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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 농민들 "대통령님, 농민과의 약속을 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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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 농민들 "대통령님, 농민과의 약속을 잊으셨나요?"

[현장] 정부, 팔당 유기농지 공탁 신청…"강제 수용 사전 포석"

"지금 이 순간, 들판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우리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있습니다. 그렇게 1년 3개월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친환경 유기 농사가, 한국 농업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 왔는데…. 이제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한다며 모두 나가라고 합니다."

33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전국 125개 지역에 '폭염 특보'가 내린 5일 오후 서울 정동의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 농민 서규섭(43) 씨가 구슬땀을 흘리며 발언을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각각 '이명박 대통령, 농민과의 약속을 잊으셨나요?', '물 살리고 땅 살리는 팔당 유기농지 지켜내자'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수십 년 째 경기도 팔당 일대에서 유기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 서 씨의 말처럼, 원래대로라면 도심의 아스팔트가 아니라 농가에서 한창 손을 놀려야 할 '천상 농사꾼'들이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도, 가을에 수확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정성스레 가꿔오던 텃밭을 떠나 거리로 나가게 된 것은 1년 3개월 전, 정부가 '4대가 살리기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 팔당 농민들과 공대위 회원들이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팔당 유기농 단지에 대한 공탁 신청에 대해 항의하며 집회를 진행했다. ⓒ뉴시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팔당 농민들과 정부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한강 살리기 9공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의 유기농 단지에 대한 공탁을 신청했다. 토지 측량 등으로 몇 차례 공권력과 충돌했던 농민들이지만, 이제 토지 강제 수용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절차'에 돌입한 것. 이에 따라 팔당 지역 유기농 단지에 대한 행정대집행 역시 1개월 앞으로 부쩍 다가왔다.

이날 '농지보존·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회' 유영훈 위원장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대집행 날짜를 최대한 앞당겨 1개월 후면 중장비를 동원해 유기농지를 갈아엎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농민들과 시민단체, 종교인들까지 나서 팔당 유기농지 보존과 상수원 보호를 간곡히 요청했지만, 이에 대해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선고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당에서 개신교 릴레이 금식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는 용진교회 김선구 목사는 "내일이면 금식 기도가 170일을 넘기게 된다"며 "벼랑 끝으로 밀린 농민들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회를 이어왔지만, 우리의 기도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녹색의 땅' 팔당, '눈물의 땅' 되다

팔당 지역은 국내에서 유기농의 '태동지'로 꼽힌다.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단지로, 수도권의 35만 가구에 친환경 식품을 공급한다. 1975년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유기농이었다.

한 때는 정부의 지원도 활발했다. 1995년 서울시와 농협중앙회는 상수원 보호를 위해 '팔당 상수원 친환경 농업 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의 친환경 유기농 단지가 형성됐으며, 환경부와 농림수산식품부, 경기도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 2007년엔 후보 시절의 이명박 대통령까지 팔당을 찾아 "유기농은 한국 농업의 미래"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당의 신화'는 여기까지다. 지난해 4대강 사업 계획이 발표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세계 유기 농업의 메카'라고 불렀던 팔당은 '한강 살리기 사업 1·9공구'로 전락했고, 농민들은 30년간 일궈온 자신의 땅에서 한순간에 '불법 점유자'가 됐다.

2008년 팔당 농민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해 팔당 지역에 '2011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던 김문수 지사는 오히려 "수도권 시민의 물탱크에 농사를 짓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말을 바꿨다. 이곳 농민들이 팔당을 방문한 김 지사와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을 거꾸로 들고 다니는 이유다.

정부는 팔당의 비닐하우스와 농지를 밀어내 유기농 단지를 없앤 후, 이곳에 자전거도로와 테마공원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사라질 농지는 총 21만여 평. 전체 유기농 단지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4대강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농민들도 100여 가구에 이른다. 그렇게 '녹색의 땅' 팔당은 한순간에 '눈물의 땅'이 됐다.

▲ 지난 5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 투입된 경찰 병력. 뒤로 '친환경 농업 특구'라고 쓰인 홍보물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팔당공대위는 이날 성명을 발표해 "농민들과 세계유기농대회까지 유치한 김문수 지사는 '화학농법이 유기농법보다 더 친환경적', '유기농이 발암 물질을 생성한다'는 치졸한 홍보물까지 만들어 유기농과 농민을 공격하고 있다"며 "국책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4대강 사업을 강행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라고 대규모 투쟁을 예고했다.

이들은 "정부는 이제라도 일방적으로 진행된 공탁을 철회하고, 행정대집행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대화와 협의를 통해 농민들과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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