 통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본 사례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방 정부가 다양한 복지국가 정책을 시행하니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이 나아졌다. 고정적 지출이 경감되면서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각종 복지 정책들을 통해 지방에 살면서도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고, 다양한 사회 서비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공공 부분의 고용이 늘어나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도 좋은 직장이 보장된다면, 지방주민들이 느끼는 차별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다양한 복지국가 정책을 통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이 더 많아진다면 젊은이들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역 이주를 할 것이다. 지방이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각종 차별도 개선해야 한다. 지방 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 지방이 중앙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 정책들이 지방에서부터 강력하게 추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은 '복지국가 운동'으로 완성될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