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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만한 선배의 삶을 통해 역사를 살피는 작업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마지막 회-에필로그 : 문곡과 보낸 1년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조정과 시골 사이에서안타까운 일1683년(숙종10) 12월 현종비이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세상을 떴다. 이듬해에는 가뭄이 들었다. 1684년 5월, 사옹원 직장(司饔院直長) 최신(崔愼)이 상소하여 "윤증(尹拯)이 박세채(朴世采)에게 편지를 보내 봉조하(奉朝賀) 송시열(宋時烈)이 지닌 학문과 심술(心術)이 그릇되었다고 비
오항녕 전주대학교 교수
2014.06.22 13:18:41
조정과 시골 사이에서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⑦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민심 잃은 정부, 재해나 사건 때문이 아니야!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⑦마음은 산골에 있나니문곡 김수항은 젊은 나이에 현직(顯職)에 오르기는 했으나 마음은 늘 산수(山水)에 있었다고 한다. 문곡은 1670년(현종11)에 아버지 김광찬(金光燦)의 상복을 벗었다. 그 뒤로는 벼슬할 생각이 더욱 줄어 영평(永平 현재 경기도 포천 근
2014.06.09 14:09:17
민심 잃은 정부, 재해나 사건 때문이 아니야!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⑥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자식을 버리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⑥경신(庚辛) 대기근 : 조선의 인구를 줄인 자연재해재해(災害)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통상 재해는 자연 발생하는 천재(天災)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에서 연유하는 인재(人災)로 나누어 보는 듯하다. 역사 속에서 재해, 재난을 살펴볼 때도 유용한 구분이라고
2014.05.23 20:06:08
"자식을 버리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⑤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그 슬픔과 일상의 화해법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⑤백성은 어리석은 듯, 신령스럽다- 함경도를 다녀온 기록예송(禮訟)이 지나간 뒤, 다시 조선은 평온해졌다. 아니, 정중동(靜中動), 평온한 가운데 조정은 일상의 리듬과 개혁의 박동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적이 있는 양반호포 징수 논의와
2014.05.09 19:12:54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그 슬픔과 일상의 화해법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④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군대 안 가는 양반 자제들, 어찌할꼬?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④ :예송(禮訟)의 논리들청개구리의 추억1659년 효종이 세상을 뜬 뒤, 인조 왕비인 자의대비(慈懿大妃) 조씨(趙氏)의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 하는 전례(典禮) 문제로 시작한 것이 기해예송이었다. 정태화, 송시열은 자의대비가 이미 장자인 소현세자의 장례 때 삼
2014.04.25 19:44:10
군대 안 가는 양반 자제들, 어찌할꼬?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③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성리학' 조선의 그 수많은 사찰들은…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③군대라는 상수(常數)문곡 김수항은 효종 9년(1658) 7월 부제학이 되면서 홍문관의 수장이 되었다. 홍문관은 제학, 대제학이 있지만 이는 겸직이고, 실직으로는 정3품 당상관인 부제학이 장관(長官)을 맡고 있었다. 문곡의 나이 30세였다.이듬해 2월, 조정에 심
2014.04.11 18:58:22
'성리학' 조선의 그 수많은 사찰들은…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②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조선의 '엄친아'가 '돈'을 걱정한 이유?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②선입견의 추억역사학은 과거 인간이 살아온 사실에 대한 탐구, 경험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채우거나 수정하고 삶을 개선하거나 고양시키는 공부이다. 마치 새로 사귄 사람의 지나간 경험을 알면서 친해지듯이, 또는 지난 누군가에 대한 사실이나 정보를 통해
2014.03.14 19:37:39
조선의 '엄친아'가 '돈'을 걱정한 이유?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대제학이 걸었던 길①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트위터 시인? 16세기 조선에선 '일기=시'였다!5. 대제학이 걸었던 길 ①효종은 즉위 초반 나라를 바로잡고 부강하게 하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다소 편협한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였다. 조정에서는 외척이나 관료가 중심이 되었고, 군비나 노비추쇄처럼 민생과 배치될 수 있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특히 김홍욱 장살 사건을 전후
2014.02.28 19:25:51
트위터 시인? 16세기 조선에선 '일기=시'였다!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 ⑥
☞연재 지난 기사 바로 가기 : '말'은 막고 '벌'은 세게 하면… 짐승의 길!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예전에는 대문에 붙여놓았는데, 요즘엔 문자로 받고 있다.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을 맞아 크게 복 받고, 정월의 양기를 받아 경사스러운 일이 많으라는 뜻이다. 정월은 아래에 양(陽)이 셋 있는 달이므로 주역의 괘(卦)로 말하면 위가 땅(地 음
2014.02.14 18:54:17
'말'은 막고 '벌'은 세게 하면… 짐승의 길!
[오항녕의 '응답하라, 1689!']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⑤
문곡 김수항이 효종 7년(1656)에 올렸던 상소는 황해 감사 김홍욱이 직언을 하다가 장살 당한 일에 대한 비판, 효종의 군비와 노비추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이 해가 병신년이었는데, 문곡의 상소는 여러 모로 곱씹어볼 만한 데가 있다. 우리 나이로 치면 28세에 불과하던 젊은 관료였지만, 그의 상소에는 당시 조선 사회를 이끌어가려던 사람들의 핵심적인
2014.01.24 18:3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