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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제 '베를루스코니즘' 답습한 한국은?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마침내 베를루스코니 시대가 끝났다

미성년 소녀들을 불러들여 속칭 '붕가붕가 섹스파티'를 벌여온 이태리의 총리. 부패와 탈세, 연달은 여성편력 등 역사상 가장 많은 사건을 일으켜 가장 오랫동안 재판을 받고 있는 총리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기록의 보유자이면서도 지난 17년 동안에 10년간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한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2일 마침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날 유럽연합 집행위원을 지낸 경제전문가 마리오 몬티(Mario Monti)가 후임 총리로 지명됐다.

유럽 언론들은 그의 사임으로 이태리가 "길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넘겼다고 논평했다. 이태리를 세계 여론의 조소 대상으로 만든 베를루스코니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을 통고하러 나폴리타노 대통령 집무실 키리날레 궁으로 가는 연변에 는 그를 보러 운집한 수많은 시민들이 그의 사임을 환호하면서 "마피아", "부끄러운 줄 알라", "꺼져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등 갖은 욕설과 야유를 내뱉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야유하는 군중을 피하기 위해 키리날레 궁을 나올 때는 사람의 눈에 띠지 않는 뒷문을 이용해야 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베를루스코니가 남긴 불행한 유산

베를루스코니가 수모를 겪는 광경을 보면서 저렇게 국민의 비난과 지탄을 받는 정치인이 어떻게 세 번이나 총리를 지낼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자주 제시되는 해답은 그가 텔레비전과 언론을 통제해서 정권의 도구로 이용한 성과라는 것이다. 그는 법을 어겨가며 많은 지방방송국을 연결해서 전국망의 방송 카날5를 구축했고 이탈리아1과 레테4 방송을 소유한 언론재벌이며 전국 상업방송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언론사업가였다. TV의 힘으로 총선에 이기고 총리가 된 인물이다. 총리가 된 다음에는 자기 소유의 방송에다 국영방송 RAI를 자기 방송처럼 사용했다. RAI 사장과 간부를 측근으로 메우고 그를 비판하는 기자나 PD는 징계했다. 이것을 베를루스코니즘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정책이 베를루스코니즘을 답습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8일 저녁 사의를 표명한 뒤 대통령궁을 빠져나오고 있다. ⓒAP=연합

그는 노인이나 서민층에 대한 복지도 잊지 않았다. 선거의 표를 의식한 것이다. 복지는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좌파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수우익 정권의 복지 포퓰리즘은 더 무책임하다. 기업 CEO 출신이 정치를 하면 나라경제를 성장시킬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큰 오해다. CEO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잘 챙기지만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공공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이태리의 국가채무가 베를루스코니 집권 이후 1조9000억 유로(약 2800조 원)으로 늘어났다. GDP의 120%에 달한다. 프랑스 신문들의 평가에 의하면 베를루스코니가 1994년 처음 집권한 이래 이태리 상황이 나아진 게 없다.

그 밖에도 베를루스코니 10년 집권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가채무가 1조9000억 유로에 달한 것 말고도 국가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30세 이하 청년의 실업률이 30%에 달한다. 남부의 칼라브레 지역 등에서는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자다. 대기업 프렌들리 정권답게 적자 내는 대형 제조업과 운수업을 무리하게 보조하여 국민의 세금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반면에 수출 효자인 구두 패션 같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 지역 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그 결과 국민의 사기가 가라앉았다. 베를루스코니 정권하에서 불법, 불공정, 탈세가 만연되면서 모든 것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깊이 각인돼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남겨 놓은 불행한 유산이다. 이태리는 지금 가치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달 초 프랑스 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이태리의 국가채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 수준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그래도 이태리의 레스토랑은 항상 만원"이라고 대꾸했다가 다른 정상들의 비웃음을 샀다. 정상회담 결과 이태리는 앞으로 3개월마다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는 처방과 성과에 관해서 유럽연합과 IMF 감시단의 감독을 받게 된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 압박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정치적 걸작'

언론을 통제한 베를루스코니는 이태리가 당면한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통제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위기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국민들이 그의 사임을 환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에게 국정을 계속 맡겨 두었다가는 이태리의 장래가 우려된다고 판단한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총리 교체에 앞장 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베를루스코니의 위기 무대책을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위기 탈출계획을 수립하고 이것이 상하 양원에서 채택 되는대로 총리는 사임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총리가 계획 추진을 지연하면서 정권 연장을 획책할 기회를 막기 위한 각본이었다. 파리의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보퇴르>는 대통령이 위기 해결 일정을 확정해서 제시하지 않았으면 베를루스코니는 국가를 파국에서 구출하는 데 전념하지 않고 자신의 정권연명에 더 집착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지금 3개의 큰 소송이 걸려있는 베를루스코니로서는 총리직을 그만두면 사법상의 면책특권을 잃게 돼 재판이 불리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에서는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시나리오를 "정치적 걸작"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무능한 총리를 누군가 유능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국가적인 사명을 실천에 옮긴 결단이었다는 것이다. 나폴리타노는 공산주의자이지만 동서 양진영에서 존경을 받았던 이태리 공산당 당수였던 톨리아티 밑에서 교육을 받은 존경받는 올해 86세의 이태리 정치 지도자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사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후계자로 내정해 둔 여당 '자유의 인민당(PDL)' 사무총장 안젤리노 알파노가 그의 자리를 잇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각 정당과 협의를 거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을 지낸 경제전문가 마리오 몬티를 임시내각의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몬티의 수상 지명으로 이태리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몬티는 시장을 안심시키고 각 정당의 의견을 규합한 '대합의' 정부를 이끌 수 있는 이상적인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의 재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언론의 힘을 남용해서 이태리의 민주주의를 우롱하던 말 많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막을 내리자 총리직을 그만 둔 베를루스코니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새로운 의문 을 놓고 정치 평론가들이 갖가지 시나리오들을 그리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현재 탈세와 부패 권력남용 그리고 미성년과의 성관계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총리가 아니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을 매수 회유해서 총리에게 사법면책권을 인정하는 법까지 제정했지만 더 이상 그런 특권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총리의 면책 특권은 이미 위헌이라는 판결도 나와 있다. 그러므로 베를루스코니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 그에게는 큰 위협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우려한 베를루스코니가 망명을 생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망명을 한다면 범죄인 인도를 거부하는 칼리비아 해의 안티가 왕국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의 측근이며 언론인인 에밀리오 페데는 베를르루스코니가 망명한다면 그를 따라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인 세르지오 리조는 "그가 섬에서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몸에 익은 세계적인 관광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의 아메리칸대학 제임스 월스톤 교수는 "베를루스코니는 재판을 피하기 위해서 안티가로 가서 그곳에서 정치생활 복귀를 위해 추종자들을 모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모든 것은 가상의 시나리오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는 베를루스코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재판 결과에 따라 좌우되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하원의원이므로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는 의원으로서의 면책특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따라서 당장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언론을 남용한 언론 사주가 정권에서 퇴출된 것을 축하하고 다시는 이런 사이비 언론인이 언론을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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