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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열정...위대한 낭만주의 음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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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유와 열정...위대한 낭만주의 음악 속으로"

[알림]클래식학교(교장 진회숙) 5월 개강 참가 안내

"지금 우리에게는 어두운 시대를 견디고 헤쳐 나갈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 속에 그런 에너지가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개교한 클래식학교 진회숙 교장선생님의 말입니다. 진정한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 들어갈 클래식학교가 봄학기 5월 개강을 준비합니다. 이번 주제는 <자유와 열정의 시대,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입니다.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번 학기 클래식학교에서는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자유와 열정의 시대,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을 준비했습니다. 낭만주의(romantik)라는 용어는 원래 영웅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중세문학을 일컫는 로망스(romance)라는 고대 프랑스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19세기 고전주의에 이어 등장한 새로운 예술사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지요.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은 현실을 초월해 영원한 것, 도달할 수 없는 것, 환상적인 것을 잡으려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확인하고 논증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지요. 예술에서도 애매모호한 것들은 비판을 받았고, 판단의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는 미학이론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예술이 무엇인가를 모방한다는 생각은 빛을 잃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았고, 예술은 이성의 힘으로 포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표현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작품을 만드는 방식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그 동안 자신들을 옥죄었던 고전주의 형식의 틀을 깨고, 그 자신의 정서와 직관에 따라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예술창작에 적용되었던 형식과 법칙, 규율은 환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낭만주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적인 관념이나 예술형식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었습니다. 올 봄, 이렇게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프레시안

강의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5월 개강 강의는 5, 6, 7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제1강[5월 23일] 영원한 겨울 나그네 - 슈베르트
음악사에서 슈베르트는 예술가곡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작곡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가곡의 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는 평생 가난과 고독 속을 헤맸습니다. 음악의 방랑시인 프란츠 슈베르트. 자신의 대표작인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처럼 그는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황량한 겨울 벌판을 맨발로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방랑자 특유의 소외감과 상실감, 고뇌, 고독, 허무, 회한의 감정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냈습니다.
http://youtu.be/PUj4bZmJIHw
이번 강의에서는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을 다른 다큐 <크나큰 사랑, 한 없는 슬픔>과 함께 그의 주요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http://youtu.be/VnMjuJQo-wA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제2강[5월 30일] 낭만의 열정과 광기 - 슈만
'슈만' 하면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슈만은 말년에 정신병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으로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곤 했지요.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그의 신경줄은 늘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흔 여섯 해의 긴장과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폭발해 버렸습니다. 라인 강으로 몸을 던진 것입니다. 물론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구조되기는 했지만 결국 슈만은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서일까요. 슈만의 음악을 들으면 무언가 불안합니다. 곧 깨지고 말 열정이라고나 할까요. 어쩌면 이것이 낭만주의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슈만은 가장 낭만적인 작곡가였습니다. 열정, 슬픔, 광기, 갈등, 긴장, 환희, 절망, 고통, 사랑...낭만주의를 특징짓는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음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http://youtu.be/oY70MFw9zYA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 첫 부분 피아노의 여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입니다.

제3강[6월 13일] 피아노, 시가 되다 - 쇼팽
쇼팽은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에 속합니다. 200여 곡에 이르는 작품 대부분이 피아노곡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사를 통틀어 쇼팽처럼 피아노라는 한 가지 악기에 집중한 작곡가도 없을 겁니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갖고 있는 가능성과, 피아노 본연의 아름다움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척했습니다. 그의 피아노 멜로디는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화려합니다. 그래서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낭만적인 밤의 서정을 부드럽게 노래한 <야상곡(녹턴)>을 들어보면 쇼팽을 왜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http://youtu.be/EvxS_bJ0yOU
중국계 피아니스트 윤디 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야상곡> 작품 9의 2번입니다.

