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카고학파의 거두였던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11~1991) 교수는 1982년 '규제의 포획 이론'(Capture Theory of Regulation) 등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가 계량분석을 통해서 입증한 것은 정부 규제의 상당수는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규제로 인해서 이익을 얻는 기업 같은 집단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결과적으로 공익을 유린하고 빈부격차를 늘리며 경제를 후퇴시킨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료들이 기업과 이권집단들에 사로잡혀 조정 당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관료들도, 정치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존재이며, 그들이 재벌 같은 이권집단들과 친밀하게 지내면 뇌물, 향응, 전관예우 등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독과점 기업 같은 이권집단들이 정치인과 관료들을 포섭하여 만들어 내는 규제로 전형적인 것이 관세를 높여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다.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어렵게 하여야 독과점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관세는 카르텔의 어머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권집단들이 관료와 정치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은 후에 하수인으로 부리는 수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뇌물과 향응 그리고 퇴임 후 일자리 같은 이권을 나누어 주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듯한 이론과 데이터로 자신들의 이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처럼 국민을 속이는 전형적인 수법 네 가지를 소개하겠다.
1) 현실을 매우 복잡한 것처럼 꾸며서 일반 국민들은 알기 어렵고 전문가들만이 잘 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위 '전문가'를 내세워 억지주장을 한다.
2) 거짓말을 만들어 내어 논리를 정당화한다.
3) 견강부회한 정보와 논리를 제시해서 국민들이 혼동하게 한다.
4) 규제가 '애국적'인 것처럼 왜곡하는 논리를 전파하여 '민족주의적 감정'을 악용한다.
국민을 속이는 네 가지 수법
제당협회의 박상민 전무이사가 10월 21일에 기고한 내용은 네 가지 기법을 사용하는 좋은 사례이다.
1) 매우 복잡한 현상인 것처럼 꾸며서 일반 국민들은 알기 어렵고 전문가들만이 잘 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위 '전문가'를 내세워 억지주장을 한다.
설탕은 외형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국제 원당 및 설탕 시장의 특성 자체는 매우 불안정하고도 복잡하여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박상민 전무이사 글 중)
사실 설탕 시장은 매우 단순하다. 99% 이상 순도에 썩지 않는 식품으로 수백 년 동안 제품의 특성도, 원료도, 제조방법도 바뀐 것이 별로 없다. 매우 단순한 시장인데도 복잡하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제당협회'와 '인하대 연구교수'를 동원하여 반론을 쓰게 했다. 그런데 그들이 쓴 글을 보면 전문가'라고 인정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거짓말과 억지주장으로 가득하다.
2) 거짓말을 꾸며내어 국민들을 속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고관세율을 유지하거나 기타 비관세 장벽을 유지하여 설탕 수입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자국 내에 원당 생산 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캐나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들도 동일합니다. 캐나다는 반덤핑관세 57% (중략) 말레이시아는 제당회사에 한해 수입허가권을 주는 실질적 수입 억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박상민 전무이사 글 중)
사탕수수와 사탕무를 생산하는 농민이 있는 나라들은 당연하게 높은 관세율을 유지한다. 우리나라가 농민과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쌀과 쇠고기의 수입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사탕무와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많은 미국, 유럽은 관세가 높다. 그런데 한국은 설탕원료 재배농가가 없으므로 관세가 높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제당업계가 제시하는 사례가 설탕 수입국가인 캐나다와 말레이시아이다. "우리나라처럼 자국 내에 원당 생산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수입을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사실일까? 캐나다 설탕협회에 따르면 2012년 앨버타 주에서 농부들이 87만 톤의 사탕무를 수확하여 약 12만 톤의 설탕을 생산했다.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금년 7월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말레이시아 산 설탕을 수입해서 롯데마트 등에서 팔았다. 말레이시아에는 사탕수수 농부들이 많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제당협회가 캐나다와 말레이시아에는 원당 생산 기반이 없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또 다른 거짓말을 보자. 그의 주장과는 달리 캐나다의 기본 관세율은 4.5%, 말레이시아는 0%이다(<중앙일보> 2012년 11월 1일).
▲ 대형 마트에서 한 고객이 설탕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3) 견강부회한 정보와 논리를 제시해서 국민들이 혼동하게 한다.
또한 제당기업들이 설탕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구조라는 주장 역시 오해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소비자보호원에서 조사한 주요 국가들의 설탕 가격 비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설탕 가격은 항상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습니다(출처 : <한국소비자원 국내외 시세차 조사> 2010년 11월 주요 8개국 중 7위, 주요국 평균비 31% 저가 / 2011년 3월 주요국 평균비 16% 저가). (박상민 전무이사 글 중)
사탕무나 사탕수수 재배 농민이 있는 나라는 수입 장벽이 있고 당연히 내수 가격은 비싸다. 우리나라의 쌀과 쇠고기가 국제 시세에 비해서 비싼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나라들과 설탕 작물 농업이 없는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설탕가격을 낮게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원당 가격과 국내 설탕 값에 관한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대한제당협회 자료를 종합한 <중앙일보> 기사(11월 1일)에 따르면, 2008년 1월 국제 설탕가격은 315원인데 국내 판매가격은 690원이었다. 무려 54%의 마진이 있었다. 최근인 올해 9월에는 국제가격이 630원인데 국내 가격은 1070원이었다. 41%나 마진이 있다. 운송비용 같은 비용을 계산해도 30% 정도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 너무 지나치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 그리고 대한제당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이나 담합을 한 것이 적발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담합을 하지 않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는데, 아직까지도 가격이 높게 유지되고 시장점유율이 거의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폭리가 가능한 것은 관세율이 높아서 수입이 억제되고 3개 회사만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규제가 '애국적'인 것처럼 왜곡하는 논리를 전파하여 '민족주의적 감정'을 악용한다.
