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의 전략'이란 노동자의 직무능력 확대와 직업훈련 강화 등 친노동적인 경영전략을 의미한다. 이는 흔히 비정규직 고용이나 외주하청을 늘려 경영위기를 극복하려는 종래의 경영전략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또한 위스콘신 지역의 노동조합은 '고위의 전략'을 통해 기업에 설득하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들의 직업훈련과 인력 배치 등의 문제에 폭넓게 관여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노동자들의 숙련도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프레시안>은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위스콘신 지부의 필 노이엔펠트(Phil Neuenfeldt) 재무담당 국장을 만나 지역 경제위기 국면에서 진행된 노조의 활동과 고민에 대해 들어봤다.
노이엔펠트 씨는 "노동조합이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기업을 설득해야 공장이전을 준비하고 있던 경영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며 "싸움 또는 협조만으로 기업들의 공장이전 시도를 막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위스콘신 주 밀워키 시에 위치한 미국노총산별회의의 위스콘신 지부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세계화가 대세라고 노조가 손 놓고 있을 수야 있나"
<프레시안> : 1990년대 위스콘신 지역 경제를 혁신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들었다. 한국의 경우 기업의 해외이전 시도에 맞서 노조는 '공장이전 반대' 구호를 외치는 이상의 요구를 하거나 대안제시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이엔펠트 : 무역자유화, 즉 세계화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등 고용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기본환경으로 주(state)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따라서 지부 노조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부 노조가 이런 현상에 대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스콘신 주라는 지역의 테두리 안에서 지부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리가 10여 년 동안 고민한 대목이다.
<프레시안> : 그 고민의 결과가 '하이로드'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혁신 전략인가?
노이엔펠트 : 그렇다. 경쟁이 격화되면 공장은 더 싼 임금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위스콘신 주에 있는 기업들도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공장이 미국 남부 지역이나 중남미 등 다른 저임금 국가로 이동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실업률은 높아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안한 방법은 노동자들의 직무능력을 높이고 작업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꿔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이 일은 사실 노동자 혹은 노조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경영인들이 아무런 호응 없이 공장 문을 닫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고안한 방안을 들고 공장이전을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찾아다녔다. 공장을 이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 기업인들이 많았다. 그들을 집중적으로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해법이 나온다"
우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기업인들은 이 지역에 남았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공장을 이전하거나 생산시설을 줄였다. 기업인들을 설득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한다. 이윤을 얻지 못하면 기업은 떠나기 마련이다. 이게 현실이다.
우리의 제안은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공장이전을 하지 않아도 이윤이 보장 된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이었다.
<프레시안> : 당신들이 고안한 아이디어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노이엔펠트 : 세 부문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작업장의 현대화다. 기술혁신을 통해 작업과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생산성은 높아지고, 당연히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둘째는 노동자의 직업훈련이다. 새로 도입되는 기술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일이다. 1990년대 중반 금융산업에서 전산화가 도입될 당시 이를 운용할 능력이 있는 노동자는 드물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술교육은 작업장의 현대화와도 긴밀히 연관돼 있다.
셋째는 앞으로 도입될 신기술에 대한 교육이다. 기술발전 속도는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술을 교육하기도 빠듯한데, 앞으로 도입될 기술을 교육하는 일이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지역 내 교육기관과 긴밀한 협조
<프레시안> : 방금 말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은 노조 혼자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을 듯 싶다. 지역 교육기관이나 기존 노동자를 위한 교육훈련 센터들과의 협력은 어떻게 이뤄졌나?
노이엔펠트 : 다행스럽게도 우리 지역에는 훌륭한 기술대학(MATC)이 있다. 이 대학은 실제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데 관심이 높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학생들도 있지만, 재교육을 희망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우리는 이 대학에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교육 내용을 제시했고,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노동자들을 이 학교로 보냈다. 그러면 이 대학은 그에 맞는 강좌를 개설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강사를 섭외했다. 이런 작업들은 교육의 효율성을 높였다.
도제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대학교수들보다 때로는 현장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노하우를 축적한 숙련공이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럴 경우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과 관련 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숙련 노동자를 연결시켜줬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의 노력도 있었다. 기업들은 재교육을 희망하는 구성원이 있으면 교육기간에는 임금을 지급해줬다.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조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밖에 관심을 기울인 일은 주 정부를 압박하는 일이었다. 공장이전이나 실업은 주 정부가 정책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라는 판단에서 우리가 고안한 아이디어를 주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협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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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말을 들어보면 노조와 회사가 상당히 협조적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를 '노사 협조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내용의 비판들이 이곳에도 존재하지 않나?
노이엔펠트 : '투쟁하지 않느냐'는 말인 것 같다. 왜 노조가 싸움을 하지 않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영인을 만나면 우리도 싸운다. 또 결국에 공장을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면 노사 간 대립과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까지 치닫기도 한다.
다만 우리가 강조하는 부분은 '싸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만약 공장이전과 같은 문제가 싸움만으로 해결된다면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시간을 보내겠는가? 싸움만큼 이런 작업들도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싸움'과 '협력'이 동시에 이뤄진다고 하면 어리둥절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부부가 항상 싸우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프레시안> : 협력과 싸움의 병행.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어쩌면 위스콘신 주의 지역발전 모델이 주목을 받게 되는 근원도 노조의 유연한 전술운용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항상 여론에 귀를 열어 놓아야
노이엔펠트 : 한 가지 더 말하면, 우리는 지역여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노조가 '싸움'만 한다거나 '협력'만 한다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아무리 정당한 '싸움'이라고 해도 싸움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여론의 관심은 시들해진다. 때로는 노조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론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노조를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조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역 시민들이 '노조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 결국 기업들도 노조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프레시안> : 이 지역은 사회주의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노조가 힘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노조의 각종 아이디어가 현실화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이엔펠트 : 밀워키는 과거 독일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갖고 온 이주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다. 그만큼 사회주의적 전통이 이 지역에서 강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갖고 있는 주지사도 선출됐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별 의미가 없게 된 것 같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우리는 전통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론은 시시각각 변한다. 노조는 꾸준히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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