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프레시안>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회와 공동으로 경제 민주화의 오늘을 짚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기획 '경제 민주화 워치'를 진행합니다. '경제 민주화 워치' 칼럼은 매주 게재됩니다. <편집자>
궁금했다.
승무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을 맞이하는 남녀 승무원의 얼굴은 모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승객용 화장실 옆에서 비스듬히 서서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한 남자 승무원의 얼굴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라도 말을 걸지 않으면, 이 음울한 얼굴의 젊은 남자는 어쩌면 비상용 창문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밖으로 훌쩍 뛰어내릴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지난해 5월 영국에서 유럽 대륙의 한 도시를 찾을 때 얘기다. 벌이가 없는 유학생 처지라 값싼 교통편을 찾다가, 전 세계 저가 항공사의 원조격인 라이언에어를 탔다. 물론 다른 비싼 항공사에서 받을 수 있는 환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들이 워낙 친절한 탓에, '고객은 왕'이라는 한국식 고정관념이 머리에 박힌 탓만도 아니었다. 그들은 불친절했다기보다는 그냥 우울해 보였다. 서비스 업계 종사자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태도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유럽 방문에서 돌아온 뒤, 영국 신문에 나오는 라이언에어 관련 소식에 눈길을 주기 시작하면서 궁금증은 풀렸다.
저가 항공 성공 신화의 이면, 직원 쥐어짜기
라이언에어는 지난 1985년 직원 51명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를 오가는 단일 노선을 취항하면서 등장한 회사다. 유럽 지역 내의 항공 업계에 대한 규제 완화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이 회사는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승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이 글을 쓰는 12월 15일 라이언에어 홈페이지에는 런던에서 출발하는 폴란드 바르샤바행 편도 비행기 표 가격이 17파운드(2만9000원)으로 제시돼 있다. 물론 이 회사의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세금과 이런저런 부대비용을 포함하고 나면, 실제 가격은 두세 배 이상으로 뛰어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유럽을 가로지르는 항공편 가격이 경부선 KTX 편도 가격 정도라면 소비자로서는 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승객들도 몰렸다. 30년이 안된 사이에 이 항공사는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의 일부, 233개 노선에 취항하는 국제적인 항공사가 됐다. 라이언에어는 세계 항공사에 유례가 드문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했다.
이렇게 빛나는 성과의 이면에는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쥐어짜기식 경영이 있었다. 라이언에어의 경영 방침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노조 정책이다. 지난 2009년 라이언에어의 소속 항공사 조종사인 제임스 앤더슨은 회사에서 해고됐다. 비행기 운항 중에 앤더슨이 다른 승무원에게 노조 가입을 위한 서류를 건네줬다는 것이 이유였다. 항공사는 안전을 이유로 들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12년에 비로소 라이언에어 조종사들의 모임인 '라이언에어 파일럿 그룹'이 만들어진 뒤에도 회사는 지금껏 이 모임을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유럽 각국에 따로 떨어져서 근무하는 조종사들과 한 계약 조건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승무원에 대한 대우도 형편없는 것으로 이 항공사는 악명 높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지난 10월 기사를 보면, 특히 이 회사의 외주 업체를 통해 1년 동안 업무를 익히는 견습 사원의 경우에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냈다. 한 해 '교육비'는 1800파운드(308만 원)였다. 그나마 기내에서 일을 하게 되면 수당을 받게 되는데, 그 액수라는 것이 시간당 13.39파운드(2만2000원)에 불과했다. 거기다 유니폼 사용료로 한 달에 30파운드(5만 원)를 내야 하고, 따로 수당을 받지 않는 근무 대기일에는 항공사에서 연락이 오면 1시간 안에 공항으로 달려 나와야 했다.
어떻게든 직원들의 임금을 깎아 이윤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라이언에어는 때로 법원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지난 10월 프랑스 법원은 라이언에어에 900만 유로의 벌금을 물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항공사가 프랑스 마르세유 공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2007년에서 2010년까지 라이언에어의 본사가 있는 아일랜드의 법을 적용해서 임금의 30%를 덜어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에어는 여성 단체들의 항의도 단골로 받고 있다. 해마다 연말에는 자선 행사를 명목으로 여자 승무원들의 비키니 촬영 사진을 담은 달력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13명 여자 승무원은 회사의 '자선'을 위해 수영복을 입었다. 올해 스페인의 시민 단체들이 들고 일어서자, 스페인 말라가의 법원이 항공사의 행태에 대해 '여성 차별적'이라고 판결하면서 제동을 걸기도 했다. 영국의 <미러>지는 라이언에어의 노동 관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만약 고용 관련 조항을 암흑기로 되돌리려는 회사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라이언에어일 확률이 높다."
라이언에어의 막무가내식 경영은 승객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2012년 7월 런던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던 라이언에어 소속 비행기 3대가 험한 날씨 때문에 도착지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페인 당국의 안내에 따라 발렌시아로 향한 이 비행기들은 마침 착륙을 기다리던 비행기들을 제치고 비상 착륙을 해야 했다. 연료가 떨어진 탓이었다. 비행기들은 보통 비상 상황을 대비해서 여분의 연료를 담기 마련이지만, 라이언에어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있다. 보다 못한 라이언에어 조종사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곳에서 27년 동안 근무한 고참 존 고스 기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지난 8월 영국 방송에 나와 라이언에어의 연료 절감 정책이 승객 안전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며칠 뒤, 고스 기장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라이언에어 홈페이지 |
엽기적인 CEO, 마이클 오리어리
라이언에어의 기행과 만행을 모두 열거하자면 책 한두 권의 분량은 필요할 듯하다. 이 항공사의 엽기적인 행적은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오리어리를 떼놓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회사의 이윤 추구를 경영 철학의 중심에 놓는 그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곧잘 구설에 올랐다. 그의 아이디어 가운데는 승객에게 기내 화장실 요금을 1파운드씩 물게 하거나, 더 많은 승객을 기내에 태우기 위해 사람이 선 채로 벨트만 매는 '입석' 비행기를 만들어서 운행하거나, 비만인 승객에게 추가 요금을 물리거나, 부기장이 조종석에 나와서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커피나 음식을 서빙하게 하는 등의 무리수가 곧잘 있었다. 물론 무리수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집행이 됐다. 라이언에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승객들이 비행기 표를 직접 프린트해서 공항에 오도록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비행기 표 발급 비용으로 70파운드(12만 원)를 승객에게 청구하고 있다. 비행기 값보다 프린트 값이 더 비싼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지는 셈이다.
