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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구당, '돈 먹는 하마'인가?

[이제는 '풀뿌리 정치'] 개방형ㆍ풀뿌리 지구당 제도가 정답이다

지난 2004년 정당개혁의 일환으로 '고비용 저효율'과 '사당화'의 주범으로 인식되어온 지구당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당원협의회나 지역위원회 등의 형태로 현재까지 유사 지구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 당원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물론 지구당을 부할 하자는 논의가 과거 방식 그대로 지구당을 부활하자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실 지구당 폐지를 포함한 2004년 정당개혁은 '고비용' 정치라는 비효율성이 개혁의 초점이었다. 이에 따라 이익의 집약과 대표라는 정당 고유의 기능을 어떻게 정당이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정당개혁 과정에서 크게 고려되지 못했다. 특히 일반 평당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본 공간인 지구당이 폐지됨으로서 정당은 중앙당과 시·도당이라는 기형적 조직구조를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편법적인 형태의 당원협의회 등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 정치의 '고비용' 문제나 '사당화' 문제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결과가 지구당 폐지의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예컨대 '고비용' 정치의 해소는 오히려 정치자금제도의 개혁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역에 따라 다소 상이하기는 하지만 '사당화' 문제나 '동원정치'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당과 일반 대중의 정치적 괴리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지역구 국회의원을 제외한 중앙당과 지역의 연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뉴시스

사실 우리 정치에서 일반 시민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치공간은 정당개혁뿐만 아니라 정치개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러한 공간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자신들의 일상성에 기반해 생활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생활정치와 지역정치가 시민단체의 전유물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정당 본연의 기능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앙의제의 지역화와 지역의제의 중앙화라는 정치적 예술은 필수적이다. 지구당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지구당이나 지역협의회 등이 일반 당원들이 현장성을 기초로 활동하는 풀뿌리 조직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이나 개별 정당의 실정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지리적인 범위나 인적 규모가 너무 방대한 지구당이나 지역협의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천여 명이 넘는 조직 구성원이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함께 호흡하기는 어렵다. 조직이 방대하면 자발성보다는 동원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대면접촉의 의미가 크게 줄었다지만 여전히 대면 접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혹자는 현재 정당조직에도 읍·면·동책이나 협의회장을 중심으로 한 하위 세포조직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조직은 선거운동이나 정당행사를 위한 하향식 명령전달체계에 불과하다. 여기에서는 일반 개별 당원의 토론이나 면대면 접촉은 그리 중요치 않으며, 당원의 풀뿌리 정치활동 역시 별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일반 개별 당원의 의사소통의 공간이자 교류의 공간이며, 생활정치를 논의할 수 있는 풀뿌리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풀뿌리 정당조직의 중심은 당원이 되겠지만 폐쇄적으로 운영할 필요는 없다.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자 시민들을 조직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당비납부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일각에서는 과거 지구당처럼 기초의원과 같은 지역 정치인의 조직 장악을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당원이 상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라면 이는 기우일 뿐이다. 집단적 인센티브만 충분한다면 오히려 공직이나 당직 출마와 같은 개별적 인센티브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지역과 정당의 사정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조직구조의 측면에서 읍·면·동 단위 수준의 정당조직이 풀뿌리 조직으로 기능할 경우 지구당이나 지역협의회는 년 1회나 2회 지구당 대회를 개최하거나, 읍·면·동 단위에서 선출된 대의원대회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구당이나 지역협의회는 필요에 따른 의사전달체계로서 그리고 구·시·군 수준의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만을 가지며, 당원의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정당 활동은 이보다 하위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정당의 조직 수준이 현재보다 한 차원 더 끌어내려지고, 일반 당원들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때 정당의 대표성을 제고시키는 근본적인 정당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풀뿌리 조직의 강화는 정당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바꾸고 권력을 분산키며, 특히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당 부활과 동시에 '지구당 규약'을 제정하자

