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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린 만큼 돈을 받는 게 욕심인가요?

[TV PLAY] KBS <다큐멘터리 3일> '몸을 쓰다-택배 72시간'

개인적으로 소설보다는 에세이, 드라마보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백퍼센트 ‘리얼’은 아닐지라도 완전한 허구보다는 어느 정도 진짜 이야기가 섞인 장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리얼’에 가까운 다큐멘터리 채널에는 이상하게 선뜻 눈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다큐멘터리 3일>은 어느새 <개그콘서트>와 함께 매주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됐다. <다큐멘터리 3일>은 실제로 가보지 못한 낯선 장소에서 듣는 익숙한 이야기들,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와 닿는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 3일>의 카메라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꿈 하나에 의지한 채 고군분투중인 노량진 고시생들 곁에, 명절 직전 가장 붐비는 재래시장 상인들 곁에, 여전히 아날로그의 매력에 흠뻑 빠진 회현 지하상가 곁에, 그리고 “땀 흘린 만큼 (돈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환하게 웃는 택배기사 곁에 말이다.

▲ <다큐멘터리 3일> 중 '몸을 쓰다-택배 72시간' 예고편. ©KBS

특히, ‘몸을 쓰다-택배 72시간’은 예고가 나올 때부터 따로 메모를 해놓을 정도로 기다렸던 회차였다. 특별히 택배 기사와 인연이 있어서는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택배 기사가 무언가를 배달해주면 주스 한 잔, 호빵 하나, 하다못해 박카스 한 병이라도 챙겨주시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명절 때만 되면 각종 매체들은 “물건 하나 배달할 때마다 택배 기사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고작 700원”, “점심 식사는 대부분 운전하면서 김밥 같은 것으로 해결한다”는 유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때부터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야말로 ‘발로 뛰는’ 직업을 가진 택배 기사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입을 통해 택배 일의 고단함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큐멘터리 3일>이 만난 택배 기사들은 하루 약 200곳을 방문하고, 2만 5000걸음을 걷는다. 셀 수 없이 대문을 두드리다 보니 가운데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생겼고, 장갑에는 구멍이 날 정도였다. 대학을 자퇴하고 택배 일을 시작한 20대부터 각종 사업을 하다가 부도나서 택배업에 뛰어든 40대, 실버 택배로 번 돈으로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꿈꾸는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나이도, 사연도 제각기 다른 그들은 하나같이 “땀 흘린 만큼 (돈을) 받는 직업이 어디 있냐”며 택배 일을 힘들어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 택배 기사는 “남들은 택배가 힘들다고 해도 택배라는 것이 좋아요. 내가 땀 흘린 만큼 버는데 뭘 더 바라요. 내가 욕심을 많이 내서 일 많이 하면 그만큼 돈을 더 가져가잖아요”라고 말한다.

택배 일을 시작한 첫 두 달 동안 무려 30킬로그램이 빠질 정도로 몸이 고되고, “택배는 못 배운 사람들이 한다”는 편견도 이겨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택배를 “정직한 직업”이라 말한다. 어떤 가장은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서 몽땅 만 원짜리로 인출하며 뿌듯해하고, 택배 일을 함께 하는 20대 룸메이트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푸짐한 밥상을 차려 한 달 동안 고생한 자신들에게 작은 상을 준다.

▲ <다큐멘터리 3일> 중 '몸을 쓰다-택배 72시간' 예고편. ©KBS

일한 만큼 번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 그럼에도 택배 기사들이 그것을 최고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그것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근로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은 어기면 욕을 먹지만 퇴근 시간은 오히려 지키면 지킬수록 욕을 먹는 것이 현실이다. 야근 수당, 특근 수당이 제대로 나오는 곳도 많지 않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3일>의 ‘몸을 쓰다-택배 72시간’ 편은 단순히 택배 기사의 일상이 아니라,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길 원하는 이 시대 모든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택배 일을 하는 세계에서는 어떠한 스펙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 20대 택배 기사는 “스펙이라고 하면 토익, 학교, 학점, 이런 걸로만 다 본다. 사람의 열정이나 성실함 같은 것을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들은 땀 흘린 만큼 임금을 받고, 그 임금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노동량뿐이다. 비록 트럭 안에서 차갑게 식은 붕어빵으로 끼니를 해결할지라도, 그들이 택배 일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다. 이처럼 <다큐멘터리 3일>이 매주 고단한 현장을 담으면서도 결코 절망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던 건, 그 속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기운을 담아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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