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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의 힘은 '전략적 유연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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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별노조의 힘은 '전략적 유연성'에 있다

[기고] 산별노조의 정착을 위한 제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등 국내 완성차 노조가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가결시켰다. 이에 노동전문가들은 우리의 노동(노조)운동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표현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산별노조 전환을 위해 땀을 흘렸던 노동운동가들은 이번 주요 사업장의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에 매우 고무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은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를 넘어 산업 전체 노동자의 이해, 나아가 그동안 소외된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차별해소와 처우개선에 본격적으로 힘과 자원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흥분을 잠시 접어두면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은 비로소 산별노조로 가는 길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산별전환 투표 가결의 성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과 걸어야 할 길이 더 험난하다는 의미다.
  
  국내의 대표적인 노동전문가로서 한국노동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박태주 교수가 금속산업연맹의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모습과 밟아가야 할 과제를 이번 산별전환 투표 가결의 의미와 함께 짚어보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박태주 교수는 이 글에서 '노동의 위기'가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을 이끌었다고 분석하면서 산별노조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노조의 전략적 유연성'이 반드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즉 산별노조 전환과 동시에 이뤄지는 복수노조 허용 국면에서 산별노조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투쟁 일변도'나 '타협 일변도'가 아닌 상황에 따라 '투쟁'과 '타협'을 적절하게 혼용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박 교수는 노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이 "기업들이 산별노조의 장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체득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별노조 전환투표 가결에 대한 재계의 극심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별노조 전환이 어떤 면에서는 재계에도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책임과 권한은 결국 노조에 있다는 말이다. <편집자>

  
  "후덥지근한 골방에 갇혀 있다가 오랜만에 한 줄기 비를 맞은 느낌이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신호탄이다." 한 노조 간부의 표현이다. "부결될 줄 알았는데…. 이러다가 노조의 강경파업에다 정치파업이 이어지면서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닌지…. 위에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물을 것도 같고…." 산별전환이 확정된 직후 한 회사의 간부는 아예 초주검 상태가 된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노동조합의 산별전환에 대한 노조의 '과도한 기대'는 사용자 측의 '과도한 공포' 못지않게 현실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산별체제는 장점이 살아날 수도 있고 단점이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산별이란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주어지는 양날의 칼이다.
  
  민간부문 최대의 단일노조인 현대차 노조를 필두로 기아차, 대우차는 물론 로템, 두원정공 등 13개 노조 8만7000명이 산별전환 투표를 성공리에 가결시켰다. 이러한 산별전환의 바람은 7월 중 쌍용차 노조 등을 거쳐 민주노총의 화학섬유, 사무, 민간서비스 및 공공연맹으로, 그리고 한국노총의 금속연맹으로까지 번져나갈 기세다. '산별전환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노동의 위기'가 산별전환을 촉진
  
  그럼 무슨 이유로 대기업 노조의 조합원들이 '집단이기주의'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비정규직이나 부품사 노동자와 공유하는 길을 선택했을까? 대기업 노조의 간부들은 왜 '스스로의 왕국'을 허물고 권력을 내놓지 못해 '안달'을 하였을까?
  
  이번에 조합원들이 산별전환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조합원의 높은 위기의식 탓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사관계 로드맵으로 불리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노동운동의 위기와 맞닿으면서 주체적이고 공세적인 노동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해외생산의 확대와 해외진출의 가속화가 초래한 고용불안은 기업별 체제라는 재래식 무기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경제정책과 산업정책, 그리고 노동정책에 대한 노조의 개입 없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선전이 먹혀들면서 그것이 산별전환에서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가령 현대차 노조를 살펴보자. 현대차 노조는 그간 연대의 구호 속에서도 그 흔한 시기집중 투쟁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저 혼자 잘난 노조'였다. 적어도 보수언론에 따르면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뜨뜻미지근한 연대는 현대차 조합원을 집단이기주의의 화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산별노조의 상이 불확실한 데에다 산별노조의 효과조차 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합원이 변화를 선택하였다는 것은 '비상경영'까지 겹치면서 그만큼 위기의식이 깊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노조의 산별전환을 부당노동행위로 막기에는 이미 거대한 흐름이 노조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여기에 노조의 주체적인 노력이 불을 당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측의 '집요한 방해공작'이 없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호들갑을 떤 건 언론들이었다.
  
  '어떤 산별인가'로부터 논란은 시작될 것
  
  그럼 이러한 산별전환이 앞으로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산별전환은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산별교섭구조의 안정적인 정착에서 마무리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투표는 사실 산별의 출발점을 알린 데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먼저 확인할 사실은 산별전환의 효과가 단기적이거나 위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운동의 안팎에서 '몰리고 쏠린' 노조가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길'을 간 정도이지 그것이 반드시 노동운동의 신천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별 이행은 기업별 체제에서 초기업별(산업별) 체제로 전환된다는 특수성을 갖는다. 그런 만큼 산별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기업별 노조의 관성과 문화는 여전히 존속됨으로써 이른바 '무늬만 산별'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산별전환 투표가 가결된 다음에 우선 할 일은 금속노조 차원에서 산별의 조직구조와 재정구조, 그리고 의사결정방식을 매듭짓는 일이다. 누구도 이러한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는다(노조가 산별전환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산별노조의 구체적인 상(image)에 대한 논의를 전면 중단시켜둔 것도 그것이 내부갈등을 불러 투표를 망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탓이다).
  
