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수많은 진성 정보들이 주식시장에 흘러 다니고, 주가가 결국 이들 정보를 반영하게 마련이라는 발상은 주식시장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오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시장의 정보 수집 및 전달 기능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효율시장가설'이라는 이론으로 구체화된다. 효율시장가설에 따르면, 잘 작동하는 경쟁적인 주식시장의 경우 시장 참여자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의 진정한 가치, 곧 향후의 배당 흐름에 대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들이 효율적으로 활용된 가운데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가는 모든 정보들을 신속하게 반영하고 결국 가치와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요약된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주식시장이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개인들이 거짓 정보와 진짜 정보가 뒤섞인 상황에 맞서 자신의 기량과 운을 겨루는 대단히 불확실한 공간이지만, 각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거짓 정보가 걸러지고 기량과 운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열매를 얻으며, 마침내 국민경제의 바람직한 자원배분까지 가능케 하는 자생적 질서의 공간이 된다.
이제 주식시장은, 이 이론에 힘입어, '공인된 도박장'이라는 음습한 호칭 대신 '시장경제의 심장'이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어렵고, 때로는 본연의 활동을 통해 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줄 기업과 분식회계 등으로 부실을 숨기는 기업을 가려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주식시장만 잘 작동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결국 주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한에서는 주가에 기대어 우리의 소중한 돈을 투자하면 좋은 기업에는 보다 많은 자원이 유입되고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부터는 자원이 빠져나갈 것이므로 시장의 힘에 의해 합리적으로 자원이 재배분되며, 결국 국민경제 전체의 파이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 효율시장가설에 따르면, 잘 작동하는 경쟁적인 주식시장의 경우 시장 참여자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의 진정한 가치, 곧 향후의 배당 흐름에 대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들이 효율적으로 활용된 가운데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가는 모든 정보들을 신속하게 반영하고 결국 가치와 일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이론이 현실과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론이 있다. ⓒ뉴시스 |
그동안 주식시장에 대해 여러 가지 혜택이 제공되었던 것도 주식시장의 순기능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선, 각자가 자발적으로 은행에 저축을 하는 것만으로는 노후 대비책으로 불충분하다며 펀드 가입을 국가가 나서서 권유하거나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합리적인 자산배분 전략으로 정당화했던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포기하면서까지 주식거래에 따른 자본이득, 곧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면제해 주었던 것은 주식시장에 대한 대표적인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이라는 명칭 아래 종합소득과는 별도로 분류 과세하고 있으며, 특히 소액주주의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주식시장 안정과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과세를 하고 있지 않다. 부동산 등 다른 자산의 처분과정에서 얻는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상황에서 주식 매매에 따른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 않는 것이 조세 형평의 차원에서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존재가 용인되려면 주식시장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이 대단히 크다는 게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효율시장가설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가라는 물음은 주식시장에 특혜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실러 등의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주식시장의 특징은 정보의 효율적 처리가 아니라 과도한 변동성에 있다. 1871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30년에 걸친 장기 데이터를 가지고 '주가'와 '진정한 가치'를 비교해 보면, 이 둘이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가치의 경우 완만하게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는 반면, 주가는 훨씬 격렬한 변동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주가가 무작위적 운동 대신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장기적 수익창출 능력, 곧 진정한 가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시적 열광과 유행, 공포와 탐욕, 헛소문과 집착 등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매매에 임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주식시장이 기업의 장기적 성과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군중들의 변덕스런 판단과 격렬한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주가가 장기적으로도 진정한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주식시장에 특혜를 주는 조치들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보다는 주식시장이 투기적 움직임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주식시장에 대해 오히려 규제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이제 주식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대부분 주식거래에 따른 자본이득에 대해 과세를 행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이득 과세를 한층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본이득 과세는 조세 정의에도 부합할뿐더러,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과세를 달리함으로써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투기적 매매를 억제하고 장기 가치투자에 대한 관심을 북돋울 수도 있다. 이 경우, 효율시장 가설이 꿈꾸는 주식시장 본연의 기능 회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본이득 과세는 현행 증권거래세에 비해 훨씬 큰 조세 수입을 가능케 해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자본이득세 중 일부를 사회보장세로 할당하는 프랑스의 방식을 도입한다면,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보편적·적극적 복지 기반을 확충할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는 일거양득 이상의 정책효과를 가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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