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곳곳 가자지구 연대 파업…이스라엘 우방 독일도 "전략 변경을…"

가자지구에 기아·전염병 창궐…이스라엘, 뒤늦게 구호품 검문소 추가 개방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연대 파업에 요르단강 서안지구부터 레바논, 요르단 등 이슬람권 국가들이 동참했다. 가자지구 사망자 수가 1만 8000명을 넘긴 가운데 이스라엘을 강하게 지지해 온 독일도 작전 변경 필요성을 연급했다.

<AFP> 통신과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 11일(이하 현지시각)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전역의 상점, 학교, 관공서 등이 문을 닫고 파업에 참여했다. 서안지구 행정수도 라말라에선 주민들이 가자지구 사망자 명단이 적힌 거대한 종이를 들고 행진했다. 집회엔 아이를 목말 태운 남성, 어린이와 여성 등 모든 연령대의 주민들이 참석했다.

현장을 취재한 알자지라 기자는 파업과 집회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이고 때로는 전부"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장에서 친하마스 구호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더 많은 역할을 하라는 촉구도 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서안지구 중부 라말라 뿐 아니라 북부 나블루스, 남부 헤브론 중심가 상점들도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했다. 헤브론에서는 어린이부터 고령자까지 "어린이 폭격을 멈추라" 등의 팻말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 하마스 깃발을 든 이들도 있었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의 많은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이날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의 기독교 성지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인근에 위치한 카페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한 나세르(65)는 <AFP>에 가자지구에 있는 친구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며 "전쟁이 멈추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발발 뒤 방문객이 줄어 어차피 장사가 안 됐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날 구시가지에서 상점 문을 연 한 주민은 전쟁이 시작된 뒤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며 "파업을 존중하지만 선택지가 없다. 집에 한 살 짜리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인근 이슬람권 국가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남부 국경에서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의 경우 정부의 지지 아래 이날 공공기관, 은행, 학교, 대학 등이 문을 닫았다.

요르단에서도 수도 암만 등에서 상점과 식당이 문을 닫았고 도로가 한산했다고 <AFP>가 전했다. 문을 닫은 상점들은 "가자지구를 위해 파업한다", "가자지구 휴전과 대량학살 종식"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도 일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미국 주간 <타임>은 이날 영국 맨체스터와 미국 뉴욕에서도 연대 집회가 열린 모습이 소셜미디어(SNS)에 게재됐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10월 7일부터 이날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 8000명이 넘어가면서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가 커진 가운데,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가해국으로 유럽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강한 지지를 표명해 온 독일도 이스라엘에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군사 전략 조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11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열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기자회견에 임한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우리는 이스라엘이 특히 (가자지구) 북부에 더 많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하고 군사 행동이 더 표적화 돼 더 적은 민간인 사상을 초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휴전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 카타르에서 열린 도하 포럼에 참석한 외교관들이 가자지구 휴전 회담이 몇 주 간은 재개될 것 같지 않다고 관측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임시 휴전은 인질 석방을 통해 이뤄졌지만 마크 레게브 이스라엘 총리 수석 고문은 영국 BBC 방송에 하마스를 "강하게 타격하는 것"이 남은 인질을 해방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폭격은 계속됐다. 팔레스타인 통신사 <WAFA>는 11일 밤새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주택이 폭격 당해 어린이를 포함해 6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주택 및 알마가지 난민촌, 남부 칸유니스도 폭격 당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12일에도 밤새 라파 주택가에 폭격이 가해져 주택 3채가 파괴되며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손으로 잔해를 파헤쳐 생존자를 구조 중이라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인구 85%인 190만 명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두 달 넘게 적절한 음식과 물, 의료가 공급되지 못하며 주민들은 기아와 전염병에도 신음하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는 11일 "가자지구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2~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번 분쟁 발발 뒤 가자지구에서 호흡기 감염을 비롯해 전염병이 급증해 최소 36만 9000건의 사례가 나타났고 이는 병원을 포함해 파괴가 극심한 가자지구 북부의 사례를 포함하지 않은 집계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일주일 전 칸유니스에서 자녀들과 함께 라파로 대피해 땅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밝힌 피난민 사마 알파라(46)는 더러운 물을 마시고 굶주린 아이들이 모두 고열과 위장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매체에 말했다. 그의 6살 딸 할라는 몇 주 간 굶주린 끝에 배고프다는 투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지난 3일 간 거의 잠만 잤다고 한다.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재앙 수준이라는 우려가 빗발치며 이스라엘은 뒤늦게 구호품 검문소를 추가로 열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 업무조직 민간협조관(COGAT)은 성명을 내 12일부터 가자지구 남부와 이스라엘을 잇는 케렘 샬롬 검문소에서도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품 보안 검사가 실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니차나 검문소 한 곳에서만 실시되는 보안 검사 장소가 두 곳으로 늘면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품이 두 배가 될 것이라는 게 이스라엘 쪽의 설명이다.

이스라엘군은 케렘 샬롬에서 검사를 마친 물품은 기존 구호품 전달 통로인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잇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로 지원될 예정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로 직접 반입되는 물자는 없다고 강조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11일 가자지구로 구호 트럭 100대가 진입했다. 이번 분쟁 전 가자지구엔 하루 500대 가량의 구호 트럭이 반입됐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가자지구 남부로 확대하며 대피령을 내려 주민들이 이집트 접경 지역이 최남단 라파에 몰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주민들을 사실상 이집트로 내보내려 하고 있다는 의혹도 커졌다.

필립 라짜리니 UNRWA 집행위원장은 9일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로 이주시키려는 시도"라며 "가자지구 북부의 대량 살상과 수백 만 주민들을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이 시나리오의 첫 단계이며 이미 완료됐다. 진행 중인 다음 단계는 칸유니스 도심에서 이집트 국경에 더 가까운 곳으로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유일한 선택지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10일 "공공질서가 곧 완전히 무너지고 전염병 창궐과 이집트로의 대량 이주 압력 증가 등 더 나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를 보면 같은 날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도 이스라엘 공격은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라고 비판했다. 관련해 에일론 레비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터무니 없는 거짓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 난민 유입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11일(현지시각)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상점들이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파업에 동참해 문을 닫은 가운데 두 명의 어린이가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각)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연대 집회가 벌어진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시민들이 가자지구 사망자 명단이 적힌 큰 종이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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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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