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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정권, 떠받치고 무너뜨린 '미디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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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정권, 떠받치고 무너뜨린 '미디어의 힘'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25>아랍 민주화 혁명 왜 지각했나?

요즘 신문 방송은 석 달째 연일 아랍 혁명 이야기를 톱뉴스로 다루고 있다. 아랍권의 민주화 혁명이 중동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리비아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는 민주화혁명이 카다피의 축출로 성공을 거두게 되면 아랍 혁명의 폭풍은 검은 아프리카 대륙 전역으로 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222년 만에 마침내 민주화가 전 세계적으로 완성될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아랍의 반독재 혁명은 단순히 민주화 혁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혁명을 통해 주권을 되찾은 아랍인들은 정권의 안정을 미국에 의존하던 부패 독재정권과 달리 자기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 할 것이다. 민주화된 아랍은 중동의 지정학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을 예고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아랍의 민주화 혁명을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이 받쳐준 모래성, 아랍 전제 정권들

지난 몇 달 동안 아랍 혁명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면서 새삼 놀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 동안 중동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가 단편적으로 보도된 일은 있었지만 2011년에 접어들면서 민주화 혁명이 이렇게 거세게 아랍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작년 말 튀니지에서 꽃망울을 펴기 시작한 '자스민 혁명'이 새해 들어 국민 봉기로 확대돼 1월 14일 튀니지의 25년 독재자 벤 알리를 축출하고 그 후 열흘 만에 혁명의 불길은 아랍권의 상징 국가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로 번졌다. 오랜 독재로 시위를 조직할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활동을 상상할 수 없는 무바라크의 30년 전제 아래서 오직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 십만의 반정부 시위는 진압 탱크의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고 미국의 옹호를 받아온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 성공은 알제리 예멘 바레인에 민주화 바람을 불어넣었고 마침내 카다피가 42년 간 군림하고 있는 리비아에 무장혁명의 불을 붙였다.

지금 아랍 세계 전역은 민주화의 불길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는 한 혁명의 불길은 쉽게 진화되지 않을 것 같다.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무자비하게 시위를 탄압하고 있는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 혁명이 잠시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이나 리비아 국민의 자유 의지로 볼 때 카다피가 벤 알리나 무바라크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튼튼해 보이던 아랍권의 전제 정권들이 우리 눈앞에서 하나 둘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저렇게 국민의 원성을 받는 정권들이 어떻게 30~40년 유지될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그 동안 독재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며 이라크에 전쟁을 벌인 미국이었다. 그러나 방금 국민의 저항으로 무너진 장기 부패 정권을 뒤에서 받쳐주고 매년 수십억 달러의 원조까지 제공해 온 것도 미국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도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있는 그들의 전 식민지 정권을 비슷하게 다뤘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맨은 최근 그의 칼럼에서 미국 중동정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에 석유를 싸게 공급하고 이스라엘을 너무 심하게 굴지만 않으면 아랍 지도자들이 독재를 하건 부패하건 못 본 체 했다는 것이다. 한편 정권 안정에 미국의 지지가 필요한 아랍의 부패 정권들은 미국의 눈치만 신경 쓸 뿐 자국민의 불만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 부도덕한 행위를 모두 면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워싱턴이나 아랍의 부패 정권이 합법적으로 유착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국익이었다. 일찍이 라이홀트 니버가 그의 저서 <도덕적 개인과 부도덕한 사회>에서 지적한 대로이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을 따지는 지도자들이 집단적인 이익에 부딪치면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는 위선적인 인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재스민 혁명' 폭발의 도화선…언론은 뭐했나

아랍 혁명의 바람이 불면서 중동의 부패 체제에 세계가 그 동안 무관심했던 것은 언론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계 내부의 자성도 없지 않다. 벤 알리나 무바라크 카다피의 40년 1인 부패정권이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국민의 항의에 밀려 물러나고 있는데 언론은 왜 일찍이 이런 사실을 알려서 이들의 독재와 부패가 이 정도에 이르도록 방관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권력의 부도덕한 행위를 감시 비판해야 할 언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지적과 비판이다.

아랍 국가들 내에서는 독립 언론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자 불가피한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 언론은 다르다. 자국 정치인들의 아랍 정권과의 관계를 언론이 제대로 감시 비판했으면 그런 부패정권이 몇 십년간 유지되는 독재의 고착화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비판에는 변명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집안과 아랍 정치권과의 떳떳치 못한 거래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이를 제대로 고발한 언론이 몇이나 되느냐는 비판성 질문도 나온다.

