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가에서 복지의 기준으로 삼는 건강보험료가 과연 공정한 기준일까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교에서 학비지원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그간 겪었던 불공평한 부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매년 3월이면 학교 행정실은 학비지원 신청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올해부터는 원클릭이라는 시스템이 생겨 행정실과 담임교사를 통하지 않고도 신청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분주하다.
학비지원은 기초수급자 소득수준의 130% 이하에 해당하는 경우, 대부분 대상자로 선정되지만, 130%를 초과하는 학생은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기 위해 본인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를 갖출 수 있는 온갖 서류와 글로 증명해야 한다.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학비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교육청에서 정해주는 범위 안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 대상자 선정을 위해 여러 가지 서류를 검토하다 보면 건강보험료의 많고 적음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게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알 수 있다.
ⓒ원클릭 시스템 |
건강보험을 기준으로 학비를 지원하는 게 합당한가
예를 들어, 40평 아파트와 3층 빌딩을 소유한 A라는 사람이 매달 급여 190만 원을 받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의 가족 4명은 A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있는데, 이 때 A의 보험료는 대략 5만6000원 정도가 된다
월급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A는, 아파트와 빌딩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급여 190만 원에 해당하는 보험료만 내게 되므로 5만6000원이라는 적은 금액을 내게 되는 것이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5만6741원(소득194만4215원) 이하로 나오면 국가로부터 지원되는 많은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자녀들의 학비지원과 급식비지원이 있다.
A의 건강보험료로 보면 A의 자녀들은 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빌딩이라는 엄청난 재산이 있는데도 말이다.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은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건강보험료 책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24평짜리 아파트와 자동차를 소유한 B가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다니던 직장을 관두었다고 가정하자. 실직으로 당장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가입되어 있던 직장건강보험에서 지역건강보험으로 바뀌면서 보험료가 변경될 것이다. B의 가족이 4명이고 급여가 190만 원이었다고 가정하면, 직장에 다니고 있었을 때는 A와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학비와 급식비를 지원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건강보험으로 변경된 후에는 보험료가 재산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보험료가 적어도 7~8만 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많다. 만약 B의 건강보험료가 5만6741원을 초과하게 되면 B의 자녀들은 학비지원과 급식비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B가 실직함으로써 생기는 불이익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불공평한 일이다. 정작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는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고 또 보험료가 적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실직을 한 후에는 건강보험료가 올라가고 또 보험료가 높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거꾸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예로 든 A와 B같은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혼자 생계를 책임지더라도 학비지원 받기는 어려운 일
또 다른 불합리한 예를 들어보자. 법원에서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고 별거중인 부부의 자녀가 학비지원을 신청하고자 할 때는 부부의 건강보험료를 합산한 총액으로 학비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즉, 부부가 따로 살면서 각자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두 사람의 직장건강보험료를 합산한 금액으로 학비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또 별거중인 아내가 무직으로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 있고, 남편이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해 있을 경우에는 지역보험과 직장보험을 합한 혼합보험료의 금액으로 지원여부가 결정된다. 법원에서 정식으로 이혼결정을 받지 않은 채 따로 사는 부부도 적지 않을 텐데, 이 경우에는 실제로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거중인 배우자의 급여가 학비지원 결정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부부의 건강보험료를 합산해서 학비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 하더라도, 몇 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살다가 자녀의 학비지원 때문에 건강보험료 조회를 위한 정보제공에 동의해 달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학비지원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폭력남편으로부터 피해 살다가 학비지원 신청으로 정보제공을 요청하는 바람에, 남편이 부인의 거주지를 알고 찾아와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법원의 정식 이혼 판결이 없으면 실제로 별거중인 배우자가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더라도 학비지원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학교로부터 받는 학비지원과 급식비지원은 대개 3월에 신청하기 때문에 3월 건강보험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도 문제다. 빌딩을 소유한 A가 불로소득으로 생활하다가 잠깐 2~3월께 급여 19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취직해 직장건강보험을 유지한다면, 그 자녀들은 그 해(年)의 학비지원과 급식비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된다.
일단 3월의 심사로 학비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은 학기 중간에 어떤 변동이 있더라도 그 해 1년간은 지원받을 수 있다. 한편, 직장생활을 계속 해 오던 사람이 그 즈음(2~3월)에 이직을 위해 잠깐 쉬면서 지역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보험료가 인상되어 자녀들의 학비지원과 급식비지원 혜택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참으로 불합리하다.
허술하게 운영되는 국가의 복지제도
이런 제도를 알고 악용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지만, 국가의 복지제도가 이렇게 허술하게 몇 년씩이나 운영되어 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생기는 것은 바로 직장건강보험료와 지역건강보험료를 산정하는 방식 때문이다. 직장건강보험료는 개인의 재산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급여소득만을 기준으로 책정하고, 지역건강보험료는 개인이 소유한 모든 재산을 급여소득으로 따져 보험료를 책정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지역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무직이나 비정규직, 저소득 자영업자는 자가(自家)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금액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복지 혜택을 건강보험료만으로 결정하는 불합리한 정책이 문제인 셈이다. 건강보험료가 공정하게 책정돼 복지 기준으로서 작용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예로 든 A와 B의 경우를 보면 건강보험료가 공정하게 책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예로 든 별거부부의 경우를 보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불합리한 정책을 개선하여 건강보험료를 공정하게 산정한 후에 복지의 기준으로 삼든지, 아니면 좀 더 공정한 다른 기준을 마련하여 복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정말로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이 제대로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북유럽 국가의 이상적인 복지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보편적인 복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관심의 반영으로 근래에 와서는 정치인들이 앞 다퉈 복지에 대한 공약을 내걸곤 한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이루어질 수 없는 멀고 먼 이상(理想)이라 생각되어 대부분의 국민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실제로 무상급식이 실현되고 있고 이것을 복지의 척도로 여기는 풍토로 바뀌고 있다.
멀지 않아 교육비와 급식비를 포함한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현되어 이런 복지 기준에 대해 왈가왈부한 사실이 우습게 느껴질 날이 오겠지만, 그런 날이 올 때까지는 최대한 복지혜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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