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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일간의 오체투지…"이것이 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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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일간의 오체투지…"이것이 민의다"

[현장]1000여 명의 사람들이 틔운 희망의 싹

"세 줄로 서주세요, 세 줄!"

진행 팀 명호 씨의 목소리가 앰프에서 흘러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지난 26일 오체투지 순례 53일째, 여느 날과 똑같이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세 성직자는 묵묵히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지만, 이날 순례는 다른 날과 조금 달랐다. 다른 것은 순례 행렬의 줄 수만이 아니었다.

징도 2대가 동원됐다. 평소처럼 지관 스님 혼자 드는 징으로는 긴 순례 행렬의 끝까지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정도였다. 늘 육성으로 순례를 진행하던 명호 씨도 이날은 마이크에 대고 순례단에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공주 방향의 691번 지방도로, 왕복 한 차선씩 밖에 없는 2차선 좁은 도로의 한 차선이 순례자들로 가득 했다. 선두에서 행렬을 바라보면 그 끝이 아스라이 보이는 정도였다.
▲ 충청남도 논산에서 공주 방향의 691번 지방도로, 왕복 한 차선씩 밖에 없는 2차선 좁은 도로의 한 차선이 순례자들로 가득 했다. 선두에서 행렬을 바라보면 그 끝이 아스라이 보이는 정도였다. ⓒ프레시안

오체투지 순례 1차년도 회향식 열려…"내년, 상악단을 향해 또 순례 떠날 것"

이날은 오체투지 순례단의 1차년도 회향식이 열리는 날이다. 지난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 있는 하악단에서 천고제로 순례를 시작한 순례단은 긴긴 여정을 오체투지로 묵묵히 이어오며 드디어 2008년도 순례의 마지막 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충남 공주에 위치한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

조선 시대, 임금이 산신에게 국가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위기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던 기도처에서 이들은 순례의 여정을 기도로 끝냈다. 그리고 2009년 3월, 상악단인 북한 묘향산을 향해 이곳 중악단에서 다시 순례를 떠날 것을 다짐했다.

1000여 명의 순례자…기도로 뿌린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다

지난 50일간 순례의 의미를 함께 하고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도 한 번 이상씩 순례에 참석했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오전 8시 30분, 순례를 시작할 당시 순례단은 150여 명. 시간이 흐를 때마다 순례단 옆으로 대형 버스들이 한 대씩 멈춰서며 사람들을 토해냈다. 어느새 점심식사를 마치고 계룡산 신원사로 가는 입구 즈음에선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순례를 이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물결, 장관이었다.

순례 53일을 오는 동안 모이는 사람 수가 적을 때는 20여 명에서, 많을 때는 100명 수준이었다. 그동안 순례에 참여하며 "사람들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 또는 "이 순례를 통해 나 먼저 변하면 된다"고 했던 1일 순례자들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문규현 신부는 마지막 순례를 떠나기 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진 못했지만, 제주도에서도 오고, 전국 각지에서 부르지 않았어도 사람들이 찾아왔다"며 "여기에서 희망의 씨앗이 있다"고 평가했었다.

이렇게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순례에 참여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만든 물결은 그동안 순례를 통해 이들이 꿈꾼 한국 사회의 '희망'이었다.
▲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체투지 순례 1차년도 회향식을 위해 계룡산 신원사로 가는 입구엔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순례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물결. 장관이었다. ⓒ프레시안

"이것이 민의(民意)다"

"다함께 공존의 틀을 만들자는 순례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의(民意)입니다."

전주 평화동 성당에서 온 전성훈(가명·44) 씨는 사람들의 물결을 보고 "민의"를 얘기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촛불로 타올랐듯, 오체투지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몸짓 또한 그들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 씨의 아내 김미선(가명·46) 씨도 "인류 역사에서 종교 전쟁이 많았는데, 기독교와 불교 성직자들이 만나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며 "오체투지는 세 성직자가 '더불어 함께 살자'는 공존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것이 이 순례가 갖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부산에서 온 서외생(48) 씨도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에 대해 "환경을 파괴하고, 개발 우선주의로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는 의식들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라며 "요즘 정치판 보면서 어려운 사람들 소외시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답답했는데, 세 성직자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무언의 암시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순례단원들은 "우리 안의 탐욕이 금융 자본주의를 만들었고, 그래서 주식이 반 토막 나는 현실은 우리의 탐욕이 만든 재앙"이라며 "이 같은 탐욕을 내려놓자는 게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1%만을 위해 정책을 내놓는 정부를 향해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세 성직자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다"며 "이는 나부터 반성하고 더불어 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오후 3시. 세 성직자를 선두로 순례단이 신원사 중악단에 들어섰다. ⓒ프레시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순례를 떠난 세 성직자를 응원하려고 왔다"며 "이들의 삶을 보며 나도 따라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꿈꾼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아마 순례단이 수도권에 가까이 올수록 이 사람들의 물결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제2의 촛불이 타오를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중악단에서 평화의 인사 나누며, 순례 마무리

오후 3시. 세 성직자를 선두로 순례단이 신원사 중악단에 들어섰다. 이날 신원사 초입부터는 그동안 뒤에서 묵묵히 순례 진행을 도왔던 진행 팀도 함께 오체투지를 했다. 이들이 중악단에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세 성직자는 오체투지를 세 번 한 후 중악단에 들어가 지리산에서 가져온 물과 흙을 합쳐 이들이 지나온 53일간의 기도를 마무리했다.

이날 천고제 행사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가 사회를 보고, 전주 평화동 성당의 성가대와 서울 화계사 합창단의 합동 공연이 열렸다. 또 박남준 시인의 고천문과 김지하 시인이 쓴 시가 낭독됐다.

박남준 시인의 고천문이 낭독되는 순간 전종훈 신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세 성직자의 눈가는 행사 내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어서 순례 참여자의 격려 발언이 이어졌다. 시민 이현주 씨는 "180km의 험난한 순례 길 동안 뿌려진 씨앗들이 논두렁과 바다를 넘어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묘향산까지 무탈하라"고 말해 사람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세 성직자와 순례단원들은 1차년도 순례가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감사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행사를 마쳤다.
▲ 어떤 이들은 "아마 순례단이 수도권에 가까이 올수록 이 사람들의 물결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제2의 촛불이 타오를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이날 신원사 초입부터는 그동안 뒤에서 묵묵히 순례 진행을 도왔던 진행 팀도 함께 오체투지를 했다. ⓒ프레시안

▲ 이들이 중악단에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프레시안

▲ 세 성직자는 오체투지를 세 번 한 후 중악단에 들어가 지리산에서 가져온 물과 흙을 합쳐 이들이 지나온 53일간의 기도를 마무리했다. ⓒ프레시안

▲ 세 성직자는 오체투지를 세 번 한 후 중악단에 들어가 지리산에서 가져온 물과 흙을 합쳐 이들이 지나온 53일간의 기도를 마무리했다. ⓒ프레시안

▲ 박남준 시인의 고천문이 낭독되는 순간 전종훈 신부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세 성직자는 행사 내내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프레시안

▲ 세 성직자와 순례단원들은 1차년도 순례가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감사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행사를 마쳤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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