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입구가 증거? '빈손' 병원 습격에 가자 휴전 압력 거세질 듯

WP "하마스 지휘소 증거 제시 못해 미국 등서 교전 중지 압력"

국제적 비난에도 이스라엘군이 이틀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병원 알시파 수색을 계속하며 하마스 땅굴 입구 등을 추가 증거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국제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병원 습격의 정당성을 입증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달 넘게 지속된 이스라엘 봉쇄로 가자지구 내 연료가 고갈돼 유엔 구호기구 활동마저 중단됐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 진입 이틀째인 16일(이하 현지시각) 병원이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지휘소로 사용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추가 증거를 제시했다.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한 영상에서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 부지 내 하마스 땅굴 입구라고 주장하는 장소를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땅이 파헤쳐진 가운데 일정 깊이 수직으로 뚫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관찰된다. 공개된 영상은 구멍 위쪽 측면에서 촬영돼 구멍이 어느 정도 깊이로 뚫려 있는지와 내부 모습에 대해선 거의 알 수 없었다. 구멍 내부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당 입구가 알시파 병원 부지 북쪽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스라엘이 이를 발견하기 위해 광범위한 지역을 파내고 소형 구조물을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해당 입구가 알시파 병원 부지 내부에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알시파 병원 부지에서 AK-47 소총, 로켓추진포(RPG), 수류탄 등이 담긴 흰색 소형 트럭을 발견했다고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영상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차량이 지난달 7일 자행된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엔 이 병원 수색을 통해 자기공명영상(MRI) 기계 뒤에 숨겨진 소총 등이 담긴 가방을 발견해 총 10여 정, 방탄 조끼 3벌, 10개 미만의 수류탄, 노트북 등을 발견했다고 공개했지만 하마스 지휘소로 판단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알시파 병원 내부에 취재진 접근이 어렵고 통신이 두절돼 내부 제보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제시한 증거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스라엘군은 16일 영국 BBC 방송 등 일부 언론의 알시파 병원에 대한 제한적 동행 취재를 허용하기도 했다.

조나단 콘리쿠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전날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통해 공개한 MRI 기계가 있는 건물을 함께 견학하며 BBC 기자에게 이곳에서 발견된 노트북에 지난달 7일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남부에서 납치된 뒤의 인질 사진과 영상 및 최근 공개된 이스라엘 쪽에 체포된 하마스 전투원 심문 영상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하마스가 "며칠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BBC는 이스라엘군이 노트북 내용을 보여주진 않았고 취재 시간이 매우 제한됐으며 병원 내부 의사 및 환자와 대화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알시파 병원과 인접한 구조물에서 지난달 7일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 농장)에서 납치된 예후디트 와이스(65)의 주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이 국제법상 보호를 받는 병원을 습격한 뒤 명분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며 휴전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한 유럽 외교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번 습격으로 알시파 병원에서 상당한 무장 활동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길 바랐지만 현재까지 명확한 증거가 없어 이미 미국을 포함한 서방 동맹들이 이스라엘에 교전 중단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분쟁 발발 뒤 거듭 결의안 채택에 실패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 내부에 진입한 15일 가자지구에서의 긴급하고 확장된 인도주의적 교전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연료 끊기며 통신도 두절…알시파 병원 환자 상황 파악 불가·가자에 구호 트럭도 진입 못해

가자지구의 통신이 거의 끊김에 따라 알시파 병원 내부 상황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병원 내부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진 것으로 보여 환자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16일 팔레스타인 통신 회사 팔텔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료 반입이 허용되지 않음에 따라 네트워크를 유지할 모든 에너지원이 고갈돼 가자지구의 모든 통신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보건부 병원 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통신 두절로 위중한 상태의 어린이와 투석이 필요한 환자들을 포함해 알시파 병원 650명 가량 환자들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구호단체 적십자와 조율해 환자들을 가자지구 남부 및 이집트로 이송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다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알시파 병원장인 무함마드 아부 살미야도 성명을 내 병원에 환자 약 650명, 의료진 약 500명, 피난민 약 5000명이 있는 가운데 "저격 작전이 계속돼 누구도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없으며 동료들과의 연락도 끊겼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의료진 또한 다른 건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병원에 물과 산소가 고갈됐다고 설명했다.

국제적 비난에도 이스라엘군이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알시파 병원 내부에서 장기간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대두된다. BBC는 콘리쿠스 대변인이 방송에 이스라엘군이 알시파 병원 지하에 구축했다고 주장하는 네트워크의 "정확한 규모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에 "몇 주"가 소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콘리쿠스 대변인은 방송에 "우리는 아직 병원 전체를 수색하지 않았다. 전체 수색에 근접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방송은 이스라엘군 당국자가 "군인들이 한 번에 한 건물씩 각 층을 수색하고 있고 병원에 수백 명의 환자와 의료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지구 내 연료가 고갈돼 구호기관의 활동 중단이 현실화 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전날에 이어 16일에도 가자지구로 구호 트럭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이집트 쪽 라파 검문소를 통해 트럭이 한 대도 반입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연료 부족으로 구호품을 배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UNRWA는 연료 고갈로 인한 통신 두절로 인도주의적 수송을 조율하거나 관리할 수 없게 돼 17일에도 구호 전달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UNRWA 집행위원장인 필립 라짜리니는 16일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됐다. UNRWA 활동의 목을 조이고 마비시키려는 고의적 시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인도주의 기관이 연료를 구걸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이스라엘은 15일 구호품 수송에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2만 3000리터의 연료 가자지구 반입을 허용했지만 UNRWA 쪽은 해당 규모는 하루 필요한 분량의 9%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용도를 제한해 병원, 빵집, 담수화 시설 등 긴급히 필요한 시설에서 연료 사용이 불가능해 16일부터 "거리에 미처리 하수가 그대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라짜리니 위원장은 설명했다.

'남부로 대피하라'던 이스라엘, 남부에도 대피 촉구 전단…지상전 확대 수순?

한편 가자지구 북부를 포위하고 지상 작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에도 진격할 가능성이 대두됐다. <로이터>는 16일 이스라엘 공군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동부 지역에 대피를 촉구하는 전단을 살포했다고 보도했다.

전단엔 "안전을 위해 즉시 거주지에서 나와 알려진 대피소로 향하라"는 명령과 함께 "테리리스트나 테러리스트 시설 근처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테러리스트가 사용하는 모든 집이 표적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앞서 이스라엘은 북부 지상군 진입 전후 대피를 북부 주민들에게 촉구하는 유사한 전단을 배포한 바 있어 지상전 지역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스라엘이 북부 주민들을 계속해서 남부로 대피하라고 촉구하는 가운데 남부 일부 지역에까지 대피령이 내리며 지상전 확장 땐 민간인 피해 급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가자지구 북부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0만 명 가량이 칸유니스, 데이르 알발라, 라파 등 가자지구 중부 및 남부로 대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16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작전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가자지구에서의 민간인 피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상자 집계의 기준이 되던 병원이 마비된 뒤 더 이상 통계를 내놓지 않고 있는 가자지구 보건부의 마지막 사상자 집계에 의하면 지난 10일 기준 가자지구에서 1만 1078명이 사망했고 2만 7490명이 다쳤다. 한 달 만에 이 지역 주민 57명 중 1명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 이스라엘군이 제공한 15일(현지시각) 알시파 병원 내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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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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