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중요한 건 노무현처럼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목숨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할 수 있느냐다. 한국사회처럼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나라에서 야권의 정치인이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결투를 벌이지 않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아 대통령이 될 길이란 전혀 없다.
답답한 건 시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길 갈망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정작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의 성채를 쌓고 세련된 퍼포먼스를 벌여 시민들의 환심을 얻으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고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 성공은 일시적이다. 안철수는 그들과 다른가? 안철수가 그들과 달리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와 사랑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무현처럼 해야 한다.
노무현의 실패에서 반면교사를 삼되 노무현을 노무현으로 만든 것, 즉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결연히 맞서 싸우는 태도와 자세를 안철수의 방식과 스타일로 흡수해야 한다. 안철수가 노무현을 노무현 되게 했던 합리적 핵심을 발전적으로 지향할 수 있느냐에 정치인 안철수의 운명이 걸려 있다.
안철수가 대결해야 할 한국사회의 근본악들은?
그렇다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한국사회 특유의 재봉건화(再封建化,re-feudalization) 경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칙, 특권, 불공정, 비합리, 몰상식 등이 재봉건화 경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고 이런 요소들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 승자 독식 및 패자부활전의 부재, 불로소득 추구행위의 만연, 패거리주의와 학벌주의의 기승, 사익추구행위의 창궐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 같은 한국사회 특유의 재봉건화 경향은 식민, 분단, 반민주 등의 한국사회 고유의 역사적 경험에서 연유한 적폐들의 누적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류라 할 신자유주의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사회화 경향의 심화, 경제의 금융화 경향, 주주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수다한 문제들, 민영화, 시장개방, 무역자유화, 고용유연화, 경쟁의 촉진, 제조업에 대한 금융업의 우위,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이 상당부분 신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문제들이고 이런 요인들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인 양극화(산업 간, 기업 간, 지역 간, 노동 간, 계층 간)에 부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안철수가 정면대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악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한국사회의 통합과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결정적인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재봉건화 및 신자유주의의는 안철수가 최우선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이다. 안철수는 특권과 반칙, 불공정성, 비정상성, 반/비합리성이라는 전근대적 요소들을 지양해 근대성과 공정성을 회복시켜야 하고,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현대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점들도 완화시켜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재봉건화를 저지하고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병폐를 완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자임하는 정치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재봉건화 저지와 신자유주의가 끼치는 해악의 중화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정치'가 우선한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악이 무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철학과 정책패키지를 마련하는 것, 견인불발의 투쟁심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싸우려는 결의를 벼리는 것은 안철수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권을 하고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가 더 필요하다.
'정치'에 대한 올바른 개념정립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정치의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의 결손 혹은 결핍이 문제인 나라다. 재봉건화를 저지해 근대성과 공정성을 복원하고, 신자유주의가 내포한 문제들을 지양하려고 할 때 한국사회를 주름 잡고 있는 재벌, 관료, 검찰, 수구언론, 보수학계, 종교권력 등의 특권과두동맹이 집요하고 극렬한 저항을 할 것이다. 물적 토대와 상징권력과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 특권과두동맹의 반대와 저항을 제압하지 않고 정의롭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특권과 두 동맹의 저항을 뚫고 좋은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정치'뿐이다. 재벌 등의 비선출 권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다종다양한 사회적 균열들을 포착해 제도 안에서 해소시키는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재벌 등의 비선출 미시적 권력들이 봉건영주 노릇을 하면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지양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가 정치이며, 현대의 '행정국가화'된 국가의 사실상 주인 노릇을 하는 관료들을 합법적으로 제어할 권한과 책임도 '정치'에게만 있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치'를 복권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기제이며 대표적인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과 의회를 '대표와 책임의 원리'가 철저히 구현되는 방식으로 선출하고, 이들 간의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재배분해, 재벌 등의 비선출 권력을 통제하며, 국민들의 사회적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정치'를 정상화시키고 복원시켜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은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도입과 국회의원의 대폭 증원 및 정당명부비례대표의 전면 도입 등일 것이다.
바르게 정립된 '정치'를 무기삼아 한국사회의 근본악과 비타협적으로 싸울 때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 안철수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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