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미래보다는 그가 진행하고 있는 ‘양당제 깨기’를 관심 있게 본다. 안 의원이 “100년 가는 정당”을 언급하자 66년 헌정사까지 들먹이며 제3정당의 가혹한 운명을 환기한 언론의 논평들은 냉소를 넘어 저주에 가깝다. 관객들조차 새누리당 계열 정당과 민주당 계열 정당 간의 배타적 카르텔에 익숙해져 관성적 텃새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가뭇없이 사라진 노무현표 ‘100년 정당의 약속’이 후발 정당 창업자들에게 남긴 부채일 수 있겠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의 신당 실험 자체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충청권의 지역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다당 구조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당을 하나씩 꿰차고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른 결과다. 지역주의가 뒤를 받쳤고 보스들의 뒷거래는 일상이었다. 하여,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10선 등정을 가로막고 마지막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한 장면은 마치 새 시대의 상징 같았다.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제대로 된 분화, 보수-중도-진보의 ‘3분지계’가 시작되는가했다.
그러나 이조차 소위 ‘2.5당 체제(한나라당 1, 열린우리당 1, 민주노동당 0.5)’를 넘어서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제도 정치에 서툴렀다. 운동권 방식에 익숙해 경직됐다. 의욕 넘친 엘리트의식은 대중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봤다. 나중엔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체 분열했다. 2012년 총선에서 13석을 얻어 부활하는가 싶더니만 무늬만 진보이던 통합진보당은 내부로부터 다시 무너졌다. 법은 거들 뿐.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손쉽고 빠르게 통합진보당의 잔해를 해치워간다. 폭풍에서 비껴 선 정의당도 현실 정당으로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건 당 지지율이 말해준다. 다시 양당 체제다.
3김 시대와 진보정치의 흥망성쇠를 돌아보면 양당제가 절대 악이고 다당제가 새 정치의 복음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그나마 정치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는 괜찮은 진보정당이 존재했던 17대 국회였다고 평가한다. 저작권자는 아무런 보상도 챙기지 못했으나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가 그 시절에 태동했다. 민주당계열의 진보·개혁 독점 구조가 무너지면서 민주-반민주의 단순 논법도 허물어졌다. 정치가 포괄하는 의제의 범위, 즉 운동장 크기가 넓어진 덕이다. 10년 간 정권을 빼앗긴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를 치고 절치부심해 이명박·박근혜라는 기라성을 배출한 과정도 나름대로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이후, 돌고 도는 나선처럼 정치의 쇠락기가 닥쳤다. 정권 탈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보수정당은 매너리즘에 빠져 오늘에 이른다. 두 번 연속 집권에 실패한 민주당은 아직도 대안 세력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진보정당은 망했다. 정치를 다시 독점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때린 쓰나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시작됐다. 2012년 대선 때는 안철수 현상이 불붙었다. 극우화로 방향을 튼 보수정치와 혁신의 길을 찾지 못한 민주당이 여전한 탓에 현재도 정치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을 부르는 구조적 요인은 양당체제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 대한 안철수 의원의 공격적 태도는 그런 맥락에선 이해가 어렵지 않다. 야권 연대에 관한 안 의원 측의 매몰찬 입장도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야권 연대에 관심을 내비치는 것 자체가 신당 창당의 발목을 잡는 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와 연합이라는 자연스러운 정치 행위를 구태로 단정하는 태도는 안 의원이 추구하는 다당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창당을 완료한 4월 이후의 정국에선 야권 연대에 관한 현실적 의미를 외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야권 연대에 관한 태도를 교정하는 것으로 퇴로를 열어둘 수 있다.
하지만 신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지향, 노선은 경우가 다르다. 정당의 설계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와의 결별로 제도권 정치가 수용할 수 있는 ‘좌방한계선’ 노선은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 양당을 싸잡아 비판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이념과 노선을 밝히지는 않았다. 남들이 좋은 뜻으로, 혹은 나쁜 뜻으로 중도라고 이름 붙여줬을 뿐이다.
모래 위 집짓기는 금세 탄로 난다. 예컨대 강봉균, 류근찬 전 의원이 안철수 신당의 전북도지사, 충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데, 이들이 ‘올드 보이’라는 건 둘째 문제다. 강봉균 전 의원은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불편하게 본다. 류근찬 전 의원은 정통 우파를 표방했던 자유선진당 출신으로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대증요법으로 17곳의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물색하다보면 이런 사례는 또 나올 것이다. 양당제를 흔들어 한국 정치를 재편하겠다는 안철수 신당의 ‘생얼’이 이런 모습이면 곤란하다.
양당제는 체제의 문제라기보다 두 기득권 정당이 제대로 갈등하지 않아 자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맹신과 반공을 내면화한 반면 노동을 배척한 박정희 체제의 적대적 협업자들이 처한 위기다. 보수 헤게모니가 구축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승패가 뻔한 둘 만의 리그일 뿐, 다른 비전을 가진 선수들에겐 출전권조차 허락하지 않는 ‘반쪽짜리 운동장’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경기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은 당연하다.
안철수 신당의 의무는 이들과 다름을 보여주는 일이다. 특히 우경화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만년 2등인 민주당과의 다름을 제시하는 일이다. 잘려나간 왼쪽 평야로 운동장을 확장 공사해 수권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쪽이 근본적이기도 하고 현명하기도 하다. 그런데 집권 10년 동안 시장 개혁에 실패한 데 이어 이념 없는 이념정치로 요란하기만 한 민주당과 이념정치를 비판하며 무이념을 새 정치로 포장하는 안철수 세력은 어떤 차이가 있나? 2014년 출시된 시간적 새로움 외에 제3당이 새로운 정치 수요자를 끌어들일만한 매력은 또 무언가? 디자인과 재질이 똑같은데도 브랜드만 바꿔 호객 행위를 한다면, 이 정치 상품은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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