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자 5인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26일 나흘 일정으로 국회에서 시작됐다. 지난 7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명한 후보자 5명 모두가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어 이날 청문 대상인 김능환 울산지법원장, 박일환 서울서부지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후보자들의 자질과 사법현안에 대한 견해를 확인하는 질의가 주를 이뤘으며 청문회 단골 메뉴인 재산문제, 병역문제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김능환, 박일환 "국보법 문제 있긴 하지만…"
두 후보자들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피해나갔지만 국가보안법 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 나름의 소신을 밝혀혔다.
김능환 후보는 "헌법의 영토조항에 한반도가 다 포함되어 있고 북한의 법률적 성격이 반국가단체인 한 형법상의 내란, 외환죄로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고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독소조항을 손보는 데 있어서 대체입법이든, 개정이든, 아니면 폐지하고 형법 규정을 신설하든 방법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전 서면답변을 통해 '개정존치론'에 동의한 박일환 후보는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에 관계되는 것이라 법원은 다소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물론 국민의 의사가 모아지면 입법부에서 개정하든 폐지하든 법원은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능환 후보의 주요 판결 중 하나인 이른바 '오송회 사건'에 대한 질의도 많이 나왔지만 여야의 질의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지난 1982년 전북지역 교사들의 독서모임에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정부가 기소한 '오송회 사건'에 대해 김 후보가 포함된 당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바 있다.
한나라당 김기현 후보는 "오송회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판정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재심사유가 확대되고 있는데 일반 판결이 뒤집히는 문제에 대한 의견이 뭐냐"고 물어 김 후보자로부터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답을 이끌어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은 "국보법 사안인 오송회 사건에 대해 선고유예, 영남위원회 사건에 대해 일부 무죄라는 이례적 판례를 냈다"며 "어떤 견해로 판단했냐"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전인격적 판단으로 판결을 내린 것"이라면서도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좀 더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한편 극우파 인사들에 대한 법적 제제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박일환 후보자는 동의 의사를 밝혔다. 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독일의 헌법수호청에는 좌익급진주의자국(局)이 있는 반면 우익급진주의자국도 있다"며 "최근에 '전쟁이 나기를 학수고대 한다'고 말한 우익평론가가 있는데 극좌가 위험한 만큼 극우도 위험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적극적 법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김 후보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는 향후 어떤 형태로든 입법 절차를 통해 대체복무의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전관예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 개인은 (대법관) 퇴임 후 가급적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재벌기업인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처벌이 솜뭉치가 아니냐"는 질문과 "경제현실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상반된 각도의 질의도 나왔지만 김 후보자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양형은 사건 담당하는 법관 재판부의 전인격적 판단이고 그 판단은 여러 사정을 종합 고려한 것"이라고만 말했다.
박일환 "세금 37만 원 오른 것 감당할 만 하다"
박일환 후보에 질의시간에는 부동산 관련 문답이 한 번 오갔다. 우리당 김동철 의원은 "박 후보자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오금동 46평형 아파트의 기준시가가 작년에 비해 1억1000만 원 올랐는데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합쳐서 37만 원이 올랐다"면서 "감당 가능한 금액인가"라고 물었고 박 후보자는 "그렇다"고 짧게 말했다.
소리바다 서비스 중지 판결 등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박 후보자에 대해서는 관련된 질의가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디지털 지적재산권 분야에 대한 판례는 우리가 현재 일본을 넘어서 거의 미국하고 근접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데 담당 법관의 숫자로는 좋은 판례를 만들기가 힘든 분야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박 후보자는 의료사고에서 환자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이 적절하다면서도 "환자 입증책임을 완전 면제하면 의사들에게 100% 책임이 가는데 그렇게 되면 비용부담이 늘고 의료수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박 후보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자제한법이 법리상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청문회가 끝난 후 청문위원으로 참석한 한 의원은 "무난하다고 본다"며 "여야 막론하고 비슷한 의견"이라고 밝혔다.
국회 인사청문특위는 27일에는 안대희 서울고검장과 이홍훈 중앙지법원장, 28일에는 전수안 광주지법원장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뒤, 29일에는 종합질의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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