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유주의는 '보수'만의 이념? 틀렸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유주의는 '보수'만의 이념? 틀렸다!"

최장집, 자유주의 재조명…"한국서 보수는 자유주의자 아냐"

"한국에서는 지식인에 의한 자유주의조차 뿌리내릴 기회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좌우 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가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 모두 다른 이유로 자유주의를 부정했다. 보수파들이 자유주의를 슬로건, 구호로 말하면서도 냉전반공주의와 동일시하며 실제로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면, 진보파들은 자유주의를 친미적 부르주아 이념으로 경멸했다."

국내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최근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자유주의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 교수는 2일 한국정치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된 조건들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해 가는 데 있어 자유주의는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며 "이제는 자유주의가 한국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그간 한국의 진보진영이 자유주의를 어떤 식으로 평가했는지를 고려한다면 이는 다소 '충격적인' 제안이다. 자유주의 세력으로 여겨지던 국민참여당과 진보정당의 통합 문제,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놓고 봤을 땐 더욱 그렇다.

<조선일보>가 이날 최 교수의 논문을 대서특필하며 그의 주장을 마치 역사교과서 논쟁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로 보도한 것 역시 그의 주장의 논쟁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여한 한 패널의 지적처럼, "'진보의 거장이 드디어 우리 품에 안겼다'는 식의 <조선일보> 보도가 나올 만큼 논쟁적 차원을 넘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 교수의 주장은 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의 '백기투항'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해석'에 대한 제언에 가깝다. 진보가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며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내건 자유주의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한국에선 '냉전적 반공주의'로…보수·진보 모두에게 외면

먼저 최장집 교수는 해방 후 분단과 극심한 이념 대립에 휩싸인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진보, 보수 모두에게 각각 다른 이유로 부정당했다"며 한국의 자유주의가 '보편 이념'이 아닌 '이데올로기 갈등'의 중심 축으로 작용하게 된 원인을 추적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곧 '냉전적 반공주의'를 의미했다. 민주화 이전 보수파들에게 자유주의란 체제를 수호하는 공식적인 이념이자 슬로건이었지만 이들에게 자유주의는 곧 '반공주의'와 동일하게 이해됐고, 그런 이유에서 진보파들은 자유주의를 "민족분단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에 불과하다"며 이를 부정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념'이 아닌 '하나의 정체체제'로서 보편성을 갖고 수용됐던 것과 달리, 자유주의는 이념 갈등의 한 축으로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것. 최장집 교수는 이를 두고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데 있어 하나의 비극"이라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자유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보수도, 이를 부정하며 경계했던 진보도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반자유주의 경향성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이를 "한국사회의 좌우 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라고 주장하는데, 1960~70년대 산업화 이후 한국의 좌우 이념집단은 모두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 결과는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적 민족주의로 귀결됐다. 최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우회해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해독제' 될 수 있어

최 교수는 이처럼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過負荷)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자유주의를 경험한 후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은 '자유주의 없는 민주화'가 진행됐고, 이는 "1970~80년대 진보적 엘리트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정서적 급진주의를 동반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 교수는 "민주화운동을 이념적으로 주도했던 민중주의는 민주주의와 (혁명적·급진적) 민족주의의 결합"이라면서 "이렇게 형성된 민주주의관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관념화되고 추상화된 어떤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체제로 이해하는 경향을 만들어 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데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실천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평했다.

그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자유주의의 냉정한 현실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분출하는 '과도한 열정'과 '정서적 급진주의'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주의에서 배울 게 있다면 민주주의가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이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경향성에 대한 어떤 해독제적 역할"이라며 "그로부터 과도한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바꾸고 현실 문제의 복합적 구조를 이해하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력을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유주의=신자유주의' 해석은 잘못…한국서 자유주의 '진보'에 가까워

아울러 최장집 교수는 자유주의를 곧 '경제적 자유주의'라고 해석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정하며, 오히려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보수'가 아닌 '진보'의 이념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주의와 경제적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사상"이라며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의 보수파들은 신자유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며, 동시에 진보파들은 신자유주의자는 아닐지 몰라도 자유주의자일 수는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자유주의와 경제적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자유주의는 시장경제에 있어 넓은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놓는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도, 사회민주주의적 경제 시스템이나 복지국가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도 모두 '자유주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한국사회에서 진보를 사회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실제 그렇게 행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 교수는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유연한 자체 교정 능력을 통해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사실"이라며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서 한국사회에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