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경제에 속하는 업종들은 어떤 것이며 이권경제에 속하는 사업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업종과 기업에는 혁신경제적인 성격과 요소경제적인 부분과 이권경제적인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논리 전개의 편의상 뚜렷한 특징만을 강조하며 설명하겠다.
1)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업은 대부분이 혁신경제다. 삼성, 현대, 대우 중공업의 조선업은 국제시장에서 강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이권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현대자동차의 수출 부문도 혁신경제에 속한다. 이들이 우리 경제의 희망이다. 많은 수출품목들은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므로 요소경제적인 성격도 있지만 이러한 사업도 경쟁자와는 다른 창조적인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들과 벌이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창조형 렌트를 치열하게 개발해야 한다.
수출제조업이지만 이권경제에 속하는 예외도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설탕정제업이나 석유정제업의 경우 상당한 물량을 수출한다. 이 경우에 수출은 계절적인 변화에 대응하여 안정적인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아서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싼 것이 일반적이고, 수출에서 버는 이익은 별로 없다. 즉, 국내에서 이권경제를 영위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수출을 하는 것이다. 현대차나 삼성TV는 외국에 수출하는 가격은 싸고 국내에 파는 가격은 비싼 경우가 많이 있다. 한국 내의 높은 점유율로 독과점적 렌트를 만들어 가격을 올린 부분은 이권경제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7월 9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용역으로 작성한 '이동통신 시장 단말기 가격형성 구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의 판매가격이 대부분의 주요 외국들에 비해 수십만 원 비싸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애플 아이폰4S(32GB)의 판매가는 한국에서 81만 1000원이었으나 외국에서는 평균 57만 9000원이었다. 한국이 40%나 높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2의 한국 판매가는 73만 7000원으로 외국의 평균 39만 9000원에 비해 85%나 비쌌다. 이처럼 국내 스마트폰의 판매가가 외국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스마트폰 기기가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판매되는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이통사 위주로 유통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와 같이 삼성전자와 통신회사의 카르텔을 만들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권경제의 모습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또한 2012년 8월 출시한 스마트TV 'ES9000'의 미국 출시 가격은 9999달러로 한국 돈으로 환산하며 약 1140만 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80만 원에 팔고 있다. 같은 제품임에도 국내 판매가격이 미국보다 74%나 비싼 셈이다. 이처럼 한국 내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한 가격 인상은 우리 국민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며 혁신산업에서 공공연하게 이권을 챙기는 사례이다.
이권경제와 혁신경제를 구분할 때, 수출가격과 내수가격의 차이가 좋은 판단 기준이 된다. 한편 수출로 회계처리되지만, 관계회사의 영향력을 이용한 현대차 계열의 물류회사 글로비스와 광고회사 이노션 같은 회사들의 국제사업은 이권산업적 성격이 강하다. 자체 경쟁력보다는 대주주의 영향력으로 이익을 만들기 때문이다.
2) 내수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며 인허가가 필요한 산업은 대부분이 이권산업이다.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정유사업, 가스사업과 정부의 정책이 많이 반영되는 방송사업과 통신사업도 이권산업적인 성격이 강하다. 방송회사도 이권경제의 대표산업 중의 하나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권을 따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다수의 사립대와 사립중고교 운영도 허가가 필요한 이권사업이다. 비싼 등록금과 정부보조금으로 정규직 교수들과 교사들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지만, 정작 인사권은 재단이 행사한다. 학교의 경영권을 암암리에 사고판다는 사실도 이권사업임을 증명한다.
이처럼 이권을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각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학생들을 뽑겠다고 주장해서 입시제도는 지독하게 복잡해졌고 입학사정 수수료로 돈벌이를 하는 학교들도 많다. 중고교 학생과 부모들은 너무나 복잡한 입시제도 때문에 힘들고, 대학에 들어가면 비싼 등록금 때문에 허덕이고, 졸업을 하면 지나치게 많이 배출된 대졸자들 때문에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는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이권적 요소를 줄이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교원자격증 제도, 중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제도, 학교인가 제도들도 일종의 이권이다. 이처럼 교육관계자들이 이권에 얽히고설킨 것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품질이 형편없이 낮은 이유다.
▲ 스마트폰. ⓒ뉴시스 |
혁신경제에 속한 업종, 이권경제에 속한 사업
3) 금융산업은 이권경제적 성격이 강하다. 은행과 보험회사도 이권산업에 속한다. 은행과 보험 모두 수많은 사람들의 돈을 받아서 운영하다가 상당시간이 흐른 후 되돌려주는 사업의 면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사업이 이권사업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1인당 예금 5000만 원을 정부가 지급보증해주고 '은행'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자, 저축은행의 이권은 매우 커졌다. 다수의 서민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자기 돈처럼 투자하거나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수십조 원 규모의 자금이 모였고,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핵심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제멋대로 착복했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출신 감사에게 월급을 주면 감독기관이 알아서 범죄행위를 눈감아주었다. 결국 부실로 파산하여 예금을 지급할 돈조차 부족해져서 20조 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으며, 관련자 다수가 감옥에 들어갔다.
