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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아니다? 그렇다면 수서발KTX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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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아니다? 그렇다면 수서발KTX 정체는?

[시민정치시평] 실익 없는 수서발 KTX 사업

철도노조 파업이 끝났다. 형식적으로 그 마무리는 국회로 넘어갔고, 정부는 수서발 고속철도회사 설립에 착수했다. 파업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이 수서고속철도회사가 민영화로 가는 징검다리인지 아닌지였다. 철도노조는 당연히 그렇다는 판단이었고, 정부는 면허 발급 조건으로 주식 발행 및 양도의 대상을 공공기관으로 하는 공영지배구조를 유지하도록 못 박아 놓았기 때문에 민영화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으니 더 이상의 민영화 의심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공영지배구조 유지라는 면허 조건이 상법보다 우위의 구속력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고 대통령 말씀도 정치적 약속이지 법적 보장은 아니다. 어쨌거나 정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수서고속철도회사는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가정'하자.

수서고속철도회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부계획에 의하면 이 회사는 코레일의 자회사이며, 코레일이 41% 지분을 갖고 국민연금이 나머지 59%를 담당한다. 국민연금은 정부재정과 무관하며 말 그대로 국민들의 연금저축분이다. 소중한 국민들의 저축이기 때문에 국민연금법은 연금기금운용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연금법이 정한 절차와 규제에 따라 정부가 국민연금기금을 수서고속철도회사에 투자한다고 가정하자. 수서고속철도회사의 고수익·고배당을 예상한다면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우량투자일 수도 있다(?).

수서발 KTX는 수서에서 평택까지만 단독 운영이고 평택에서부터는 코레일 KTX의 기존 경부선·호남선 구간을 공용한다. 언론 보도 등에 의하면 수서고속철도회사는 역무, 승무, 정비, 유지보수, 사고복구 등 열차 서비스와 안전에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한다. 차량 역시 초기에는 코레일에서 임대 운영한다. 새 회사는 수서발 KTX 전용역인 수서, 동탄, 지제역의 역무와 기장, 열차 팀장만 직영하고, 코레일과 운영구간이 겹치는 나머지 14개 공용역의 업무는 코레일에 사용료를 지불하고 위탁한다. 2016년 개통 시점의 수서고속철도회사 인력은 431명으로 계획하고 있다. KTX 기장 108명, 열차팀장 92명, 승무사업소 41명, 역무 인원 82명 등 323명이며 본부 임직원은 108명이다.

ⓒ연합뉴스

정부 의도는 수서고속철도회사와 기존 코레일을 경쟁시킴으로써 코레일 개혁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레일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다. 독점, 즉 경쟁 부재에서 비롯되는 방만 경영 등의 공기업 비효율성은 근본적으로 공공성의 대가이지만, 그래도 공기업의 비효율성이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공기업 개혁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코레일 비효율성의 결정적 증거로 흔히 지적되는 코레일 부채 17조 원 중 절반 이상이 공항철도, 용산개발, 공공요금 인상규제 등의 정부정책 실패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 그 실패만큼 정부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공평하다. 지금처럼 철도부채의 책임을 전적으로 코레일과 철도노조에만 덮어씌우는 것은 불공평하고 비겁하다. 어쨌거나 정부가 내세우는 코레일 개혁의 당위성이 무조건 타당하다고 또 가정해 보자.

시장경쟁은 독점을 깨고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경쟁이 없으면 비효율적으로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기에 독점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혁파하기 위해서 경쟁원리를 도입한다는 정부정책의 방향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수서고속철도회사가 우리 철도에 경쟁과 효율성 증대를 가져다줄까? 정부는 철도경쟁체제 도입이 요금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 서비스 향상, 철도적자구조의 개선 등의 이득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과연 그럴까? 경쟁은 시장에서 발생한다. 시장이 없으면 경쟁도 없다. 수서 KTX와 기존 코레일 KTX가 서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KTX를 하나로 묶는 단일한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새로운 수서 KTX 수요는 기존 KTX를 대체하는 수요와 새롭게 창출되는 KTX 수요로 구성될 것이다. 전자는 기존의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을 기점이나 종점으로 하는 수요가 지리적 근접성 등 때문에 수서 KTX로 대체되는 수요이고, 후자는 고속버스, 시외버스, 항공편 등에서 수서 KTX로 새롭게 옮겨 타는 대체수요이다. 또 기존 KTX는 수서 KTX에 뺏긴 만큼 그 수요가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 KTX 등장으로 인한 기존 KTX 수요의 수서로의 이동이 단일한 KTX 시장의 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역, 용산역 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KTX 시장에 더해서 새로운 수서 KTX 시장이 하나 더 생겨나 결과적으로 두 개의 시장으로 KTX 수요가 분할·재조정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두 시장은 각각 지역독점이다. 왜냐하면 서울역이 지리적으로 편리한 고객은 서울역으로, 수서역이 가까운 사람은 수서역으로 가지 굳이 종로 사람이 수서로 가서 부산행 KTX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서 KTX나 기존 KTX는 속도, 요금 면에서 거의 동일하고 서비스는 수서 KTX가 좀 더 좋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두 KTX는 실질적으로 같은 상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수서고속철도회사 설립은 기왕의 KTX 독점시장을 지역적으로 분리된 두 개의 독점시장으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고 따라서 두 KTX 간의 경쟁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마치 지하철 1, 2, 3, 4호선을 운행하는 서울메트로와 5, 6, 7, 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공사 간의 경쟁이 불가능한 것이나, 또는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과 남부 시외버스 터미널 간의 경쟁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듯 지역적으로 분리된, 그래서 상호 간 진입 장벽이 확고하게 쳐져 있는 독점시장 간의 경쟁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경쟁이 모회사(코레일)와 자회사(수서고속철도회사) 간이라고 할 때 과연 그게 제대로 된 경쟁일까 아니면 실질적으로는 물밑 담합에 불과할까? 내 생각은 후자다.

그러면 중복투자를 하는 등의 무리를 하면서 굳이 새로 수서고속철도를 만드는 이득은 전혀 없을까? 합리적으로 볼 때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회계 구분이 용이해져 경영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과연 코레일의 시설 및 서비스 사용료의 합리적 산정 등에 필요한 원가계산이 제대로 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지금 코레일 상하분리제에 따른 한국철도시설공단과의 정산이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이마저도 의문이다. 설사 회계 투명성 확보의 이득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겨우 이 정도 이득을 얻고자 수서 KTX를 둘러싸고 이 난리를 치르고 있는 오늘의 상황이 부끄럽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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