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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런던 거리, 20세기 초반 창신동에?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창신동, 부르주아 유토피아의 추억
'건축왕 정세권'이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한 지역, 창신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세권 선생에 대한 연재에서 다소 벗어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창신동 소재 대형 한옥이 곧 헐리기 때문이다. 해당 한옥은 어쩌면 창신동의 잊혀진 역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일지 모른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정세권의 건양사 광고에는 아래 내용이 나온다.
김경민 서울대학교 교수
2015.10.28 07:08:23
건축왕, 한 달 만에 한옥 37채를 만들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한 해 동안 170여 채 한옥 건설하기도
일제 강점기 시절 정세권의 건양사가 일반인들에게 인식될 만큼 매우 큰 회사이었음에도, 해방 전 사세가 기울었기에 건양사의 매출, 이익 등 회계 및 기타 사업 자료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건양사의 활동은 신문 자료 혹은 인터뷰 자료를 통해서 가늠할 뿐인데, 특정시기 신문에 소개된 분양/임대 광고는 대략의 사업지와 규모를 추정하게 해준다. 건양사는 조선일
2015.10.22 09:09:12
한국 건설社는 왜 최고 부자가 못 되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80년 앞서 대규모 주택 임대 사업 길 연 정세권
'뉴스테이'(민간 건설사가 중산층용 임대 아파트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업) 정책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부가 저리 은행 이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건물 건설 후 분양 위주 사업을 하던 민간 건설 회사가 대규모 주택 임대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사실 해외에서는 민간 부동산 회사들이 중산층과 서민을 대상으로 임대 주택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업이 매
2015.10.14 14:21:59
집값 폭락 시대, 그는 어떻게 돈을 벌었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경성 최대 디벨로퍼, 건축왕 정세권의 시대
1936년 매일신보는 성공한 사업가들의 성공 사례를 시리즈('나는 어떠케 성공하얏나?')로 연재하였다. 그 중 다섯 번째 연재에 정세권의 인터뷰가 실렸다. 여기서 눈여겨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제목이다. '집값 폭락 시대의 무시무시한 그때를 말하는 건양사주-정세권' 연재 초기, 1920년대 이후 경성의 인구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일
2015.10.07 14:32:51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부동산 재벌이 되었나?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상경 10년 후 재벌이 되다.
1929년 경성편람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여러 분야의 대표적 인물들이 각 분야를 소개한 것인데, 나름 경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경성은 조선의 수도이요. 삼십여만 시민이 사는 대도시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조선의 심장이라 할 것인데 이때까지 완전히 소개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누구나 유감으로 여기던 바, 이번에 경성
2015.09.30 11:15:51
1980년 역삼동과 대치동, 당신의 선택은?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1920년 정세권의 북촌 입성
부동산 투자 및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물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을 듣게 된다. 첫째는 위치.둘째도 위치.셋째도 위치. 부동산 투자에서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주 근거리에 위치하였음에도, 부동산 가격 차이가 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사교육 1번지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근래 재개발이 완료되어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50평형대)의
2015.09.23 16:06:34
영화 <암살> 주인공이 잊히는 게 온당한가?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왜 정세권인가?
광복 70주년과 맞물려 영화 암살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역사적 평가가 미약했음에 대한 자성,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연유로 역사 앞에 드러날 수 없었던 인물에 대한 안타까움이 대중에서 회자되었다.이의 연장선에서 아래의 질문을 해 본다. 조선물산장려회 재정을 절대적으로 후원하면서 조선물산장려회의 황금기를 열었고, 조선어학회 재정을 지
2015.09.16 10:28:59
북촌 한옥 마을, 서촌과 다른 이유가 있었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한옥 집단 지구의 탄생과 디벨로퍼
1920년대 경성의 상황을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방의 가난한 조선인과 유지층들이 경성으로 이주하면서, 조선인 인구가 급증하였고 이들이 거주하려는 지역은 북촌이었다. 일본인 역시 인구가 급증하였는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의 하나는 일본인 주거지를 북촌으로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촌 지역은 이질적 계층들이 한정된 토지를 놓고 경합하는 곳이 되었고,
2015.09.09 11:15:43
"일본인이 종로에 발을 못 붙이게 하라"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조선-일본 토지 전쟁의 발발
앞서 연재에서 설명하였듯이, 1920년대 지방 빈농과 지역 유지의 경성 유입이 증가하면서 경성에 거주하는 조선인 인구는 빠르게 늘었고, 일본인의 인구 역시 증가하였다. 토지 및 주택 시장 측면에서 매우 성격이 다른 수요 계층에 시장에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이질적인 두 계층은 주거 지역도 상이했는데, 일본인은 청계천 이남 남촌 지역에 그리고 조선인은 청계천
2015.09.02 09:46:46
경복궁 접수한 일제, 북촌과 서촌을 짓밟다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충무로, 남대문 찍고 북촌으로 질주
디벨로퍼. 땅 매입부터 기획, 설계, 마케팅, 사후 관리까지 총괄하는 부동산 시행사, 혹은 개발자를 말합니다. 이름 그대로 부동산을 새로운 용도로 개발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해외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디벨로퍼의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디벨로퍼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근대의 디벨로퍼들, 정확히 일제 시대 때 활동했던 디벨로퍼들에 대한 평가도 비슷합
2015.08.26 07:5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