  노조 내의 산별 논쟁은 기본적으로 대산별주의와 산별 내의 분권화 흐름이 충돌하면서 전개될 것이다. 특히 업종의 다양성과 기업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지불능력과 근로조건의 격차는 물론 대기업 노조의 현장주의 정서나 근로조건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우려는 분권화의 압력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산별노조 내부에 업종별 조직의 설치여부,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기업지부를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 그리고 현장위원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조를 어떻게 편제하는가는 산별노조가 비정규직과 한솥밥을 먹는 노조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가령 기존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현대차 지부'와 '울산지부' 중 어느 곳에 소속될 것인가는 산별전환의 대의와 현실 간의 갈등을 낳는 대표적인 사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교섭구조를 둘러싼 논쟁이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목적은 한 마디로 산별교섭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직, 재정 및 선거를 포함한 운영구조는 노동조합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몫이지만 산별교섭 구조는 노사간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산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노조의 전략적 유연성이 뒤따라야
  
  교섭구조가 노사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면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즉 투쟁을 통한 산별 완성과 노사간 타협에 의한 연착륙이라는 길이 그것이다. 물론 노조가 어느 하나의 극단적인 형태는 취하지는 않겠지만 노사간 타협을 통해 산별을 연착륙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실상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은 말할 수 있다.
  
  노조로서 인정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따른다. 먼저 노조의 투쟁력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도 금속노조에서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이른바 '대공장'은 산별교섭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 금속노조로서는 이들 대공장에 대해 중앙교섭으로 강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영국이나 독일 등)과는 달리 정부의 지원 없이 산별구조로 이행하는 상황에서 노조의 투쟁력이 갖는 한계는 더욱 명백하다 할 것이다.
  
  비록 금속노조가 5년 간의 '투쟁'을 통해 사용자단체의 구성에 성공하였지만 금속노조 관련 사업장은 대부분 중소부품 업체였으며 게다가 협력업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교섭력이 크게 취약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산별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노조의 집중타격 전략도 주효하였지만 사용자들에게도 산별교섭에 나서는 것이 차라리 유리한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산별교섭은 사측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비롯된다. 그러나 만일 사용자측이 사용자단체 참여를 거부한다면 노조가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여지가 넓은 것은 아니다. 만일 상당 기간에 걸쳐 산별교섭이 지체되면 노사간의 소모적인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산별체제에 대한 조합원의 실리적인 불만은 증폭될 것이다.
  
  게다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내년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측의 개입공간이 (설사 그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만큼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1950~60년대에 걸쳐 산별노조가 붕괴되면서 기업별 교섭체제가 정착되고 나아가 노사협조주의가 고착화된 이면에는 복수노조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바다 건너 불'이 아니다(그 대표적인 사례는 전일본자동차노조 닛산분회다. 1953년에는 장기간에 걸친 파업이 제2노조의 결성으로 이어져 결국 제1노조는 물론 자동차노조까지 와해되고 말았다).
  
  사용자들이 산별의 장점을 체득케 해야
  
  그러면 사용자가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산별교섭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산별교섭의 장점을 사용자들이 몸으로 느껴 아는 일이다. 산별이론에서 사용자측의 장점으로 들고 있는 것들은 △대기업으로서 '대리전' 문제의 우회 △교섭비용의 절감 △임금인상 압력의 완화 △파업의 감소와 노사관계의 안정 △교육훈련과 같은 노사관련 집단재(collective goods)의 산출 등이다. 그리하여 산별체제는 노사간의 갈등을 축소할 뿐 아니라 그것을 외부화시킴으로써 사업장 내부의 공간을 생산협력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노조의 '책임 있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산별구조를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책임도 포함한다. 사용자측이 '독심을 품고' 산별 저지에 나설 경우 산별구조는 정착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취약성으로 인해 '이행하지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산별의 대표적인 취약성으로서는 현장조직력의 약화와 관료주의의 경향을 들 수 있다).
  
  특히 복수노조 간의 조합원 경쟁은 조합원 실리주의를 부추겨 산별노조의 이념적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언론이 우려하듯 "힘세진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남발"한다든지 "사업장은 도외시한 채 정치공세에만 날밤을 새우는 일"이 벌어진다면 산별노조의 미래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서는 가는 방법도 새로워야
  
  산별노조란 한국의 노사로서는 '가보지 않은 길'에 속한다. 말마따나 '길 없는 길'을 가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다. 노사간에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기업 노조의 산별전환은 노사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용자 측이 산별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한 채 수세적으로 반대만 하고 나서는 것은 노사관계의 새판 짜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산별체제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면서 산별체제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산별로 이행한 금속이나 보건의료 부문에서 나타나는 사실은 사용자 측이 산별교섭의 거부에만 매달리다 어느 순간 노조의 압력에 밀리다보니 아무런 준비 없이 노조에 끌려만 갔다는 점이다(이중교섭의 문제나 평화약정의 결여는 대표적인 예다). 이 참에 기업별 체제에 익숙한 관행이나 노조배제적인 노무관리 체제도 재고의 대상에 넣어야 할 것이다.
  
  노조 역시 이제 앞에 기다리는 것은 내부의 논쟁과 더불어 조합원의 점증하는 불만, 그리고 사용자와의 갈등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별체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지의 관건은 투쟁이 아니라 사측과의 타협을 중심에 놓으면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노조의 태도가 실현될 것인지를 가늠하게 할 첫 잣대는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임금교섭 및 단체교섭이 될 것이다. 얼마나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산별에 대한 사측의 신뢰와 사회적 지지를 얻는가가 그것이다.
  
  이제 산별을 향한 주사위는 던져졌다. 산별노조가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한 사용자에게는 경쟁우위의 요소가 되고 노동의 위기에 처한 노조에게는 '계급적 단결의 기초'가 될 것인가는 각 주체들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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