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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들의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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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들의 아고라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3> 채식주의자 구별법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느와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우화(寓話)가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들.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침을 한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우리의 습성을 바꾸려는 불순한 자가 있습니다."
검독수리가 숲의 광장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 폭탄 발언을 했다. 검독수리는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채식주의자인 그 자가 독수리들을 불온한 생각으로 물들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독수리들이 집단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새 나라의 독수리 왕족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며, 그런 위험한 자를 그냥 놔둘 경우 맹금의 위엄이 없어지고 공중의 질서도 무너지게 될 거라고 성토했다.

"우리는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그리고 커다란 날개를 가졌기에 공중을 지배합니다. 우리들이 채식을 하게 되면 발톱과 부리가 퇴화되어 하등한 종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괴이쩍은 유전자를 가졌을 그 자를 색출해 이 숲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검독수리는 참수리를 곁눈질하며 무리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채식을 한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참수리는 침묵하고 있었다. 반응이 없는 참수리를 향해 검독수리가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푸드득거리다 접었다. 무리들도 그를 따라 날개를 폈다 접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자기 취향이니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채식의 위험성도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통이 작은 한 독수리의 말에 몇몇 독수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많은 눈들이 쏘아 보자 이내 날개를 움츠렸다.

"무슨 방법으로 색출하지요? 겉으로 봐선 구분이 안 되는데."
"부리를 벌려보고 깃털도 뽑아봅시다. 풀을 먹는 자의 혀와 피부는 파란색일 겁니다."
"아니, 뇌를 구멍 뚫어 조사합시다."
"뇌를 벌려본다고 생각을 알 순 없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이러쿵저러쿵, 흥분한 무리들이 서로에게 고함을 질렀다.

"날고기를 먹어보라고 하면 확연히 그 정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검독수리의 칼날 같은 음성이었다. 흥분한 무리들이 역시 탁월하다고 날개를 퍼덕였다.
"차례대로 한 입씩 찢어 삼키세요."
검독수리는 고깃덩어리를 광장 한 가운데에 던졌다.
일렬로 줄을 선 독수리들이 고기를 삼키고 지나갔다.

"이런 어이없는 검사에 난 결코 응할 수 없소."
참수리는 움쩍하지 않았고 무리들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검사 거부는 채식을 인정하는 겁니다. 또 침묵은 우리들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참수리를 노려보던 검독수리가 좌중으로 눈을 돌렸다. 무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참수리에게 달려들어 맹렬하게 쪼아댔다.
참수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무리를 떠났다.

그 후, 독수리들은 주기적으로 고깃덩어리를 쪼아야 했다. 사냥할 때 왼 발톱을 많이 사용했을 때에도, 비행할 때 좌측 회전비행을 즐겼거나, 정해준 비행 공간보다 더 높게, 더 낮게, 혹은 더 멀리 날았거나 하는 경우에도, 독수리들은 어김없이 고깃덩어리 앞에 서야 했다.
독수리들이 제 그림자만 보아도 소스라칠 만큼, 숲은 평온해졌다.

ⓒ한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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