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0분, 세부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이동한 후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 8시부터 현지 활동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피해 지역이 넓고, 피해 규모도 크다는 것을 현지에서 만난 NGO 지부장을 통해 들었다. 먼저 우리는 타클로반에서 두 시간 떨어진 오르목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로 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전기톱 등 현지 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고, 다른 한 팀은 세부 북부의 여러 피해 지역을 사전 답사하였다. 단 반티엔 시청 근처에서 프랑스 응급구조단(SAMU) 및 이스라엘과 대만에서 온 봉사단을 만났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베이스캠프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서 피해 지역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세부 북부 지역의 쓰러진 전봇대나 뿌리째 뽑혀버린 나무들이 나뒹구는 도로는 마치 전쟁터의 폐허 같은 풍경이었다.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집들은 바람에 찢기듯 쓰러져 있었고, 피난처로 지정되었던 학교도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지붕은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콘크리트로 지어지지 않은 관공서 건물마저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시청에는 쌀, 물과 같은 구호품이 쌓여 있었지만, 여전히 교통과 통신은 불량 상태여서 제대로 배포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불안과 공포에 떨던 주민들은 며칠 전보다는 심리 상태가 조금은 안정된 듯하였다.
다음 날 우리는 태풍의 직접 피해 지역인 오르목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나갔다. 항구에는 오르목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필품과 먹을 것을 보내기 위해 지연되는 배를 안타까움으로 기다리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던 오르목을 떠나 아무것도 없이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으로 세부로 피난 나오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사람들은 오르목으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보며,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도우러 왔느냐?" 등 이것저것을 물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해 주었다. 항구에서 만난 외국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배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찍어주며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자국민에게 꼭 알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 시간 동안 배를 타고 도착한 오르목에서 확인한 태풍 피해는 심각하였다. 오르목 항구는 피해 지역을 탈출하고 싶지만 표를 구입하지 못하여 무작정 기다리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바닷가에 있던 고급 호텔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무너졌고,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 다수가 며칠째 굶고 있었다. 어렵게 임시로 시청에 마련된 공간에 침상을 펴고 잠깐 눈을 붙인 후, 어둠이 걷히기 전 새벽 4시에 가장 심각한 피해 현장인 타클로반으로 출발하였다. 오르목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타클로반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알랑알랑 시티, 산타페 시티, 팔로 시티, 무니시펄 시티 등이 있는데, 그곳의 피해도 매우 심각했다.
▲ 지난 23일,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난 타클로반의 한 집터. ⓒAP=연합뉴스 |
3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타클로반에 들어갔다. 우리가 처음 내린 곳은 태풍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는 타클로반 공항이었다. 마치 재개발한다고 도시를 밀어버린 듯이 태풍이 지나간 시내 전체는 황량하였다. 그나마 식수가 나오는 곳에는 사람들이 물을 받기 위해 100m 넘게 줄을 서 있었고, 주유소 앞에도 역시 조그마한 기름통을 들고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여러 곳에서 차가 뒤집혀 있었고,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도로 한복판까지 밀려와 있었다.