제4강[6월 20일] 음악계의 귀공자 - 멘델스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평생을 가난과 고독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멘델스존만은 예외에 속하지요.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일생 동안 순탄한 환경 속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음악에는 세상에 대한 과도한 반항의식이나 투쟁의지, 병적인 자기도착증세나 자기과시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낭만주의자들처럼 감정을 과장하거나 낭비하지도 않았지요. 순탄했던 자신의 삶처럼 음악도 그렇게 밝고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이런 그의 음악을 가리켜 인생에 대한 절실한 번민을 담고 있지 못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반드시 심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멘델스존의 음악에서 우리는 '음악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음악 본연의 모습의 보게 됩니다.
http://youtu.be/oXW60zFpRwc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 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와 요정들의 합창 <너 방울뱀아>입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곡을 붙인 이 작품은 시종일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데요, 특히 요정들의 합창이 아름답습니다.

제5강[6월 27일] 악마의 바이올린 - 파가니니
파가니니는 불세출의 기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기교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전까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도 시도하지 않았던 화려하고 다양한 연주기법을 개발했는데, 웬만한 실력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한 기법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파가니니를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대가로 고난도의 연주기술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바이올린의 역사는 파가니니 이전과 파가니니 이후 시대로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 전에 바이올린 기교는 지금처럼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는데, 파가니니가 이것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 덕분에 이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화려하고 열정적인 낭만주의의 정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http://youtu.be/PZ307sM0t-0
알렉산더 마르코프가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입니다.

제6강[7월 4일] 초절기교의 달인 - 리스트
바이올린에 파가니니가 있었다면 피아노에는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리스트는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자신도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옥타브, 트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음형, 현란한 분산화음 등 피아노로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 자신이 작곡가이자 흥행을 보장하는 피아니스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요. 당시 새로운 청중들은 호화로운 볼거리를 원하고 있었는데, 리스트는 매력적인 외모와 화려한 연주로 이런 청중들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건반 위로 몸을 구부리거나, 우레와 같이 건반을 내려치거나 애무하듯 건반을 어루만지는 매력적인 제스처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http://youtu.be/lejBlKS2t_w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입니다.

제7강[7월 11일] 낭만시대의 고전주의자 - 브람스
브람스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고전주의자로 불립니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고전주의 시대에 두고, 그 시대의 형식과 질서를 작품을 통해 구현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래서 브람스 음악은 당대의 화려한 낭만주의 음악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같은 작곡가들이 갖가지 요란한 제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을 때에도 브람스는 먼 발치에 서서 제목 없는 순수음악, 그 어떤 음악외적인 상념도 갖지 않은 절대음악을 썼습니다. 브람스는 작곡에서 영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영감이나 과장된 감정들을 아무런 원칙 없이 나열하는 것은 그에게는 무의미한 일이었지요. 어떤 영감이라도 이것을 진지하게 다루어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낼 때 비로소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는 고전적 형식 속에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http://youtu.be/1trE3ms3AGo
브람스 음악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교향곡> 3번의 3악장입니다. 사강의 소설을 영화화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제음악을 쓰여 더욱 유명해졌지요.

제8강[7월 18일] 라틴적 아름다움 - 생상스
생상스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였으며, 시작이나 극작에도 능한 19세기 프랑스의 전형적인 교양인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고전주의적인 우아함과 균형, 세련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로망 롤랑은 "생상스의 음악은 라틴적이어서 명랑하다. 정밀하고 간소하며 지극히 우아하다. 부드러운 화성, 흐르는 듯한 조바꿈, 넘쳐흐르는 청춘의 희열은 글룩이나 모차르트의 음악 같이 고전주의의 기초 위에 서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http://youtu.be/V_2FKcorqqE
생상스는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르간이 들어가는 교향곡을 썼는데요, 바로 교향곡 제3번 <오르간>입니다. 보여드리는 영상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디오 프랑세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실황입니다. 7월 26일 예술의 전당에서도 서울시향이 같은 곡을 연주합니다. 강의에서 미리 공부한 다음, 같이 공연을 보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강의는 서울 강남구 무지크바움(강남구 신사동 609 이소니프라자 802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돌아가면 파리바게트와 파스구치, 기업은행이 있는 건물이 나오고 그 건물 뒤편 대각선 방향으로 독도참치가 있는 빌딩 8층)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을 이용해주세요.

