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촛불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한다. 한국 민주주의에 절망하고 이민을 생각했던 사람도 이제 다시 한국 사회에 살아야만 하는 근거를 찾았다고 말한다.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을 거대한 기득권의 철벽이라고 인식했던 사람들도 이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다고 흥분한다. 욕망의 정치에 휩쓸려 들어간 유권자들에 낙담했던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세력들도 180도 달라진 대중의 지혜와 시민들의 자발성, 창조성에 놀라고 다분히 파시즘 냄새가 나는 용어인 집단지성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 반대로 촛불에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던 듯싶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행정부 고위 관리들, 한나라당, 그리고 무엇보다도 촛불 집회에 대해 거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과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조·중·동이라 불리는 거대 언론사들과 극우 세력들이 그들이다. 물론 '박사모'라 불리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것을 보면 보수라고 해서 다 절망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시청 앞과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 광장의 그 발랄한 여중생들과 청소년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엄마들과 아줌마들 아저씨들,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소풍 나온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전혀 엉뚱하게도 나는 어떤 허무함을 느꼈다. 촛불시위대의 일원으로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도 나는 그렇게 절박하지도 그렇게 흥이 나지도 않았다. 퇴진하라, 재협상하라는 구호 자체가 너무도 당연한 구호라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차가 다니지 않는 세종로와 종로, 광화문, 서대문, 시청 광장, 서소문 등등 그야말로 탁 트인 드넓은 길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느낀 것은 무엇보다도 상쾌하고도 시원한 해방감이었다. 평소에는 자동차만이 다니는 위험한 그 길을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치 특혜라도 받은 듯한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막혔던 하수도 구멍이 뻥 뚫린 듯, 십 년 묵은 체증이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지듯, 왜 그렇게 속이 후련한지 몇 번이나 얼마 있으면 사라져버리고 말 피맛골의 빈대떡 집으로 달려가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키곤 했다.
막걸리로 뱃속이 불콰해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해방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광화문의 그 넓은 공간을, 서울 시내의 길이란 길은 죄다 골목길까지도 늘 자동차에 빼앗긴 채 살아왔다. 목숨을 내걸지 않고서는 언감생심 이름 있는 길은 걸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혹여나 종로 한복판을 대놓고 걷는다면 아마도 미친 놈 취급을 받으면서 즉각 교통경찰에 붙잡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촛불 물결로 한꺼번에 자동차를 쓸어버린 듯한 밤의 길거리에서 끔찍한 '2MB'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지만 한 순간이라도 자동차와 소음과 매연으로부터 해방되어 사람들이 길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엇보다 흥분되는 체험이었다. 4·19 이후 긴급조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시위대가 도로를 점령한 일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때의 도로는 매번 짧은 긴장의 순간, 자욱한 최루탄과 유혈이 낭자한 전투의 장소였을 뿐이었다. 촛불 집회처럼 모두가 모여 축제를 벌이고 온갖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는 소통과 광장의 도로가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는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도시의 불빛에 묻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30달러 이상의 고유가 속에서도 불을 환히 밝히고 있는 도시의 빌딩 숲 저 너머로 신기하게도 달이 보였다. 보름을 향해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있는 달이었다.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 길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어주는 소통과 교통의 길이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길을 점령하고부터 도로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 공동체와 공동체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단절과 파괴의 도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동차는 석유와 철과 다른 수많은 자원을 고갈시키는 원흉일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 가운데 하나이다. 자동차의 질주는 자본주의의 속도 전쟁 속에 사람들을 몰아넣어 사람을 자동차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자동차의 빠른 이동, 빠른 경제 성장, 빠른 소비란 그만큼 사람들을 이른바 경제인으로 빠르게 변모시켰고 마을 공동체와 가족 심지어는 개인 자체까지도 해체시켜 정처 없이 부유하는 뜨내기 파편, 마침내는 인간쓰레기로의 전락을 가속화시켰다.
