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달 말 '쇄신 연찬회' 이후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던 홍준표 대표 체제는 더 큰 악재를 만나면서 뿌리째 흔들리는 모양새다. 당 지도부는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로부터 시작된 이번 사건을 "비서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여론이 일파만파 악화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조기 등판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현 지도부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당내에서도 팽배한 것.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안감에 휩싸인 일부 의원들은 "당 해체 수준까지 가야한다"며 위기감을 표출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5일 의원총회 전 기자들과 만나 "당을 해산하고 현역 의원 전원이 불출마하는 방안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계 권영세 의원 역시 "지금 상황을 보니 홍 대표 체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다른 사람이 나와야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지도부에 불신을 드러냈다. 지난 10.26 재보궐선거 당시 확인된 민심이 이번 디도스 사태로 더욱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는데도, 지도부가 느슨한 대처를 하고 있다는 것.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뉴시스 |
한나라, '디도스 악재'에 휘청…"박근혜, 더 이상 수렴청정 말아야"
당내 일각에선 이미 내년 1월 한나라당이 총선용 선거대책위원회를 조기 출범시키고 박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아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었다.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은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친박계의 거센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디도스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당을 박 전 대표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이날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해 "이미 당은 '박근혜당'이 되지 않았느냐"면서 "박 전 대표 본인이 정면에 나서서 당을 추슬러야 하는데 마치 수렴청정하는 것처럼 하고 있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상처를 안 입으려고 하는 기회주의적인 약삭빠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좌고우면 할 때가 아니고 신중한 태도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다"며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전면에 나서서 총선·대선을 책임져야 한다. 싫든 좋든 박 전 대표는 그런 자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인 목사는 홍준표 대표 등 현 지도부를 겨냥해서도 "홍준표 대표는 쇄신을 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쇄신의 대상 중 한 사람"이라며 "현재 지도부인 홍 대표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쇄신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디도스 사태를 '파도'에 빗대 "큰 파도가 밀려올 때는 마치 익사할 것 같지만, 그 파도가 지나가면 더 큰 파도가 온다.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파도를 타고 넘는 방법을 우리가 강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며 이 같은 요구를 일축했다.
이밖에도 홍 대표는 "야당은 의혹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는 수사당국의 요청이 있을 시 어떤 내용이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며 원칙적인 내용만 되풀이 했다.
박근혜, 이번에도 관망? 당 안팎서 '정면승부' 요구
디도스 사태를 계기로 박 전 대표에 대한 당 안팎의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물론 친박계 의원 다수는 그가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평소 '여당 속 야당'으로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둬온 박 전 대표 입장에서야 '침몰'해가는 한나라당의 쇄신 논의에 휘말려 좋을 것이 없는데다가, 자칫하면 흙탕물만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 지난 쇄신 연찬회 당시 "안철수는 아웃복싱을 하고 있는데, 박근혜는 인파이팅이나 하라는 것이냐"(윤상현 의원)는 친박계의 볼멘소리는 이런 계산 때문이다.
최근 '원조 쇄신파'로 복귀한 원희룡 최고위원이 지난달 30일 "친박계가 지난 공천 때 피해를 입고 정부 기조에 (박근혜 전 대표가) 거리를 뒀기 때문에 국민들이 차이가 있다고 판단해줄 것이란 믿음은 착각"이라며 "20~40대에선 '한나라당 됐거든? 우리가 내년 4월 정리해드립니다'라는 흐름이 대다수"라며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을 이 때문이다.
정작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선관위 해킹 사건과 관련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의혹없이 철저하게 수사를 하고 엄벌에 처해야한다"고만 언급했다. 이번 범행이 비서의 '단독범행'이라며 애써 거리를 둔 한나라당의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그는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당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총선이니 나와서 이렇게 하라, 말라 하는 것은 국민 앞에 무책임한 이야기"라며 "누가 나선다고 국민이 지지해주나. '우리가 이렇게 바뀌었고 앞으로도 잘할 거니까 기회를 주고 도와 달라'고 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다. 그런 전제가 충족됐을 때 저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 전엔 부끄러워서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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