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이하 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 뒤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한 달 만에 가자지구에서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군사 작전 종료 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기한 통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CNN 방송을 보면 6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달 7일 이후 지속된 이스라엘의 무차별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1만2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어린이가 4104명, 여성이 2641명으로 이들의 비중이 전체 사망자의 67%에 이른다. 부상자도 2만6408명에 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의 악몽은 인도주의적 위기 그 이상이다. 이는 인류의 위기"라며 "가자지구가 어린이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과 지속적 폭격이 민간인, 병원, 난민촌, 이슬람 사원(모스크), 교회, 쉼터를 포함한 유엔 시설을 타격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다.
불과 한 달 동안 다수의 비전투원을 포함해 3만5천 명 이상이 죽고 다친 것은 거대한 인도주의적 재앙이지만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이 별다른 근거 제시 없이 가자지구 보건부가 제시하는 사상자 수치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막대한 민간인 희생이라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복수의 외신들은 가자지구 보건부 통계는 지금까지 언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서 유엔 및 인권단체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검증되며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됐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도 올해 발간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지난해 인권 상황을 다룬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보건부 통계를 인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언론 브리핑에서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이 가자지구 민간인 사상자 수 관련 질문을 받고 "수천 명에 달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6일 지상군이 관측소, 훈련장, 지하 땅굴이 포함된 하마스 요새 한 곳을 장악했으며 지난 24시간 동안 관측소, 대전차 미사일 발사장 등 450곳의 하마스 목표물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날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지상군이 가자지구 북부를 고립시킨 뒤 "가자시티에 대한 압박을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체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에 근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에 하마스 지휘 센터가 은폐돼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이 전날 가자시티를 포위했다고 밝혀 민간인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가전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난민촌 및 병원 인근 공격도 계속됐다. <AP>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알시파 병원 외과 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는 가자지구 통신이 열흘 사이 세 번째로 두절된 5~6일 밤 인근 지역 폭격으로 병원 건물이 밤새도록 흔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샤티 난민촌으로부터 수백 명의 사상자가 병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샤티 난민촌에 여섯 명의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는 하젬 주다흐(39)는 <워싱턴포스트>에 공습에서 자신의 가족은 살아 남았지만 많은 이웃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주검이 "모든 곳에"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뿐 아니라 병원 건물 일부도 폭격 대상이 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알시파 병원장인 모하메드 아부 살미야는 <워싱턴포스트>에 6일 병원 본관 옥상이 폭격 당해 어린이 1명이 죽고 6명이 다쳤으며 태양광 패널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알시파 병원에는 환자 뿐 아니라 난민 또한 대피해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연료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 인큐베이터 가동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태양광 패널은 보조 전력으로 이용돼 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관련 보도에 대해 "알시파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군 공습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공습으로 인한 사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의약품 부족, 필수 시설을 가동할 연료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는 붕괴 상태다. 알시파 병원 외과과장 마르완 아부사다는 팔레스타인 의료 지원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전달한 성명에서, 병원의 통상 수용 여력은 210명이지만 현재 800명 이상을 치료 중이고 150명 가량의 의료 인력이 사망했으며, 연료 부족으로 중환자실(ICU)과 응급실에만 전기가 계속 공급되고 산부인과 병동의 경우 전기가 하루 4시간 밖에 공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진이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어 수술 후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 북부 인도네시아 병원 외과의사 타이시르 하산도 매체에 공습으로 인해 잔해에 깔려 다친 환자들이 "바닥, 문 옆, 복도 어디에나 있다"며 "청결한 것, 소독된 것은 전무하며 병원이 피와 벌레들로 뒤덮여 있다"고 전했다.
지난 주말 중동을 순방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인도주의적 휴전 및 전투 일시 중지에 대한 아무런 가시적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이 지역을 떠났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에 전투 중지에 대한 제안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일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통화에서 "민간인들이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서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민간인에게 지원이 전달되도록 보장하며 잠재적인 인질 석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전술적 일시 중지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양국 간 일시 중지 관련 논의는 "끝이 아닌 시작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는 전술적 일시 중지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6일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질 석방 없이 휴전은 없다"면서도 "전술적 일시 중지에 대해선 우리는 이미 여기서 한 시간, 저기서 한 시간 해 왔다. 물품과 인도주의적 구호품 반입 및 인질 해방을 위한 여건을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택, 병원까지 공격의 영향을 받아 가자지구 전역에서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가자지구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일부 부상자 및 외국 국적자에게만 열린 상황에서 일시적 전투 중지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가자지구의 한 37살 치과의사는 <가디언>에 "도시 전체가 파괴됐다. 만일 휴전이 이뤄진다 해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린 모든 걸 잃었고 버려졌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가자지구의 통치 공백에 대한 뚜렷한 구상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가 군사 작전 종료 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6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종료된 뒤 누가 가자지구를 통치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무기한 전반적 안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안보 책임을 갖지 않았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하마스 테러 분출을 봤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뒤 가자지구를 점령했지만 2005년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며 38년 간의 점령 체제가 끝났다. <AP>는 네타냐후 총리가 해당 발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전쟁이 끝난 뒤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유지할 계획임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과는 어긋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하는 것은 실수"라며 "팔레스타인 국가로 향하는 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으로 이스라엘 쪽에서 주로 민간인인 1400명이 사망하고 240명 이상이 인질로 납치 당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무차별 보복 공습을 이어갔고 지난주부턴 지상 작전에 돌입해 가자 북부를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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