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쟁도 좋지만 양 그룹이 대한민국 경제에 끼친 기여도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먼저 장하준 그룹의 주장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조업과 금융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00년 중반 보수진영의 상당수 지식인들이 '이제는 제조업 시대가 아니라 금융업 시대'라며 금융규제 완화를 목소리 높여 외칠 때 이들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집중적으로 설파했습니다.
2. 금융업 발전도 중요하지 않나요?
⇨ 금융업 발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금융업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조업 발전이고 서민경제 발전입니다. UN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2000년대 미국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금융업 부가가치 비율은 북유럽 국가의 2배로 나타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금융자본에 많은 돈을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북유럽의 정책이 100%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금융업 발전보다 제조업 발전과 서민경제 발전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3. 북유럽 국가들은 금융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 2000년대 초 <월간중앙>이 북유럽 금융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사를 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북유럽 금융인들은 기본적으로 금융업이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즉 금융업 종사자들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제조업과 서민경제에 과도한 부담을 주게 되면 종국에는 금융업도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 장하준 그룹의 한미FTA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세계은행이 분류한 RTA(지역 간 무역협정)를 보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중남미식 RTA입니다. 이 RTA는 자신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이웃 나라의 물품을 저관세율로 사 주고, 석유나 원자재를 저가에 공급해 주며 우의를 다지는 상호호혜적 RTA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식 RTA입니다. 이 RTA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상대국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며 추진하는 RTA입니다. 세계은행은 미국식 RTA를 가장 거친 RTA라 표현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유럽식 RTA입니다. 이 RTA는 미국식 RTA에 비해 다소 덜 거치나 본질적으로 미국식에 가까운 RTA입니다. 장 교수는 한미FTA처럼 거친 RTA를 졸속으로 추진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5.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 지난해 미국의 수출은 1조 4804억 달러, 수입은 2조 2654억 달러로 무역적자 규모는 7850억 달러였습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가장 큰 해는 2006년이었습니다. 그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8798억 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수출 3255억 달러의 2.7배에 달했습니다. 공교롭게도 2006년은 한미FTA 협상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6.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 수출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수출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도 좋지 못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액 비율을 수출의존도라고 하는데,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과거에 우리나라 수출의존도가 많이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 수출의존도는 100개국에서 40위(1990)~46위(1995) 수준이었고, 2000년대 초중반에도 100개국 중에서 35위(2000)~36위(2005) 수준이었습니다. 전 세계 평균보다는 다소 높지만 엄청나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2009년 수출의존도 순위는 100개국 중에서 19위가 되었고, 2010년에는 18위가 되었습니다.
7. 수출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나라와 유난히 낮은 나라들은 어디이고, 또 이런 나라들 경제에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 2010년 국제통계를 보면 홍콩과 싱가포르의 수출의존도가 각각 174%, 158%로 1위와 2위를 기록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나라가 선진국이지만 소득불평등지수는 중남미 수준이라는 겁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그만큼 내수가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납니다. 보통 인구가 적은 나라의 경우 내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수출에 주로 의존하는데, 그 대가로 내수희생이 수반됩니다. 반면 미국, 일본 등과 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는 내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출보다는 내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8. 홍콩과 싱가포르의 소득불평등지수는 어느 정도 수준이고, 우리나라 인구는 또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홍콩의 지니계수는 0.533(2007)으로 137개 국가 중에서 13번째로 빈부격차가 컸고, 싱가포르의 지니계수는 0.478(2009)로 29번째로 빈부격차가 컸습니다. 지니계수 0.5는 중남미 수준입니다. 이 두 나라는 내수 희생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도시국가들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줍니다. 또 우리나라 인구는 200여 개 국가 중에서 25위 수준입니다.
9. 장 교수의 노동의 유연성에 대한 시각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장 교수는 노동의 유연성을 양적 유연성과 질적 유연성으로 나누고 전자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숙련된 근로자를 함부로 자르는 것은 기업을 위해서도 실이 크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근로자들에게 다양한 기술을 익히게 해서 멀티플레이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질적 유연성입니다. 참고로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환경보고서'를 보면 양적 유연성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10. 세계은행의 '기업환경보고서' 내용을 소개해 주세요.
