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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주의 특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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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공주의 특효약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12>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여우공주가 숲이 깜짝 놀랄 약속을 했다. 맹수들과 맹금들이 더 이상 초식동물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육식본능을 죽이는 특효약을 만들어 내놓겠다는 약속이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따로 나뉘지 않는 숲속나라를 이룩하겠다며 초식동물들을 열심히 설득하고 다녔으나, 초식동물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자 내놓은 특단의 대책이었다.
숲은 자신이 육식동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며 웅성거렸다.

사실 여우공주의 그 약속은 사슴이 만든 환약(丸藥) 때문이었다. 사슴이 먼저 개발해 숲에 내놓은 그 환약은 맹수나 맹금들의 탐욕을 절반 이하로 뚝 떨어뜨리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숲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초식동물들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사슴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급기야 여우공주가 숲의 왕이 될 가망이 없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초조해진 여우공주는 약초박사인 늙은 염소를 찾아가 큰절을 한 뒤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사슴이 만든 환약(丸藥)보다 더 강력한 약이 시급합니다. 맹수들과 맹금들의 탐욕을 누르고 초식동물들이 마음 놓고 숲에서 살아갈 수 있는 특효약을 만들어 주세요."
"공주님께서 몸담고 계신 곳에는 하이에나들이 우글댑니다. 제가 그런 약을 만든다고 하면 그들이 저를 잡아먹으려 할 겁니다."
늙은 염소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우려의 말을 꺼냈다.
여우공주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하이에나들보다 더 높은 자리와 약 제조에 관한 한 모든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늙은 염소는 약재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이에나들이 늙은 염소가 만들 환약에 대해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늙은 염소만 보이면 콧등에 굵은 주름을 잡고 으르렁거렸다. 여우공주는 하이에나들을 어르는 한편, 초식동물인 염소가 육식동물들의 무리에 들어와 환약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부지런히 알리고 다녔다.
그러나 초식동물들의 마음은 좀처럼 여우공주에게로 향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하이에나들은 등을 돌릴 기세였다.

하루는 여우공주가 하이에나 무리들을 대거 이끌고 늙은 염소를 찾아갔다.
늙은 염소는 여기저기서 구해온 약재 보퉁이를 풀어놓고 성분대로 분류하던 중이었다. 염소가 들뜬 표정으로 약초의 성분과 효능을 설명하는 도중, 여우공주가 보퉁이 속의 약초들을 골라냈다.
"이 약촌 빼야겠어요. 아, 이것도, 이것도, 그리고 저것도요."
"약초를 그렇게 죄다 빼면 아무런 약효가 없어요. 사슴 환약 짝퉁도 되지 못합니다."
늙은 염소의 얼굴이 무른 질그릇같이 찌그러졌다. 여우공주는 약속과 다르다는 염소의 항의에 딴청을 부렸다.
"이런 건 다 빼야 해요. 날 밀어주는 건 역시 육식동물들이에요."
여우공주는 차갑게 대답했고, 늙은 염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여우공주는 숲에 특효약을 공개했다.
"이번 환약은 초식동물 여러분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육식동물들이 이 약을 의무적으로 복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전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킵니다. 이제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더불어 사는 100% 숲속나라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한정선

* 자신과 철학이 분명히 다른 한 집단에 들어가려 할 때, 사람들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듭니다. 특히 비주류이던 사람이 기득권 세력과 합류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명분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박근혜 후보와 손잡으며 이 호랑이굴 론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위원장이 잡고 싶은 호랑이는 바로 재벌입니다. 언론에 비추어진 김 위원장은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 마련에 고분분투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발표한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비록 그의 핵심적인 조치가 빠졌으나 그나마 신자유주의 시장주의자의 논리보다 좀 더 왼쪽으로 옮아온 건(현시대정신에 밀린 측면도 있지만) 얼마간 그의 공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벌을 옹호하는 당에서 재벌개혁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의 오류입니다. 오히려 서민경제 파탄의 주범인 새누리당과 박 후보의 액세서리 역할을 함으로써 면죄부를 주었을 뿐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던 김 위원장은 현재 새누리의 계륵(鷄肋), 즉 닭갈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의도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과 함께 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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