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金南柱, 1946~1994.2.13) 시인이 유명을 달리한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어두운 시대의 장막을 찢고 불꽃처럼 산화한 그의 문학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계승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것이다. 시인의 20주기에 즈음하여 그의 '시(詩)전집'을 새로 펴내는 작업을 하면서 이제 역사의 일부가 되어가는 시인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기대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본다.
김남주 시의 원체험은 두갈래로 짚어볼 수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태생적 배경에서 유래하는 농민적 정서가 그 하나다. 그렇지만 김남주 시의 농민적 정서는 전근대적 토속성과는 사뭇 다른 차원을 열어 보인다.
감옥에서 써내려간 혼신의 시
시인은 처음부터 고단한 농민의 삶을 수탈에 시달리는 억압체제 속에서 파악했다. 그의 농촌시는 그런 억압에 맞서는 강렬한 저항의식으로 분출된다. 그래서 <추곡> 같은 시는 전통민요 내지 개화기 창가(唱歌)의 형식을 취하되 날카로운 현실비판의 어조를 띤다. 동학혁명에서 제재를 취한 <노래>가 80년대의 민주화투쟁 현장에서 함성으로 울려 퍼졌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남주 시의 또다른 원류는 투옥경험이다. 대학재학 중인 1972년 유신반대 투쟁으로 처음 투옥되던 당시의 처절한 경험을 토로한 <잿더미>의 "꽃속에 피가 흐른다/핏속에 꽃이 보인다"라는 시구가 압축하듯, 피 흘려 꽃을 피우려는 순사(殉死)의 결의는 시인 자신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알다시피 김남주 시인은 79년말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10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고, 그가 남긴 5백 여 편의 시 가운데 360 여 편이 감옥 안에서 쓰인 것이다. 그런 만큼 옥중상황이 그의 시창작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밝히는 일이 가장 긴요한 과제다. 필기구조차 없이 우유곽이나 담뱃갑 은박지에 새겨 적은 원고를 면회 온 사람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식으로 그의 옥중시는 세상에 알려졌다. 따라서 초고나 다름없는 원고가 나중에 시인 자신의 손을 거쳐 어떻게 다듬어졌는지 기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가혹한 옥중상황에 맞서 싸우는 글쓰기는 당연히 시의 내용을 규정할 뿐 아니라 형식과 리듬의 변화도 수반한다. 김남주 시의 두드러진 특징인 반복어법은 옥중상황에서는 시상의 골격을 머릿속에 외워두었다가 단숨에 써내려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을 터이다. <노래> 같은 시에서 반복어법이 격렬한 몸짓의 집단적 율동으로 발산되는 양상을 띠었다면, 옥중시 '학살' 연작에서 반복과 병치 어법은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는 유폐상태에서 광주학살의 야만적 참상을 정면으로 직시하려는 혼신의 집중을 위한 시적 언술이다.
감옥을 학습공간으로 삼았던 시인의 외국시 번역이 시창작에 미친 영향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하이네(H. Heine), 브레히트(B. Brecht), 마야꼽스끼(V. V. Mayakovsky), 네루다(P. Neruda) 등 혁명적 투사의 길을 걸었던 시인들을 김남주는 사표(師表)로 삼았다. 예컨대 <관료주의> 같은 시는 마야꼽스끼의 사다리 모양 시형태를 그대로 차용한 경우지만 <학살 1>은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지금 다시 김남주를 읽어야 하는 이유
<첫눈> <산국화> 같은 서정시편도 감옥 안의 극한상황에 맞서 싸우는 처절한 고투의 산물임을 감안할 때 비로소 브레히트가 말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서정시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처연한 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김남주의 옥중시는 일찍이 김수영(金洙暎)이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 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라고 주문했던 바로 그 혼신의 실천이자 투쟁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발표한 다음 시는 짐작건대 투옥되기 이전 유신독재가 극에 달했던 암울한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 연대의 투쟁을 통해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적 가치가 전면적인 도전을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김남주의 시가 어떻게 계승되고 다시 읽혀야 하는지 숙고하게 하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돌멩이 하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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