⇨ 세계은행(World Bank)이 2009년에 발표한 '기업환경보고서'(Doing Business 2004~2008)를 보면, 지난 15년간 우리나라와 슬로베니아, 대만, 핀란드, 그리스, 룩셈부르크 등은 노동유연성 순위는 낮았지만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미국, 덴마크, 스위스, 일본 등은 노동유연성 순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장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이 자료는 양적 유연성과 경제성장률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1. 장 교수는 공기업이 사기업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없음을 밝혀, 정부의 민영화 시도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 199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무분별한 공기업 민영화로 국가경제, 특히 서민경제를 파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공기업 개혁보다는 알짜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경제관료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사기업의 효율성이 높을 것이라는 추측뿐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사기업의 효율성이 높다면 적자가 많은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할 터인데 이들은 알짜 공기업만을 민영화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장 교수는 이런 민영화 맹신론자들에게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어 주었습니다.
12. 그러나 경제관료들은 여전히 민영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고, 특히 의료민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경제관료들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의료의 질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즉 미국식 의료체제로 개편하는 것은 이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더 큽니다. 만약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미국식으로 전면 개편된다면, 국민들은 지금보다 건강보험료를 두 배 더 내야 하고, 또 병원에 가서도 본인부담 의료비를 지금보다 3배 더 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GDP 대비 공공의료비 비율이 우리나라의 두 배이고, GDP 대비 개인부담 의료비 비율이 우리나라의 3배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경제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의료민영화의 이런 가공(可恐)할 역기능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13. 경제관료들은 의료민영화가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어떤 산업이 폭리를 취하면 일자리가 상당히 창출됩니다. 그곳으로 투자가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를 분석할 때는 항상 비용(기회비용 포함)과 편익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다이야기'(도박사업의 일종)의 경우, 일자리 창출에 상당히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것이 퇴출되기를 간절히 소망했고, 정부는 그것들을 퇴출시켰습니다. 그 사업의 국민경제적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의료민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14. 그러나 장하준 그룹의 재벌활용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 장하준 그룹은 재벌들이 경영권 상실 위험에 노출될 경우 소신 있는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장기적인 투자보다 단기적인 이익 추구에 급급한 주주들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재벌들과 대타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재벌들에게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인정해 주는 대신, 그들로 하여금 세금을 더 내게 해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보편적 복지를 이루자는 겁니다.
15. 차등의결권이라는 게 뭡니까?
⇨ 우리나라는 주식 1주에 대해서 1표의 의결권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 선진국들은 각 기업이 정관에 따라 주식 1주에 대하여 0.5표에서 1000표에 이르기까지 의결권을 차등 부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후자와 같이 특정 주식에 1표 이상 혹은 그 이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차등의결권 제도라 합니다. 참고로 유럽 300대 상장기업 가운데 20%가 다양한 형태의 차등의결권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16. 일부 국가들이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 실력 있는 기업주가 알짜기업을 키우고도 단지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능한 기업주나 국내외 투기자본에게 기업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17. 장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재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 재벌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재벌들이 이 대안에 관심이 있다면 얼마의 세금을 더 내면 차등의결권을 줄 것이냐고 물어올 텐데 미동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18. 재벌들이 장하준 그룹의 대안에 무관심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장하준 그룹은 국제적인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지만, 당사자들은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장하준 그룹의 우려대로 몇 년 안에 일부 대기업들이 투기자본의 손으로 들어간다는 징후가 있다면 그들은 법인세 인상과 차등의결권을 맞바꾸자는 운동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벌들은 그런 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기 때문에 장하준 그룹의 대안에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 장하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19.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나요?
⇨ 설마가 사람을 잡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자동차 사고로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가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동차를 끌고 나옵니다. 자신이 죽을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상 자신들이 국제적인 투기자본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장하준 그룹의 대안에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20.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 이상으로 복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가 말하는 복지 수준과 내용이 불분명합니다.
⇨ 2007년(가장 최근 자료)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중은 7.6%로 33개 회원국 평균 19.2%보다 11.6%포인트 낮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액이 OECD 평균보다 약 143조 원 더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011년 우리나라 GDP는 약 1237조 원). 이런 상황에서는 복지를 하루아침에 OECD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재벌개혁 등 여타 개혁이 매우 중요합니다.
21.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요?
