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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타의 사망 원인, 마약이 아니라 '변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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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타의 사망 원인, 마약이 아니라 '변비'였다고?

[프레시안 books] 메리 로치의 <꿀꺽, 한 입의 과학>

'유딩'은 내가 부러워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3남 1녀의 장남인 나는 우리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다.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식탁 예절이 없다는 게 다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탓이라고 믿는다.

내가 본격적으로 유치원 졸업생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된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맛있는 우유를 마신다고 자랑하는 '유딩' 동생의 방학책을 봤을 때였다. 동생이 총천연색의 매끈한 종이 위에 펼쳐진 사람의 소화기관을 탐색하면서 둥근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목구멍과 밥통 그리고 창자를 구불구불하게 지나다가 그냥 항문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아뿔싸! 맙소사!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먹은 음식은 발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이며, 식탐 끝에 토하는 것은 음식이 발바닥에서 목까지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서야 항문이 발바닥이 아니라 엉덩이에 붙어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도대체 다리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지 한참 동안이나 궁금했지만, '유딩' 동생에 대한 열등감으로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 <꿀꺽, 한 입의 과학>(메리 로치 지음, 최가영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사람에게 아니 모든 동물들에게 먹고 싸는 것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소화기관을 다룬 교양서는 없다. 내 생각이 아니라 <꿀꺽, 한 입의 과학>(최가영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의 저자 메리 로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고 서가를 쭉 살펴봤다. 몸의 각종 장기를 다룬 책은 있지만 소화기관만 따로 다룬 책은 정말 없었다. 뇌, 심장, 눈, 생식기 심지어 털만을 따로 다룬 책들은 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라고 평한 메리 로치는 "문명화된 우리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물적 욕구'에 대한 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동물들과 달리 섹스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기는 하지만 먹는 것을 몰래하지는 않는데 무슨 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먹는 것은 싸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문 걸어놓고 마치 섹스 하듯이 배설하지 않는가!

메리 로치는 '유쾌한 과학 저술가'답게 흥미로운 질문들로 독자들을 유인한다. 이 부분이 조금 헷갈리는데 메리 로치가 유쾌한 사람인지, 한국어판 번역자와 편집자가 유쾌한 사람인지는 확인해봐야겠다. 원제는 "Gulp. Adventures on the Alimentary Canal". '꿀꺽, 소화기관 탐험' 쯤 된다. 이걸 '달콤 살벌한 소화 기관 모험기'라는 부제에 담고, 띠지에는 "적나라해서 더 매혹적인 '침, 균, 똥'의 숨겨진 과학"이라고 적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차용한 작명이다. 이런 작명의 의도는 과학을 단순히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깊이 있게 풀어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일 터이다. 보통 작명에 지나치게 신경 쓴 책은 실상 내용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꿀꺽, 한 입의 과학>은 그렇지 않다. 충실하다.

"지구상에 아베날의 밀수꾼들보다 직장의 생물학적 용도를 알차게 활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본디 조물주가 직장을 만든 뜻은 보관하라는 것이었다. 위와 소장을 지나오면서 영양소가 다 빠져나간 음식물 찌꺼기를 기다란 위장관의 끄트머리에서 잠시 보관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쓸 만한 물질을 최대한 쥐어짜 내라고 말이다. 정상적으로 이런 기나긴 여정을 거쳐 수분이 체내로 충분히 흡수되고 덩어리가 적당히 단단해졌을 때 체외로 배출된다. 브리스톨 대변 척도로 따지면 2와 5 사이가 가장 적당하다. 2는 소시지 모양이지만 울퉁불퉁한 상태를 의미하고, 5는 흐물흐물한 덩어리가 똑똑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참고로 가장 이상적인 배변 빈도는 하루에 한두 번이라고 한다." (201쪽)

9.11 테러 사건이 난 후 독일 출장을 가는데 옆자리에 독일인이 앉았다. 이 사람은 기내식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내가 대신 먹었다. 음식은 남기면 안 되니까….) 변비가 심해서 못 먹겠다는 거였다. 이 말만 듣지 않았어도 나는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비가 심하다는 사람이 물이나 맥주도 마시지 않았다. 9.11과 관련한 온갖 뉴스를 접한 나는 그의 소화관 속에 감춰져 있을지도 모를 폭탄에 대한 걱정이 잠에서 깰 때마다, 식사가 끝난 다음마다 들었다. 메리 로치의 설명을 읽어보니 당시 내 걱정이 틀리지 않았다.

소화관은 범죄 증거를 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물건이 클수록 배변 욕구가 빨리 온다. 입으로 넣으면 신호가 오는 시간이 충분히 길어진다. 이동 시간이 긴 비행기를 탄 밀수꾼들은 입에 물건을 넣고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다행히 그날 비행기는 폭파되지 않았다. 그가 한국에서 어떤 물건을 밀수해 갔는지는 내가 알바 아니다.

ⓒ을유문화사

위에 인용한 글에 이어서 메리 로치는 배변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이것 참 궁금하다. 거의 금기에 해당하는 것이라 어디서 들어본 일도 거의 없다. 궁금하신 독자는 201쪽 이하를 직접 보셔야 한다.

나는 평생,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변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320쪽에 실린 브리스톨 대변 분류표에 따르면 변비를 경험하는 사람은 대게 유형 1의 변을 보시는가 보다. 저자는 유형 2와 5 사이가 가장 적당하고 하루에 한두 번 배변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대학 입학 후 줄곧 유형 6과 7의 변을 하루에 4~5번 정도 본다. 행복하다. 변비만 아니면 됐지 이상적인 '똥'이라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 엘비스 프레슬리.
그렇다. 변비가 문제다. 메리 로치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변비로 죽었다고 주장한다. 우리 이모가 이 책을 읽었다면 쓰레기통에 처박았을지도 모른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인 이모는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믿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예술가였으니 적어도 약물 과다 복용 정도의 사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는 평범하게 죽으면 안 된다고 믿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메리 로치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큰일을 보다가 힘이 들어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근거를 차근차근 댄다. 변비 정말 무섭다.

이번 서평에는 서평자의 취향에 따라 배변에 관한 것만 인용했지만 책은 입과 코에서 시작해서 항문에 이르기까지 우리 음식이 탐험을 하는 전체 소화관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녀는 먹는 것과 싸는 것에 대한 주제가 금기가 된다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한다. 나는 '금기', '위선'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앞으로 자주 이야기 해야겠다. 세상에 '똥'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똥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지만 나는 다시 급 우울해진다. 메리 로치는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실과 이국적인 풍광에 놀라고 흥분하는 재미로 유람선에 오른다. 나는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썼다. '유람선'이란 단어에서 '세월호'와 여전히 0을 반복하고 있는 구조자 수가 떠올랐다. 내가 올라탄 대한민국 호에는 놀라고 흥분하는 재미란 없다. 과학책, 그것도 '소화기관 탐사기'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이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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