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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하면 살 빠진다?…그건 아니고요"

['채식'의 재조명·②] '채식 6년차' 기자의 체험기

"아주머니, 햄 빼고 싸주세요."

햄이 없는 김밥을 먹은 지 6년째. 채식을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김밥을 포기할 수 없어 꼭 이렇게 먹고 있다. 번거로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시절 학생 식당 메뉴는 고기 일색이었다. 닭백숙, 수제돈가스, 소시지 오므라이스…. "으악!~ 오늘은 뭐 먹지?" 남들은 식단 선택에 즐거울 점심시간이지만 나에겐 절망의 시간이었다.

스무살 나를 바꿨던 한 권의 책은 존 로빈슨의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였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에 소개된 책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라는 스님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이 책까지 찾아 읽게 됐다.

존 로빈슨은 '골라 먹는 재미'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회사 '베스킨라빈스'의 상속자였다. 하지만 축산업계의 진실을 깨닫게 된 후부터 환경운동가로 활동한다. 그가 밝힌 것은 미국에서 행해지는 '공장식 사육방식'의 진짜 모습. 책에서 본 실상은 끔찍했다.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소, 돼지는 온갖 해로운 먹이와 항생제, 호르몬제에 노출된다. 오로지 '빨리 살찌우기 위해서'다. 도살되기 전 암에 걸려 깃털이 다 빠진 닭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치킨 맛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채식을 감행했다.

물론 미국의 극단적인 사례들만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라고 형편이 나은 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국민 14명당 한 마리의 소, 국민 4명당 한 마리의 돼지와 함께 살고 있다. 1998년부터 2007년 사이 돼지 사육 마릿수가 27.3% 증가했지만, 농장수는 63.6% 감소했다. 대량으로 병든 동물을 키우는 기업농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닭은 죽어라 알만 낳는 암탉, 죽어라 정자만 생산하는 수탉, 그리고 죽어라 살만 찌우는 닭, 이 세 종류만 있다고 보면 된다(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라고 전문가들이 말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존 로빈슨이 지적한 '진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다. 그래서 난 식습관을 바꿨다.

고기를 어떻게 쉽게 끊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이 모든 사실을 접하고 나니 고기 맛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쉽게 끊었다. 책에 나온 병든 닭 사진만 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채식 식단. 콩고기를 이용한 샌드위치, 두유로 만든 스프, 두유로 만든 마요네즈, 콩고기가 들어간 월남쌈. ⓒ프레시안(최형락)

완전 채식 '비건'으로 시작…원만한 사회생활 위해 '페스코 채식'으로

그러나 채식이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편견과 맞서야 하는 일이며, 스스로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식을 '유난스러운 것', '불편한 것'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의외로 따가웠다. 부모님은 영양 불균형을 우려해 매번 잔소리를 했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이 시금치도 잔인하게 길러졌을지 몰라"라고 빈정거렸다. 피곤했다.

처음 한 달 간은 완전 채식(비건)을 했다. 고기 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섞인 음식은 입에도 안댔다. 달걀, 우유 등 유제품 때문에 빵 한 조각도 맘 놓고 먹을 수 없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약속이 있을 때마다 내 눈치를 봐야 하는 친구들에게도 미안했다. 회포 풀기엔 삼겹살과 소주가 최고건만!

결국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비건 보단, 낮은 단계의 채식부터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비건은 포기하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채식'으로 돌아섰다. 물론 나는 생선뿐만 아니라 유제품도 먹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페스코+락토 채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소극적인 채식이다.

재밌는 건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건 먹냐, 저건 먹냐 묻다가 내가 고기만 먹지 않는다고 하면 이렇게 묻는다.

"닭고기는 먹죠?"

열에 네 명은 이 질문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세미-베지테리언'은 붉은 고기류는 금하고 닭은 먹지만,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아예 닭을 고기의 종류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다. 치킨집이 넘쳐나니 사람들이 닭에 참 관대해졌다. 그리하여 작년 대한민국에 사육되는 닭의 수만 무려 1억 4900여 마리! 삼겹살을 치킨 못지않게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돼지 사육수가 988만여 마리인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닭도 당연히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잔인하게 길러지는 동물이다.

채식을 하면서 가장 큰 고역은 "왜 채식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때다. 6년간 백번도 넘게 이 질문을 받은 것 같다.

"제가 책을 읽었는데요, 공장식 사육방식의 잔인함에 대한 일종의 항거 차원에서…. 네,네. 일종의 이념적 이유인 거죠. 어쩌고저쩌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닐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들과 밥 먹는 일이 늘어가니 대답할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나는 하필 기자! 사람 만나는 게 일이다. 부디 많은 분이 이 글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또 하나, 회사 생활을 하니 채식 때문에 미안할 일이 많다. 나 하나로 인해 전체가 회식 메뉴나 점심 메뉴를 고민해야 할 때면 채식이 죄인 것만 같다. 덕분에 팀 회식 때 참치회를 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으나,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이면 족할 회식을 거창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하다. 친구들이야 이제 6년쯤 되니 신경 쓰지 않고 고깃집에 자연스럽게 간다. 그리고 내 앞엔 된장찌개와 밥을 슬그머니 내민다. 언젠간 우리 팀원들도?

공장식 사육 방식이 문제? 그럼 토종닭은 먹어도 되는 거 아냐?

사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잔인한 사육방식 때문이니 행복하게 자란(?) 토종닭이나 방목해서 키운 소까지 피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들 생각한다. 하지만 채식을 하고 나니 육식으로 인한 환경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채식을 하면 할수록 고기를 먹고 싶다는 유혹은 사라지고 채식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진 않으나 가까운 이들에겐 육식을 줄여 보라고 권한다.

구제역으로 인해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을 시도해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구제역 확산의 원인을 공장식 사육 방식에서 찾고 있어 채식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결코 위생적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동물들이 면역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논리다.

채식을 시작하고 싶으나 아직 자신이 없는 이들에겐 먼저 밥상에 오르는 고기의 양을 줄일 것을 권한다. 그리고 하나씩 먹는 가짓수를 줄여나가다 보면 어느새 "고기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필요한 영양소는 채소나 다른 식품에서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내 신념만 확고하다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점차 나아진다. 처음엔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느니, 건강을 망칠 거라느니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6년째 오동통 건장한 내 모습을 보시곤 오히려 조력자가 되셨다. 만두를 정말 좋아했는데 채식 후 먹을 수 없게 되자 어머니가 손수 빚어 주시곤 한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채식 후 몸이 더 건강해진 느낌도 받는다. 환절기에 감기는 필수였는데 어느 순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곤 놀란다. 잠자는 것도 비슷하고, 채식을 시작했다는 것 외엔 모든 생활 습관이 비슷한데 그런 차이가 생겼으니 채식 덕분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비건 채식을 지향하는 내가 세운 올해의 목표는 유제품을 끊어보는 것. 우유나 치즈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서 유제품을 많이 먹는 편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 먹게 되는 게 많은 것 같다. 빵을 좋아하니 달걀, 우유의 간접 섭취가 많을 수밖에. 더불어 고기를 안 먹는다는 이유로 섭취량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생선도 좀 줄여볼 생각이다.

p.s. 여성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 "채식하면 살 빠지고 좋겠네요?" 살은.. 빠지지 않는 답니다. 다이어트의 적은 탄수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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