⇨ 최소한 30년은 필요합니다. 30년 동안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을 해마다 0.4%포인트씩 올리면 OECD 평균과의 격차 11.6%포인트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30년 동안 해마다 복지지출을 10% 이상 늘려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2.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 MB정부가 발표한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복지지출액은 2012년과 2013년 각각 92조 원, 97.3조 원입니다. 증가분은 5.3조 원, 증가율은 5.7%입니다. 또 2013년 GDP가 1364조 원이라 가정할 때 0.4%포인트는 5.5조 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만약 정부가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을 기존 목표에 비해 0.4%포인트 올리게 되면 2013년 복지지출 증가분이 5.3조 원이 아니라 10.8조 원이 되고, 복지지출 증가율도 5.7%가 아니라 11.7%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마다 복지지출을 11.7% 내외로 늘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23.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려면 30년 이상 걸린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재벌개혁 등을 통해서 서민경제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 그렇습니다.
24.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연간 27조 원의 복지지출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 박 후보가 재원조달방안을 충분히 세워놓고 27조 원의 복지지출 확대를 약속했다면 불행 중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와 있는 새누리당의 재원조달방안으로는 연간 27조 원의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25. 새누리당은 어떤 재원조달방안을 갖고 있나요?
⇨ 4.11 총선 직전에 나온 새누리당의 재원조달방안을 보면 세제개편으로 2.2조 원, 세출구조조정으로 9.8조 원, 건강보험 구조조정으로 2.7조 원, 도합 14.7조 원의 재원을 조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26. 당시 새누리당이 세제개편으로 2.2조 원이 아닌 5.3조 원을 확보한다고 공언하지 않았나요?
⇨ 공약은 그렇게 했는데 그중 3.1조원은 지난해 국회에서 이미 입법화된 것이기 때문에 미래 약속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경제신문>도 4.11 총선 직전에 사설을 통해 새누리당 공약의 이런 허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27. 현실적인 시각에서 볼 때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재원조달방안으로 확보되는 재원은 어느 정도 되나요?
⇨ 두 정당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건강보험 개혁으로 연간 2.7조 원을 확보하고, 지출개혁으로 5조 원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또 두 정당이 약속을 지킨다면 세제개혁으로 새누리당은 2.2조 원, 민주당은 8.7조 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을 모두 더해 보면 새누리당의 재원조달방안으로 확보되는 재원은 모두 9.9조 원이고, 민주당은 16.4조 원입니다.
28. 두 정당의 재원조달방안으로 확보되는 재원이 모두 10~16조 원인데 이들은 27~30조 원의 복지지출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제가 한국경제, 특히 서민경제를 부활시키는 데 복지개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선진국 수준의 복지를 하려면 연간 140조 원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두 정당이 연간 10~16조 원 확보해서 복지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황당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복지개혁은 재벌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대학교육개혁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혹은 융단폭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9. 노동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개혁도 중요하고, 또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중요합니다. 최근 노동계에서 주35시간 노동제를 제안하고 있는데, 저도 유사한 관점에서 주4일 노동제를 제안합니다. 주5일 35시간(1일 7시간) 노동제도 좋고 주4일 36시간(1일 9시간) 노동제도 좋은데, 가능하면 주4일 근무제가 정착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주4일 근무제는 근로자들이 원하는 날에 주1일 휴일을 더 갖는다는 것이지, 전국적으로 월요일이나 금요일을 휴무일로 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4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국가발전과 서민경제 부활의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고, 국민들 개개인에게도 인간다운 삶과 자기계발이 가능한 삶이 보장될 것입니다.
30. 주4일 근무제가 국가발전과 서민경제 부활의 획기적인 계기가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 주4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첫째,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영세자영업자 문제가 대부분 해소됩니다. 600만 명의 자영업자 중 1/3이 줄어들 수도 있고, 절반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사자 수가 그만큼 줄어들면 그들의 1인당 소득도 1/3 혹은 절반 이상 오르게 됩니다. 이것은 서민경제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31. 주4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중소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 중소기업(법인형 중소기업)의 운명은 영세자영업들의 운명과 연동합니다. 영세자영업들이 어려우면 중소기업도 어렵고, 영세자영업들이 활로를 찾으면 중소기업도 활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세자영업들이 과잉상태에 빠지면 생존을 위해 중소기업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반면, 영세자영업들의 과잉상태가 해소되면 중소기업도 시장을 과도하게 잠식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32. 주4일 근무제 성공을 좌우하는 관건은 유도방식입니다.