진회숙 교장선생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했습니다. 1988년 월간 <객석>이 공모하는 예술평론상에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평론으로 수상, 음악평론가로 등단했고, <객석>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에 예술평론과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이후 KBS와 MBC에서 음악프로그램 전문 구성작가로 활동하며 MBC FM의 <나의 음악실> KBS FM의 <KBS 음악실> <출발 FM과 함께> KBS의 클래식 프로그램 <클래식 오디세이> 등의 구성과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평화방송의 <FM 음악공감> 중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인 <SPO>의 편집장이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인문학습원의 오페라학교 교장선생님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딧세이> <나비야 청산가자>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등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클래식학교를 열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명색이 음악평론가인 저도 해외 유명 연주가나 교향악단의 연주회는 가 볼 엄두를 못 내거든요. 이유는 물론 그 놈의 웬수 같은 '돈' 때문입니다. 티켓값이 얼마나 비싼지 좋은 좌석에서 가까운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려면 비정규직의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돈을 한방에 질러야 합니다. 아니면 지휘자의 뒤통수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3층의 후진 자리에서 보아야 하는데, 뭐 이런 자리라고 그렇게 싼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입맛만 다시고 포기할 수밖에요.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지하에 있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작곡가들이 이런 상황을 보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통탄을 할까요?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엄청난 인세 수입으로 남부럽지 않은 호화생활을 즐겼을텐데 말이지요.

우리는 지금 이들의 '생음악'을 즐기는 데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음악을 쓰는 동안 이들은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습니다. 자기 음악을 연회장의 여흥 정도로만 생각한 사람들의 무지에 절망하고, 하인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 대우에 상처받았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이런 고통에 대한 창조적 대응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나는 이런 고통에 주목합니다. 그 음악을 쓰면서 작곡가가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대해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모차르트처럼 전혀 고통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 작곡가도 있고, 베토벤처럼 소리 높여 열변을 토하는 작곡가도 있습니다. 이렇게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단 하나. 이들의 작품은 모두가 그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어두운 시대를 견디고 헤쳐 나갈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 속에 그런 에너지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운명>을 예로 들어보지요. 저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 걷잡을 수 없는 힘과 역동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강렬함에 전율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얼마나 강렬하게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쳤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베토벤은 서른 여덟 살이던 1808년, <운명>을 완성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계속되는 귓병의 악화로 고통 받던 시기였습니다. 한때 그 누구보다 완벽했던 감각이, 그리고 음악가로서 그 누구보다 완벽해야 할 감각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베토벤은 절망했습니다. 그가 빈의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서에는 이런 절망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창작에의 열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겠지요. <운명>은 이런 고난 속에서 탄생한 곡입니다. 베토벤은 일생 동안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는데, 이 곡을 들으면 베토벤이 자신의 다섯 번째 교향곡인 <운명>에 이르러 비로소 '광명'을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단 네 개의 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립니다. 베토벤은 운명의 노크 소리를 상징하는 이 네 개의 음을 가지고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류 최대의 교향곡을 완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이 단순한 모티브를 거대한 교향곡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1악장에서 제시된 운명은 2악장의 부드러운 휴식기와 3악장의 과도기를 거쳐 4악장에서 비로소 빛나는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비록 세상의 소리로부터 차단되어 있어도, 그리고 그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어도 베토벤의 운명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으로 인해 그의 정신은 더욱 치열해졌고, 그 치열함이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광명을 던져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클래식 전문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루한 일상들이 큰 입을 벌리고 내가 평소에 품어왔던 자부심과 자존심을 여지없이 집어 삼키곤 했습니다. 사는 것이 서러웠고,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이 숙명처럼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를 외치는 베토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며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 내 가슴도 폭발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통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강렬한 전율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 베토벤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닐까. <운명>을 들으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 아닐까. 그때 속으로 펑펑 울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신파조로 흘렀나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평생 탐험해도 끝이 없는 거대한 대양과 같은 클래식의 세계. 이제 여러분과 함께 흥미로운 탐험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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