직원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경영을 통해 불린 이익은 물론 '사장님'에게 두둑하게 돌아왔다. 이제 52세인 그는 라이언에어의 성공으로 2억8000만 파운드(4800억 원)의 부를 축적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윤을 위해서는 비행기 연료통 바닥까지 긁는 그의 연봉은 약 70만 파운드(12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형편이 이러하니,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라이언에어가 비용을 절감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리어리를 자르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오리어리 사장의 오만한 태도는 그의 일상에서도 종종 드러났다. 지난 2004년 그는 4000파운드(680만 원)을 주고 택시 번호표를 사들여 자신의 자가용에 붙여서 이용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오가는 사이 버스 전용 노선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몇 해 전, 버스 전용 차로를 사용하기 위해 20인승 벤츠 미니버스를 사용한 한국의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파격을 일삼는 오리어리 사장의 머릿속은 '비용 절감'과 '이윤 창출'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홍보를 위해서라면 여직원들에게 비키니 입히는 것까지도 불사하는 그의 뇌 속에서는 기업 윤리나 노동자 권리 따위를 들일 공간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비행기 표를 예약한 뒤에 사망한 승객의 가족이 요구한 환불을 라이언에어가 거절하는 일도 벌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오죽하면 오리어리는 2011년 영국 대중지 <더선>과 한 인터뷰에서, 기내에서 유로 포르노 방송을 상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세계 호텔들이 다 (객실에서 포르노를 상영)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요?"
이쯤 되면 오리어리나 라이언에어를 정상적인 경영자나 회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이 회사를 그냥 '나쁜 기업', '막장 기업'쯤으로 손가락질만 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라이언에어의 등장 덕분에 생겨난 후생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유럽 항공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등장한 라이언에어의 저가 전략 덕분에 유럽의 관광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실제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11년 오리어리 사장과 한 인터뷰에서 "영국과 유럽에서 지금껏 집에 머물렀던 수백만 명이 대륙을 이동하게 됐다"고 평했다. 빈번한 비행으로 생기는 탄소 발생 효과를 제외한다면, 비싼 항공비 때문에 발이 묶였던 유럽의 중산층에게 해외여행의 기쁨을 주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듯하다. 게다가 다른 대형 항공사들과 경쟁을 통해 라이언에어가 불러온 가격 인하 효과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적절한 규제가 항공사의 행태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다면, 라이언에어가 규제 완화의 '복음'을 알리는 전도사로 널리 얘기됐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 항공사가 이미 느슨해진 규제의 범위 안에서 머물기를 거부하고, 울타리를 넘나들며 노동자의 권리와 기본적인 기업 윤리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유럽 각국의 법원이나 행정 당국이 간혹 라이언에어의 기행에 제동을 걸지만, 레이언에어의 거칠 것 없는 활주를 막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여기에는 유럽 각국의 지역 정치인과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규모의 관광객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라이언에어가 만약에라도 지역 노선을 철수하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해당 지역 경제에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라이언에어는 영국 카디프 공항과 벌인 가격 협상이 어그러지자 더블린-카디프 노선을 철수해서 이웃한 브리스톨 공항으로 취항지를 옮겨버리는 '실력 행사'를 강행하기도 했다. 결국 카디프로 향하는 한 해 18만 명의 방문객의 발길은 끊겼다. 일부는 더 비싼 비용을 내거나 다른 길로 돌아와야 했다. <뉴스위크>지는 2001년 기사에서 "유럽에서 오리어리 사장은 매우 인기 있는 인물이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라이언에어를 유치하기 위해 그에게 로비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괴물'을 키운 복잡한 이해관계…한국은?
'괴물'의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이언에어의 홈페이지를 보면, 2003년(2137만 명) 이후 해마다 승객 수가 꾸준히 증가해서 2012년에는 8000만 명의 승객을 태운 것으로 집계됐다. 10년 동안 승객수가 4배 가까이로 늘어난 셈이었다. 물론 2013년 승객 수도 새로운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2000년대 후반 유럽이 금융 위기의 타격을 세게 겪었던 점을 생각하면, 라이언에어의 성장세는 더욱 눈부시다.
이러한 배경을 뒤로하고, 라이언에어는 서비스는 저열하지만 값싼 비행기 티켓 덕분에 소비자에게는 '욕하면서도 찾는 회사'가 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높은 실업률 덕분에, 직원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지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자리에 매달리는 일터'가 됐다. 또한 지역 경제와 지역 정치의 이해는 라이언에어를 '갑'으로 군림하게 하고 있다. 규제 완화를 내건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의 상대적인 방임도 라이언에어의 성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변수다. 어처구니없는 짓을 반복하는 라이언에어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이렇게 은밀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무수한 슬로건과 공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듯한 한국의 재벌 개혁도 어쩌면 이런 식의 불편한 이해관계의 조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규제의 틀을 부수고 거대하게 성장해버린 괴물을 상대하는 건, 지금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매우 어려운 도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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