우리 팀도 현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가지고 간 구호품을 피해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는 등 각자의 전공을 살려 일하는 분도 있었다. 우리는 길가의 쓰러진 나무를 모아서 치우고, 쓰레기를 모아서 태우며 전염병 발생을 막는 등 분야와 상관없이 현지에서 요구되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야전 침대에서 잠깐씩 쪽잠을 자면서, 식사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개인별로 할당된 물 한 병으로 세수와 양치질, 그리고 식수를 모두 해결하면서 지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성실히 일하였고, 모두 무사히 귀국 비행기를 탔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이 며칠을 계속 잠만 자고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려 본다. 지금 돌이켜 보니 마치 꿈속에서 겪은 일 같이 아득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참혹한 모습이 악몽과 같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바빠서 깊게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에게는 이번 봉사 활동이 재난 현장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좋은 계기였다.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느끼고 배운 교훈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재난은 빈부와 관련 없이 모두 겪지만, 그 피해의 정도는 빈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선 돈이 있는 사람들은 튼튼한 콘크리트 집에서 태풍을 맞게 되니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나뭇잎이나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집에서 태풍을 맞으니 사망과 부상의 정도가 빈부의 격차에 따라 확실하게 달라졌다. 상대적으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재난 현장에서도 식수나 각종 생필품을 먼저 확보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조차도 순위가 밀리고 소외되는 것을 보았다. 가장 큰 것은 정보 접근성의 격차였다. 어디서 무슨 구호품을 언제 배포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부터 필요한 의료 서비스와 다양한 도움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도 빈부의 격차에 따라 달라졌다. 재난 지역에서 피난을 가는 것도 재산의 정도에 따라 비행기 표를 구하거나 배편이나 차편을 마련하는 능력의 차이로 분명하게 반영되었다.
둘째, 바로 그러한 빈부 격차나 정보 격차를 시민들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타클로반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FRR이라는 현지에서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방송은 매일 하루 9시간 동안 지역 주민들과 타클로반에 있는 구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구호 활동과 재난 상황에 대한 뉴스를 업데이트해 주었다. 예를 들면 안전한 식수와 식량은 어디를 가면 구할 수 있으며, 안전한 피난처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구조 단체들이 이 도시의 어디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를 알렸다.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어디로 청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정부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방송하는 등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단체도 이 방송의 도움으로 활동 장소나 지급하는 구호품 등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으며, 활동 계획을 다른 단체들과 공유함으로써 1차 지원단이 돌아가고 난 후 2차 3차 지원단이 그 역할을 이어가도록 연계할 수 있었다.
셋째는 국가의 역할의 중요성이다. 상당수의 국민이 목숨을 잃고 집과 재산을 상실하는 심각한 재난 사태를 당했음에도, 중앙 정부는 피해자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피해를 축소하며 정치적 부담 회피로 일관하는 듯 보여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다. 우리 단체를 포함하여 현지에서 관련 단체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 각 단체가 하는 활동을 공유하고 현지 상황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얻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정부가 그러한 역할을 직접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데 따르는 미흡한 점이 전문가가 아닌 나의 눈에도 많이 보였다. 정부의 관리나 통제가 없이 일이 진행되니 각 단체가 모여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어려웠고, 전체적인 기획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처하다 보니 그 인원과 구호품으로 더 효율적으로 잘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즉, 이러한 재난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나 민간단체의 봉사에만 의존하고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하며, 정부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그러한 자조 노력과 봉사도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나라 정부는 필리핀 정부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같은 정도의 태풍이 들이닥쳐도 우리나라에서는 최종 피해가 훨씬 덜할 것이다. 최근 태풍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짐에도, 적어도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것과 같은 정도, 즉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이재민이 되는 심각한 태풍 피해가 재발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실제로 태풍 하이옌보다 더 큰 재해가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빈부 격차와 소득 양극화로 인한 차별도 더 심해지고, 각종 질환이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태풍 피해보다는 훨씬 더 크다. 국가는 바로 이러한 국민의 재난에 대처하고 구호하며,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극복하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부가 과연 그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유능한 정부인지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에서 태풍 피해를 겪지 않은 다른 지역 주민이나 일면식도 없는 다른 국가의 봉사단체들이 한시적으로 하는 봉사가 현지 주민들의 삶을 추스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피해로 실망감에 빠진 현지 주민들에게 조그만 희망을 주는 역할은 확실히 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자그마한 정성이 담긴 구호품과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따듯한 마음들이 모여서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느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나는 '복지국가 운동'과 '복지국가 정치'로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운동과 정치의 역할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그동안 방기되어 왔던 국가의 역할을 복원하는 것이다. 재난에 빠진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 국가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복지국가 만들기'를 통해 이것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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