관세가 철폐되면 일시적으로 싼 가격의 설탕이 유입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국제시장의 특성 때문에 결국 국내 식품업계 및 소비자들은 국제 가격 변동 및 수급 불안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어 더욱 불안한 물가 불안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되어 곡물 메이저들에게 국내 시장을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박상민 전무이사 글 중)
앞뒤가 맞지 않는 요설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밀가루와 콩기름도 관세가 매우 높아야 한다. 그런데 밀가루의 관세는 3%이고 콩기름의 관세도 5%일 뿐이다.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FTA를 체결한 이유가 관세를 낮추기 위한 것인데 그들이 설탕의 관세를 30%로 유지하는 데 '성공'한 은밀한 내막은 알아내기 어렵다. FTA 전문가인 최상목 교수는 "FTA 협상에서 설탕 관세 30%선 방어를 위해 다른 품목에서 우리가 크게 양보"했다고 했는데(<서울신문> 2011년 10월 6일) 과연 "크게 양보"한 품목이 '광우병으로 문제가 된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한미 FTA 협상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새누리당의 김종훈 의원 등 FTA 관계자들은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폭리 취하는 재벌, 양산되는 엘리트 범죄
필자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비단 설탕의 담합 범죄와 폭리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권집단의 관료 포획" 문제가 수없이 벌어지고 있고 이 문제가 엘리트 범죄를 양산하여 뇌물, 부패, 불신 풍조를 만연하게 한다. 너무나 많은 똑똑한 인재들이 범죄 집단의 하수인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이와 유사한 수법으로 밀가루, 식용유, 세탁비누, 조미료, 사료원료, 간염백신, 고추장까지 담합을 해서 폭리를 취했다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서민의 소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휘발유, 휴대전화, 생명보험 등의 가격이 외국에 비해서 한국이 매우 비싸고 수입이 어려운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처럼 소수의 재벌은 폭리를 취하고 서민들의 피해는 누적된 것이 빈부격차와 가계부채 그리고 내수소비 침체의 핵심적인 원인이다.
다음은 필자가 <내일신문>에 2006년 8월 24일 기고한 칼럼 "정책실패의 원인, 이익집단에 포획된 관료들"의 내용의 일부이다.
심각성을 더해가며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이끈 정책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광부 (명분) 주요 IT산업인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상품권으로 경품을 지급해야 한다. (진실) 도박산업이 최고의 돈벌이인데, 사행성 게임에 유사화폐인 상품권을 경품으로 지급하면 준합법적 도박이 될 것이고 폭발적인 수요가 생긴다. (결과) 온 나라가 도박 놀음 '바다이야기'에 빠져 서민경제가 큰 피해를 보았다.
건교부 (명분) 주변시세보다 싸게 분양하면 구매하는 사람이 부당이익을 얻으므로 가격을 시장가격에 맞게 책정해야 한다. (진실) 판교 땅 284만 평을 평당 90만 원 정도에 수용하는데 2조5000억 원이 들었다. 이를 126만 평의 택지로 조성하는데 평당 400만 원 원가로 5조 원 정도가 들었다. 이 땅을 평당 약 900만 원에 11조 원을 받고 팔아 약 6조 원의 차익을 남겼다. (결과) 평당 800만 원 수준이던 분당의 아파트값을 평당 2000만 원대로 끌어올렸다. 이 여파로 수도권에 부동산 광풍을 만들어내 수백조원 규모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갔다.
이권집단들의 유무형의 영향력에 포획된 관료와 정치인들이 이상한 논리를 동원하여 이권집단의 이익을 위해 종사한 사례는 매우 많다. 지난해에 터진 저축은행 도산사태도 단속을 해야 할 금융감독원이 단속을 받아야 할 저축은행에 포획된 것이 원인이었다. 저축은행 감사의 상당수가 금감원 출신이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1970년 이전만 해도 정치인과 관료들은 사익이 아닌 공익에 헌신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티글러는 관료나 정치인들도 공익보다는 사익을 위해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정치와 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필연적으로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이권집단에 포획되어 그들에게 조정 당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이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게 대신 국정을 운영하라고 맡겨왔던 '간접민주제'는 실패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들이 직접 법률 제정과 예산 집행을 통제하는 '직접민주제'를 보완하는 정치혁신이 필수적이다. 스위스와 캘리포니아가 눈부시게 경제성장을 하면서 행복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로 발전한 것은 직접민주제도가 덕분이었다. 이러한 원리와 해결방안을 필자가 집필하고 창비에서 지난주에 발간한 <혁신하라 한국경제>에 자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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