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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논란, 누가 사슴을 말이라 우기나"

[이철희의 정치전망] NLL 이슈, 보수여권의 자충수?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28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생각나는 한 주였습니다. 새누리당이 NLL 발언과 관련해 보이고 있는 모습은 분명 사슴인데, 그걸 말이라고 우기는 꼴에 불과하죠. 지록위마의 주체는 조고(趙高)이고, 그 조고가 나라를 망칠 때 부역했던 자가 이사(李斯)입니다. 따라서 관심의 대상은 누가 조고이고, 누가 이사인지 가려내는 일입니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읽으면 그 어디에도 보수가 주장하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원문에 없는데, 심각한 난독증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력한 가설은 그들이 원문을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처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한 발언 관련 보고서를 쓰고, 사실상 왜곡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입에 맞아떨어진 이 왜곡된 주장만 받아들인 사람들이 원문에 대한 독해 없이 그냥 NLL 포기 운운했다고 보면 앞뒤가 맞아떨어집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행위가 새누리당이 부랴부랴 국정원 국정조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원내대표끼리의 합의사항이던 '검찰 수사 후 국정원 국정조사'를 거부하던 새누리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6월 국회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자고 합의한 것이죠. 그런데 막상 대화록이 공개된 후에 내용을 확인해 보니 애초의 주장을 입증하는 문구나 문맥이 없어서 더는 버틸 수 없었던 탓에 국정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돌변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우선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차원의 시간 끌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 드러난 사실만을 검토하면 노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록 원문에 그런 언급이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2007년 11월 민주평통 연설에서 "NLL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게다가, 정상회담 합의문 어디에도 NLL 포기 관련 조항이 없습니다. 따라서 논란이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증거는 또 있습니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의 증언이 그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에 "NLL 가지고 갈등이 있거나 한 적은 없었다"는 것.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나가는 김 장관에게 노 대통령은 협상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NLL 포기를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수진영이나 새누리당이 이런 공세를 펴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NLL 포기'는 보수 내 강경보수가 복지나 경제민주화 등의 어젠다를 뒤로 밀어내기 위한 카드인 것이죠. 지난 대선에서도 반공 보수는 이 NLL 카드로 새누리당 내외의 경제민주화 인사들을 제압하고, 경제민주화 드라이브도 약화시켰습니다. 이 NLL 카드를 계기로 과거사 논란에 발목이 잡혀 곤혹스런 처지에 있던 박근혜 당시 후보의 정체성은 개혁적 보수에서 전통적 보수로 다시 회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실이 드러나자 반공 보수가 다시 이 카드로 국면을 반전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이번 주에 드러난 사실 중 주목해야 할 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가 지난 대선 중에 이미 정상회담 대화록을 입수했고, 일부를 공개했다는 사실입니다. 김무성 의원이 최고중진회의 발언에서 스스로 고백한 얘기입니다. 새누리당이 문건을 입수했다면 지난 정부 시절 누군가 이를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젠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이 책임 있는 해명을 해야 합니다. 또 녹취나 보도를 통해 대화록 입수를 인정한 권영세 주중대사와 김무성 의원, 대화록 제공과 관련해 MB의 혐의에 대해서 검찰이 수사해야 합니다.

▲ 서상기 정보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며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사실을 밝혔다. ⓒ연합뉴스

언급했듯이, 지록위마에서 핵심은 누가 조고이고, 이사인가 하는 점입니다. 조고는 당시 황제보다 더 힘이 센 최고 실세였다. 선대위 총괄본부장이던 김무성 의원? 아니면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일까요? 당시 여권에서 가장 힘이 셌던 사람이 조고입니다. 그가 바로 사실을 사슴을 말이라고, 힘으로 왜곡한 주체입니다. 그가 누군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사는 누구일까요? 아닌 걸 알면서도 조고의 편을 들었던 사람이 이사입니다. 지금 이 사건과 관련해 이사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보수언론입니다. 팩트를 중시하는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해석이라는 말로 양자의 의견을 등가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NLL을 포기했다'는 교조를 지키기 위해 온갖 엉터리 논리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지난 27일 자 머리기사로 보도한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2007년 국방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NLL 유지를 고집하자 북한이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어보라"고 했다는 기사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통령이 공개강연에서 "NLL을 지켰다"고 했는데 자국 대통령의 말보다 북한 당국의 말을 더 신뢰하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보수언론이 북한의 말을 신뢰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면서 정상회담 대화록의 공개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선 사실상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흔히 강경보수 블록을 얘기할 때 보수언론을 빼놓아선 안 된다는 점이 새삼 확인된 셈입니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당분간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은 국면전환을 시도해야 합니다. 우선 정상회담 보도로 관심을 돌린 다음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두 가지입니다. 야당이 야권 공조를 이루는 한편 범국민기구를 띄우면서 전선을 단일하게 만드는 데 나서느냐, 나선다면 얼마나 포괄성을 갖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권 내 개혁적 인사들의 목소리가 표출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반공 보수의 무리한 억지에 반기를 드는 모습이 여권 내에서 보이기 시작하면 이 국면은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NLL 이슈는 보수 대통령을 만들어내고, 위기수습의 묘수였지만 그것 때문에 강고한 보수체제가 실질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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