⇨ 정부가 주4일 근무제를 유도하려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활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업부담 사회보험료 할인-할증을 통한 유도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도입 첫해에는 35시간 미만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기업부담 사회보험료를 10% 할인하고, 주당 36~40시간에 대해서는 기업부담 사회보험료를 현행보다 10%~2% 할인해 주며, 41~45시간에 대해서는 2%~10% 할증, 45~50시간에 대해서는 13%~25% 할증, 50~55 시간에 대해서는 30%~50% 할증, 그 이상에 대해서는 시간당 할증률을 10%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할증률은 국민여론들을 고려하여 초기에는 작게 하되,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합니다.
33. 주4일 근무제는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 주4일 근무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지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주4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완전고용상태(비자발적 실업이 없는 상태)가 실현되기 때문에 1990년대처럼 구인자의 지위보다 구직자의 지위가 더 높아집니다. 지금처럼 고용불안 때문에 고심할 필요가 없고, 채용과정에서 비정규직을 택할 필요도 없으며, 또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또 주4일 근무제 완전 정착 이전에 완전고용상태는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34. 주4일 근무제를 유도할 때 크게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이 임금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 유도방식이 결정된다면 임금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제도가 들어서면 기업의 수익·비용구조가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노사 양측은 달라진 기업의 수익-비용구조 속에서 임금협상을 하면 됩니다.
▲ 한국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스펙' 쌓기, 취업난 등 만만찮은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
35. 대학교육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나라 대학들이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해서 중소기업들에게 연구개발을 할 여력이 없고, 우수인력을 유치하거나 양성할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선진국들과 달리 직업교육기관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그 기관들의 교육의 질도 낮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는 대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고, 교육내용도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가 큽니다. 최근 직업능력개발원이 대졸 신입사원들을 상대로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대로 육성하고 있는지 질문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편이라는 응답(64.0%)이 그런 편이라는 응답(30.4%)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대학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36. 국제적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인 IMD도 최근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요구부합도가 58개국 중에 46위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습니다.
⇨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평가지표를 절대화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괴리도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실사구시형 대학개혁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이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OECD가 바람직한 대학교육의 모델로 제시한 핀란드의 대학교육은 50%의 연구중심대학과 50%의 직업중심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대부분 연구중심대학을 추구합니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실학을 거부하고 주자학에 안주하고자 했던 18~19세기를 연상시킵니다.
37. 상당수 대학 교수들은 산학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대기업들이 대학을 장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 대학들이 중소기업과 산학협력을 하는 데 무관심하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그 빈틈을 대기업이 노리고 들어가는 겁니다. 핀란드와 싱가포르, 일본의 성공사례를 참고하여 제대로 된 대학개혁을 해야 합니다.
38. 과도한 산학협력이 인문학을 죽이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인문학을 살리고 대학개혁도 하고 싶으면 정부 대표, 대학 구성원, 각계전문가, 시민단체들의 대표로 구성된 30~40명의 대학개혁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들로 하여금 대학개혁을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 대학개혁위원회는 ▲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대학개혁 목표를 세우고, ▲ 이를 토대로 새로운 대학평가 기준을 만들고, ▲ 이 기준을 토대로 현재의 대학지원금과 교수지원금을 전면적으로 재배분하고, ▲ 추가적인 대학 지원금 배분도 주도해야 합니다. 그 속에는 북유럽과 같이 별도의 인문학 보호정책, 지원정책이 들어갑니다. 대학개혁위원회가 대학에 대한 평가기준, 지원 기준을 바꾸면 얼마든지 인문학은 보호될 수 있습니다.
39. 선진국에서는 대학개혁 과정에서 공익형 이사제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 1960년대 68혁명 이후 유럽각국은 대학으로 하여금 다수의 공익형 이사를 선출하도록 하여 대학의 부정, 비리, 퇴행을 차단했지만 사학법에 대한 기득권층의 강한 저항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기득권층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이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학개혁위원회'를 반드시 구성해서 개혁을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
40. 마무리합니다. 장하준 그룹과 연대그룹은 매우 중요한 보완관계에 있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 복지개혁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재벌개혁은 방어적 개혁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개혁은 노동개혁, 대학교육개혁과 동시다발적으로 혹은 융단폭격식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장하준 그룹과 연대그룹, 그리고 노동개혁가들과 대학교육개혁가들은 매우 중요한 보완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정책은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동시다발적으로 혹은 융단폭격식으로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기(失機)했습니다. 최근의 복지개혁과 재벌개혁도 다른 개혁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실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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