리비아의 인권연맹 회장 슬리만 부쉬기르는 3월1일 <르몽드>와의 인터넷 대담에서 지금 서구 언론이 카다피를 비난하지만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카다피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나 다름없었다고 조소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 독일의 슈뢰더 총리와 함께 카다피의 천막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다피가 리비아인 뿐 아니라 서방 지도자들을 부패시켰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나 그 밖의 보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중동 아프리카 정권과 서구 정치인들과의 '떳떳치 못한 거래'는 아랍과 아프리카의 부패 정권들이 오래 연명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데 있는지 쉽게 맥을 짚을 수 있게 한다.

튀니지의 자스민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 벤 알리 정권의 부패가 마피아 조직을 뺨친다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대사의 전문이었다. 그 동안 벤 알리의 독재에 불만이 많은 튀니지 국민이었지만 독재 타도를 정면으로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정권이 마피아 조직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그것도 튀니지 주재 미국 대사가 '비밀 보고'에서 그렇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정권 퇴출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명분을 제공했다.

이처럼 외국 언론의 보도가 아랍권의 민주화 반독재 투쟁에 중요한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 과거에는 서구 주요 언론의 특파원들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신생국 정권의 감시 역할을 간접적으로 대행했었다. 그러나 신문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주요 언론매체들이 해외 특파원을 줄이거나 없애면서 언론매체의 관심은 점점 국내 문제에 국한됐다는 영국 <가디안>의 보도이다. 그래서 중동의 민주화 혁명이 확산되면서 서방 언론의 해외 특파원 문제가 다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와 <알자지라>의 결합, 미디어의 힘

아랍 민주화 혁명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패이스북이나 트위터 휴대폰 같은 소셜 미디어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왜 돈이 많고 규모가 큰 제도 미디어보다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더 컸는가? 한 마디로 제도언론이 권력의 입노릇만 하고 국민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제도언론이 침묵을 지키니까 소셜 미디어가 여론의 소통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스민 혁명의 촉매제로 알려진 위키리크스의 내용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졌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시위, 리비아의 반 카다피 시위도 모두 소셜 미디어가 도화선이었다.

▲ 소셜 미디어와 함께 아랍 민주화 혁명을 이끈 것으로 평가 받는 <알자지라> 영문판 홈페이지. ⓒ알자지라 캡처

소셜 미디어와 함께 아랍 민주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랍어 텔레비전 방송 <알자지라>였다. 미국 시각과 미국 국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미국 미디어가 세계에 아랍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아랍인이 보는 아랍, 아랍인이 아랍어로 아라비아인에게 전하는 미디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96년 창설된 <알자지라>는 바깥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랍 세계에는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2001년 9.11 이후 알 카에다의 오사바 빈 라덴의 비디오를 방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서구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으나 점점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06년11월 영어로 24시간 뉴스를 방송하는 "알 자지라 잉글리쉬" 는 아랍어 CNN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랍권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알자지라>는 아랍어 방송은 중동에, 영어방송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아랍의 시각을 전파하고 있다.

아랍권에서 가장 독립적인 매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알자지라>는 아랍권에서 시청률이 53.4%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아라비아> 방송의 12%보다 훨씬 앞서 있다. 특히 아랍 혁명 보도에 있어서는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월 "아랍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시위 군중의 감정을 한 나라 수도에서 옆 나라 수도로 연결해주는 하나의 실이 있다면 그것은 <알자지라>" 라고 평하고 "<알자지라>가 이번 사건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알자지라> 없이 이 모든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논평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얼마 전 상원 외교위원회 증언에서 <알 자지라>는 의견이 많은 미국 언론매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집트 혁명을 겪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알자지라 텔레비전을 보면서 중동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시위 군중의 위협에 몰리는 아랍 정권들이 <알 자지라> 방송 지국을 폐쇄하고 있는 이유를 알만하다. 미디어의 힘이 민주화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아랍 혁명은 중동지역에서 왜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패 독재 정권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는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왜 혁명이 가능하게 됐는지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드문 기회를 주었다. 특히 불의를 제거하고 사회를 개혁하는데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만큼 비민주적이고 부패한 정권이 왜 정직한 자유언론을 싫어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안간힘을 쓰는지를 재인식하는 좋은 교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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