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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교범' 북한 축구, 고지대 경기라 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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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교범' 북한 축구, 고지대 경기라 불리했다

[월드컵 김강남 관전평] 정대세 돋보였고 카카 아쉬워

북한이 2대 1로 패했으나 '수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경기였다. 전 세계 축구팬이 깜짝 놀랄 만한 뛰어난 수비 조직력을 보여줬다.

전반전은 북한의 봉쇄가 완벽하게 성공했다. 브라질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공간을 벌리면 매우 위험하다. 북한은 이 때문에 수비라인과 미드필드는 물론, 최전방까지 간격을 극도로 좁혀 그물망처럼 브라질을 에워쌌다. 브라질이 개인기를 펼칠 공간 자체가 없었다고 평할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이 경기를 잘 운영했다.

후반전에 결국 실점을 하며 북한 수비진이 무너졌는데, 첫 골 장면은 사실 실점 상황이 아니었다. 마이콘이 오른쪽 측면을 뚫은 다음 각도가 없는 곳에서 오른발 아웃프론트로 날린 슛이었는데, 리명국 골키퍼가 크로스를 예상하고 나와 있다가 허를 찔렸다.

이 한 골로 북한이 상당히 어려워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비 전술의 약점이다. 후반 27분에 추가골을 허용한 다음에는 완전히 무너지는 것 아닌가 예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1966년 영국에서 보여준 빠른 템포의 공수 전환과 정대세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기어이 만회골을 넣었다.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나서 이 정도로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경기였다.

지윤남의 추가골 장면을 복기하면, 미드필드에서 한번에 연결된 패스를 정대세가 헤딩으로 잘 떨어뜨렸다. 지윤남이 2선에서 자유롭게 움직여 골을 넣었는데, 브라질 수비가 정대세에 붙으면서 몸이 쏠린 상황이었다. 북한의 역습에 브라질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가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16일 새벽(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G조 예선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에서 정대세가 브라질 루시우와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북한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역시 정대세다. 상대방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동료들이 수비에 치중하느라 도와주지 못하다보니 고립되는 장면이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여러 번 좋은 슛을 날려 분위기를 대등하게 이끌어갔다.

리명국 골키퍼는 전반적으로 브라질의 공세를 잘 막았지만, 판단미스로 골을 내준 게 아쉬운 장면이다. 골키퍼는 섣부른 판단으로 모험적인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브라질은 모든 선수가 다 잘했지만 특히 루시우가 뛰어났다. 북한의 역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전방에 이어주는 볼 배급의 질도 좋았다. 기대했던 카카는 북한의 수비망에 막혀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장기인 빠른 속도의 공격과 드리블 능력을 펼칠 공간이 없어서라고 본다. 차라리 마이콘이나 호비뉴가 더 좋은 모습이었다.

오늘 북한이 고지대에서 경기했는데, 브라질보다 북한에 불리했다. 고지대는 많이 뛰는 기동력 위주의 축구가 약점을 보인다. 선수가 수비 장면에서 상대를 따라다니고, 역습을 위해 한꺼번에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것은 고지대에서 분명 한계가 있다. 북한의 실점 장면이 이런 점 때문에 나왔다. 브라질은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잘 준비된 팀이었다.

북한은 다음에 맞을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전에도 오늘처럼 수비위주의 전술을 쓸 것으로 본다. 1패 했다고 해서 섣불리 공격을 할 수 있을 전력은 아니다. 아직은 세계와 수준 차이가 분명히 있다.

북한의 경기는 다가올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도 어느 정도 응용할 부분이 있다. 북한처럼 수비 위주로 철저하게 실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버티는 게 중요하다. 실점을 하지 않고 충분히 오래 버틸 수 있다면 오히려 공격하는 아르헨티나가 갈수록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나온다. 이 뒷 공간을 활용한다면 우리가 위력적인 역습을 펴는 게 가능하다. 워낙 스피드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좋은 골찬스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초반에 실점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전술 운용이 굉장히 어려워져 흐트러질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뒷공간을 내주면서 메시나 이과인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을 막기 어려워진다. 공간이 생기면 아르헨티나의 개인기에 순식간에 수비망이 뚫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북한처럼 철저하게 무실점을 위한 경기를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966년 당시 북한의 경기 모습을 봤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포르투갈과의 8강전이었다. 전반에 세 골을 앞섰고, 이를 지키려고 후반 수비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5골을 내줬다. 그 상황에서는 어떤 감독이라도 수비를 강화하려 했을 것이다.

이 경기 이후로 우리가 유럽 원정을 가면 외국인들이 남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우리를 북한으로 오인해 전부 '코리아 최고'라고 얘기하던 게 기억난다. 당시 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했다면 아마 북한 대표팀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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