지난 2004년 정치개혁의 걸림돌로 간주되어 폐지되었던 '지구당' 제도는 부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민주정치-정당정치' 발전을 위한 것인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개선 노력을 포기한 채, 없애버린 것은 방향착오가 분명하다. 지구당 폐지는 정치개혁에 대한 대중적 요구에 임기응변적으로 반응한 성격이 강했다고 본다. 사당화-보스정치를 혁신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제대로 된 '정당-지구당'의 민주적인 운영과 정치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고비용저효율' 정치가 금권선거 풍토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돈 안 쓰는' 선거(정치)제도 개혁으로 최근에는 상당 수준에서 금권정치가 불식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치비용을 낭비로 몰아가거나 고통과 훈련 없이 정치발전을 이루려는 발상, 그 자체가 정치개혁의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구당 활동 부재는 '좋은 정치 - 민주 정치'를 가로막는 폐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1. 무엇보다도, 정치의제에 대한 지역 단위의 소통이 파편화되었다.
1-2. 아울러,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 훈련의 기회가 봉쇄되었다.
2-1. 지방자치 확대(지자체, 교육자치, 경찰자치 등등) 등 지역정치의 영역이 넓어지고 세분화되는 흐름에 대처할 단위가 실종되었다.
2-2. 아울러, 유망한 지역정치 인력의 육성 및 세력형성이 어려워졌다.
3. '조직' 측면에서 보자면, 기존의 전통적인 지방토호들에게 무장해제당한 결과를 빚고 있다. 지역정치는 기존의 지방토호들의 놀이터로 방기되고 있다.

'정당정치-책임정치' 본연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정치 활동과 지구당은 당연히 부활되어야 하지만, 지구당 부활이라는 제도 개선만으로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구당을 제대로 운영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려는 '주체-세력'의 형성, 민주개혁 세력의 형성 없이 정치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지구당 규약'의 제정과 운영을 제안하는 바이다. '지구당 규약'이 지역정치 활동에 대한 구성원(지역정치 지도자, 당원)들의 최소한의 약속(활동방침)을 담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면, '지구당 규약' 운영 성패의 핵심은 지역정치인들의 자율적인 제정과 운영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아울러, 중앙당의 전략적-조직적 지도와 지원체계가 관철되어야 할 것이고, 운영의 초기단계라는 점과 당세의 지역적 편차를 고려하여 다양한 모델을 도입해서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치자금이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서 공개적이며 경쟁적으로 투입되는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거칠게, '지구당 규약' 제정 과정과 운영 추진방안을 짚어보자면, 아마도 지역정치 활성화를 추진하는 세력들의 네트워크 형성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주도해서 지역정치 활성화의 필요성 등이 '정치개혁 특위'에 전달되어, '지구당 부활' 등이 포함된 정당법 등의 개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어서, 당헌-당규를 손보고, 중앙당에 '지구당 규약'을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던지 아니면 사무처가 이 업무를 관장해야 할 것이다.

중앙당은 '지구당 규약'의 몇 가지 모델을 지구당에 제시하고, 지구당 스스로 성안해서 보고토록 요청한다. 중앙당은 지구당에서 올라온 '지구당 규약'(안)이 중앙당 노선에 배치되는지 등등을 검토해서, 상호협의 하에 수정작업을 한다. 지역정치인들은 '지구당 규약'을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확정된 '지구당 규약'은 최대한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지구당 규약' 개정 작업은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중앙당은 지구당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우수사례 발굴과 포상 등을 실시하고, 지원체계를 강화한다.

'지구당 규약'은 좀 더 치밀한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지역정치 활동에 대한 내용들을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조직운영에 관한 사항(당원 규정, 대의원 규정, 회의 규정 등), 공직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 당원 및 시민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정책개발 활동(세미나, 토론회, 간담회, 프로젝트 수행 등등), 중앙정치 의제에 대한 지역적 활동방안, 지역 현안에 대한 활동방안, 재정 문제, 지역 여론 동향 조사 및 처방방안, '지구당 규약' 개정계획안, 기타 등등. 지구당 차원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려는 정치개혁 추진세력의 형성이 시급하다.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 과제가 되고 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지역정치 활성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먼저 네트워크 되어서 여론 형성이나 관련 법 개정 등의 동력으로 작동해야 하며, 모범적인 지역정치활동 성공 사례들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지구당 부활'이나 '지구당 규약'이 다양한 여론 수렴이나 유망한 신인의 등장을 어렵게 하는 기득권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고, 당원들이나 주민들의 정치참여의 장으로 순기능 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어야 할 것이다.

김용석(전 청와대 인사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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