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자연스레 노사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구조조정'은 '정리해고'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정리해고'라면 일단 멈추게 하고 볼 일이기 때문에 노조는 곧잘 '구조조정 반대'라는 구호를 내건다.
그러나 뒤늦게 정리해고 혹은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나서는 싸움은 성공하기 어렵다. 일반 국민의 여론도 '기업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쪽으로 쉽게 기울어진다. 노조는 사력을 다해 보지만 결국에는 사측이 강행하는 구조조정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것이 우리 노사관계의 현주소다. 기업의 해외진출과 뒤이은 구조조정으로 극심한 노사갈등 양상을 보여 온 코오롱 사태는 우리의 노사관계가 어떤 상황에 와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파업, 고공농성, 심지어 자해까지, 그러나…
코오롱은 과거 화학섬유 업계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 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진출을 본격화하면서 국내 공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코오롱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점차 높아졌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간 정면충돌은 2004년에 발생했다. 사측이 그 해 임금단체협상 기간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퇴직에 따른 자연감원과 희망퇴직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 후 2년 동안 코오롱 노동조합은 '안 해본 것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구조조정 저지 싸움을 벌였다. 파업은 물론이다. 위험천만한 송전탑에서 벌인 고공농성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이웅렬 코오롱 회장의 자택 앞에서 벌인 항의시위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과 대규모 연행으로 이어졌다.
특히 최일배 노조위원장은 자해를 시도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코오롱 노조의 상급단체인 화학섬유연맹이나 민주노총도 코오롱 노조에 대한 조직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8월 현재 코오롱 사측은 당초 계획했던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상태다. 반면 싸움을 이끌던 당시 노조 지도부는 힘을 잃었다.
지난 2년 동안 코오롱이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 등의 방법으로 감원한 종업원 수는 모두 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2004년 당시 노조 조합원 수가 약 1500명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조합원 수의 3분의 1이 공장을 떠난 셈이다.
"임금 50% 자진삭감한들 정리해고가 멈췄을까?"
코오롱 노사 간 갈등에서 '교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섭은 노조가 갖고 있던 권리나 임금을 양보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구조조정의 시기에 노사 간 교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양보 교섭'의 형태였다.
코오롱 노조는 수 차례의 교섭에서 임금동결 안은 물론 더 나아가 임금삭감 안까지 사측에 제시했다. 교섭 막바지에는 15% 임금삭감 안을 사측에 던졌다. 당시 노조 간부였던 신태섭 씨는 "임금삭감을 통해 사측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겠으니 정리해고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제안들은 정리해고를 막지 못했다. 노조의 양보안이 나올 때마다 사측은 정리해고 방침을 재검토하는 듯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또다른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다.
신태섭 씨는 "지금 돌이켜 보면 임금을 50% 삭감해도 좋다고 했어도 사측은 구조조정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조의 양보가 구조조정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싸움을 통해 얻은 뼈저린 교훈"이라고 토로했다.
노사대화만으로 구조조정이 중단되진 않겠지만…
실제 노조의 '양보 교섭'만으로 사측이 해외진출을 포기하거나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임금동결이나 임금삭감은 기업경영에서 단기 처방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외진출을 야기하는 원인을 궁극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해외진출이나 구조조정의 가능성이 예견될 때부터 기업혁신을 위해 노사 간에 긴밀한 협의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신뢰'보다 '불신'이 강한 우리의 노사관계는 이같은 사전협의를 실천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사정위의 이덕재 전문위원은 "노사 모두에게 상생을 위한 방안이 뭔지를 깊이 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어떤 대화나 협의도 오해와 반목으로 귀결된다"며 "이런 현실에 대해 노사가 깊이 있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 간 협력과 대화만으로 모든 구조조정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다 충격이 덜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바란다면 노사가 머리를 맞대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노동진영도 산업환경 변화를 고민해야
개별 기업 수준에서 산업 전반에 불어오는 해외진출 압박을 막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개별 기업 내에서의 노사 간 협의, 혹은 단일 기업 차원의 경영혁신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진영은 산업 전반의 상황과 국가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정부에 고용 문제를 고려한 산업정책을 촉구하는 동시에 노동진영 내부에서도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위기감을 느끼면서 "이대로는 안 되는데…"라고 뇌까리거나 정부 및 관련 기업들에 대해 고용보장책을 내놓으라고 닥달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 왔다.
이런 모습은 노동진영의 정책역량이 취약하다는 문제점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노동 전문가들은 노조 시스템의 문제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시스템이 '기업별 노조' 중심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산업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단위 노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는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산별노조에 거는 기대
이런 점에서 최근 노동계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산별노조는 단기적 이익 확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별로 묶이는 산별노조는 조직구성에서부터 활동까지 개별 기업을 단위로 하지 않고 산업 전체를 아우르며 이루어지기 때문에 산업 전체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활동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된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의 이상호 연구원은 "산별노조는 개별 단위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 전반에 대해 대안을 놓고 경영자 집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며 "산업공동화와 같은 산업 전체적인 문제에 대해 노동진영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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