신용카드업도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이권사업이다. 모두 30여 개 회사가 카드사업을 영위하지만, 그중에서 신한, 삼성, 국민, 현대카드가 국내시장의 60% 정도를 점유하는 과점시장이다. 정부가 소매점에서 카드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강제함으로써 신용카드 회사들의 이권을 키워주었다. 이들은 2002년 카드대란을 일으키며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낸 바 있고, 최근에는 과도한 수수료로 자영업자들을 착취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보험회사와 증권회사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사업을 영위할 수 있고, 가격 결정 등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이권사업이다.
금융업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워낙 중요하고 혁신을 이끄는 역할도 한다. 특히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창업투자 금융,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조성과 신용 창조 기능, 사회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보험기능, 증권시장을 통해서 자본을 조달하고 회사의 적정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등은 현대 자본주의 질서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금융인들이 은행업, 신용카드업, 보험업, 증권업에 종사하면서 자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기업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등 경제 시스템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금융업들이 이권산업적인 요소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금융기관의 주주나 경영진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익을 낸 것으로 착각하여 과도한 배당과 급여를 가져가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업은 정부의 인허가 방침과 관리 감독 정책에 따라서 손익이 크게 좌우되는 산업이다. 둘째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업종이 의외로 파산하기 쉽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의 은행들 절반 이상이 파산했고, 2002년 주요 신용카드회사들이 사실상 파산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우리 은행들이 파산에 직면했었고, 이 때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 여럿이 파산했고, 최대 보험회사인 AIG가 사실상 파산했고 2011년 한국의 저축은행 태반이 파산했다.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므로 파산에 대비한 유보를 늘릴 필요가 있다. 셋째로 이들의 특성상 민간회사 성격도 있지만 공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현명하고 철저하게 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금융업은 국가 기간산업적인 성격이 있고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므로 무리하게 민영화를 추진하거나 재벌이 소유하게 하거나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차지하지 못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4) 자격증이 부여되는 직업은 대부분 이권산업이다. 변호사와 의사는 자격증 공급이 제한되는 이권집단들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미국의 의료비용이 2009년 기준 국민소득의 약 17%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불구하고(참고로 한국은 약 7%), 국민들의 상당수가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어 죽게 되는 처지가 된 근본 원인은 의사집단과 변호사집단 그리고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의 야합 때문에 생긴 부조리한 이권평형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재판 비용이 많다는 핑계로 의사들은 높은 치료비를 청구하고, 의료비의 규모가 커지면 사설보험회사와 제약회사가 이익을 내기 쉬운 구조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공무원, 공기업, 교사, 변호사, 의사 등 이권을 가진 직업을 갖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하며 청춘을 허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이권을 적절히 줄여야 한다. 공무원과 교사 자리가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과도하게 많다는 것은 자리 값, 즉 렌트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이 자릿값을 낮추면 문제의 상당 부분은 해결된다. 이들의 급여를 점차 내리고 대신 부족한 교사와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늘여야 한다. 즉, 이권경제를 축소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요소경제의 장점인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담합으로 이권을 유지하는 산업은 경쟁을 유도하여 요소경제와 혁신경제로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모든 산업과 기업에는 혁신‐요소‐이권산업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그 비중이 회사마다 다를 뿐이다. 예를 들자면, (1) 우리나라의 설탕 제조업의 경우, 담합으로 인한 초과이익 부분인 이권산업적인 요소가 전체 이익의 80%를 넘는다고 생각한다. (2) 자영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소형 식당의 경우 이권경제의 요소는 거의 없고 요소산업적인 성격이 70%를 넘는 듯하다. 여기서도 음식 메뉴 개발과 앱을 이용한 마케팅 같은 혁신적인 요소를 발전시켜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3) 대우중공업의 선박건조업의 경우 수출의 비중이 100%에 근접하므로 대부분이 혁신사업이다. 물론 국제시장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저가선박수출과 경쟁하는 요소경제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세 가지 경제의 구분은 국민경제 시스템을 분석하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4)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외국사업 비중이 2011년 기준으로 74%가 되며 국내사업도 기술집약적이므로 혁신산업적인 요소가 80%가 넘는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기업과 산업들은 혁신산업으로 태어나서 요소산업으로 천이했다가 이권산업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창업 초기에는 혁신산업이었지만, 2000년 중반 시장점유율이 60%를 넘기면서 이권산업적 요소가 커졌다. 특히 주요한 콘텐츠를 네이버의 울타리 내부에 가두어 두는 독점 추구 방식은 다른 벤처기업들의 탄생과 성장을 막는다고 비판받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의 개방형 플랫폼 전략과 대비된다. 또한 검색 결과를 보여줄 때 콘텐츠의 원저작자를 찾아주지 않고 복제한 것을 앞에 보여주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원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하여 창작의욕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검색서비스의 질도 매우 낮다.
이마트의 경우에 1993년 창동에 1호점을 세우면서 유통산업 혁신을 이끌었으나, 2012년 현재 홈플러스 테스코 및 롯데마트와 함께 과점상태가 고도화되면서 이권산업적인 요소가 크게 높아졌다. 지역독점적인 성격 때문에 재래시장이나 동네 가게에 비해서 가격이 높은 제품이 많고, 공급자들에게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요구하기도 하며 제품별로 담합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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