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7일, 안대희 서울고검장과 이홍훈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비교적 뚜렷한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대검 중수부장 재직 당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맡았던 안대희 후보는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은 다른 나라에 비해 범죄가 많다"고 말했고, 5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홍훈 후보는 "오래전부터 사형제 폐지에 관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안대희 "재벌 한 사람 구속된다고 경제 영향 미친다 생각 안해"
안대희 후보는 무엇보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명확한 소신을 드러냈다. 그는 "사회지도층에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아직 많다"면서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조그만 주가조작 사건이나 사무관급 공무원의 독직 사건도 신문에 크게 나지만 우리는 그 정도는 뉴스도 못 된다"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구속수사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안 후보는 "어떤 한 사람이 구속되고 처벌된다고 해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면서 "그 분의 위치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구조적으로 법인도 있고 집단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다만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자신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기면 정계 은퇴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고 묻자 안 후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신경 쓴 적도 없다"고 답했다.
구속 기소시켜 유죄판결을 끌어낸 이상수 당시 노무현 캠프 총무본부장이 그 뒤 사면 받고 우리당 공천으로 재보선에 출마하고 낙선 후 노동부 장관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한 소회를 말해달라는 주문에는 "내가 뭐라고 말할 성격이 아니다"고만 말했다.
안 후보는 이어 검사출신으로서 대법관 직을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여러 의원들의 질의에 "법의 원칙은 다 같다고 본다"면서 "대법관이 되면 조정과 통합을 중심으로 소수자,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지금 당장 재판을 하라고 하면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법무부에도 3년간 있었고 재판의 기본인 사실파악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너무 자신만만한 것 같아 우려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주 의원은 "검사의 시각과 판사의 시각은 달라야 한다"며 "대법관이 돼서도 검사적 시각으로 재판할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많다"고 지적했다.
'검사 안대희'와 '판사 이홍훈'의 차이
국보법, 사형제도, 법원의 과거사 문제 등 이념적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검사출신 안대희 후보와 진보적 판사 출신 이홍훈 후보의 견해가 미묘하게 엇갈렸다.
국보법에 대해 안 후보와 이 후보 모두 "오남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았지만, 안 후보가 '국보법 존치'에 무게를 실은 반면, 이 후보는 "1948년 이후 국보법의 폐해가 가져온 인권침해의 폐해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강조했다.
사형제 존치 여부에 대해 안 후보는 "솔직히 그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작년에 책을 한 권 읽고 고민을 많이 하게됐다"고만 밝혔다. 반면 이 후보는 "오래 전부터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면서 "사형제도가 인간의 존엄에 대한 헌법가치에 맞는지도 의문이고 생명형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국가로서 해야 할 일인지 의심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사독재 정권 당시 법원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안 후보는 "법원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고 동시대인 모두의 책임"이라며 "옛날 일도 반성해야겠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반면 이 후보는 "법원 구성원 모두가 (과거사 반성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거 잘못된 판결에 관한) 재심 요건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홍훈 "'고뇌하는 법관'이라는 과분한 칭호 받았었다"
이 후보는 "지난 1983년 형사단독판사로 재직 당시 종래 관행을 깨고 시국사범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언론으로부터 '고뇌하는 법관'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판결을 해 왔고 이를 통해 대법원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람직한 대법원 상을 묻는 질문에 이 후보는 "전문적 지식이나 도덕성도 중요하겠지만 역사와 사회를 제대로 보고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정책법원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 후보는 고법 상고부가 설치되어 대법원의 재판건수가 줄어든다는 전제 하에 "보편적 규범이 될 수 있고 사회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해 대법관들의 철학이 종합되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 의원들은 이 후보의 진보 성향을 의식한 탓인지 공권력 확립을 집요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진영 의원과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평택 시위대와 공권력의 충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후보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분출되지만 통합 과정이 성숙되지 못한 탓"이라며 "서로 이해하면서 분쟁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모범답안'은 내놓았다.
그러나 이상열 의원은 "시위대가 경찰이나 군인을 폭행하는 장면에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기느냐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면서 "공권력의 인권침해도 문제지만 공권력이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가 더 심각한 것 아니냐"고 다시 물어 기어코 "동의한다"는 답을 이끌어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