게다가 자가용은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와 대량소비를 극단화시키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런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주인이 되어 다니는 자동차 도로란 사람과 공동체에게는 혜택은커녕 오히려 에일리언과도 같은 폭식괴물일 뿐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자동차 도로가 삼킨 사람들만 6000명이 넘는다. 다친 사람들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런 에일리언 도로를 우리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세금으로 열심히 새로 만들고 또 친절하게도 부서지고 망가진 데가 있으면 즉각 출동해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쳐주기까지 한다.
촛불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이런 소통과 교통의 길을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 주었다. 촛불 덕택에 우리는 비로소 노예에서 벗어나 길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비록 집회는 한 순간이고 날이 밝으면 다시 그 괴물같은 자동차들의 질주에 주인 자리를 빼앗기고 말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한국의 시민들만큼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 전문가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이니 선진 회수육이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전문 용어까지 거침없이 들먹일 수 있는 시민들이 어느 나라에 있을까. 그러나 자동차가 추방된 길 한 가운데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와 재협상 구호를 들으면서 나는 누구에게라도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과연 30개월 이하 살코기만 수입하면 광우병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 촛불은 꺼지고 문제는 만사 해결되는 것일까.
일종의 회의와 함께 온 허무감은 아마도 19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 개헌 요구와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한 실망스런 체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의 핵심은 결코 재협상이나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금지에 있지 않다. 우리는 미국의 광우병 쇠고기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미국의 공장식 축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미국이 유럽처럼 동물성 사료를 아예 금지하면 된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과 관리, 정치인들에게는 미국 축산업자들의 돈벌이가 중요한 것이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시민들이 광우병에 걸리건 말건 그것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이른바 과학을 앞세워 말도 안 되는 살인 행위를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이야 DDT니 방사성이니 불소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그렇다고 치자. 그런 미국의 침략 행위를 '한미 동맹'이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하며 오히려 감지덕지하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 땅의 친미 기득권자들의 행태는 참으로 빨갱이 친북좌파 망상에 사로잡힌 구제불능의 정신병자들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곧 밀어닥칠 식량 위기를 인식한다면 공장식 축산 자체가 사실은 지속 불가능한 축산이며 우리는 공장식 축산을 서둘러 폐기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 집회가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까지 들추어내고 새로운 대안의 삶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들고 있는 촛불은 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촛불은 석유로 만든 것이며 일회용 컵은 재생 종이가 아니라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제품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양초와 일회용 컵만 해도 얼마나 많은 석유를 캐내고 나무를 베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아무리 현실의 여건을 이해한다고 해도 조금은 꺼림칙한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촛불 집회조차 사실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자본주의 산업문명에 토대를 두고 있는 풍요의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귀청을 찢을 것만 같은 음향 시설도 불가피하다고는 하지만 지나친 중앙 집중의 획일화된 집회를 유도하는 것 같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타도하고 붕괴시키기 위해 의제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것이 지금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아직 수많은 주제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도처에 흩어진 광장이 더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이런 논의의 진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미친 소를 먹을 수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절박한 요구는 촛불 집회가 거듭되면서 0교시 미친 교육, 미친 민영화, 미친 언론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깊어져 갔다. 광우병 쇠고기 괴담에서 촉발된 각종의 다채로운 괴담, 어떤 공기업을 누구에게 팔아 그 정부 돈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등등의 민영화 괴담까지 이명박 정부가 펼칠 우리 사회의 온갖 의제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자유토론과 발언이 이어지고 온라인에서 수많은 자료들이 공유되면서 광우병 쇠고기를 넘어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촛불 집회는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재기획할 수 있는 평화로운 소통의 문화제였다. 국민MT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시민들을 단시간에 급격히 사회화, 정치화되는 소용돌이, 인민들의 진짜 정치교육 수련회장이었다. 촛불 집회가 더 오래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축제와 토론장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사실 오랫동안 이런 소통과 교통의 광장을, 자동차의 속도와 지배가 추방된 길거리 아고라에서 인민들이 주인이 되어 열리는 민주주의의 학교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새로운 민주주의가 창조되고 있다
촛불 집회의 시작은 분명 이명박 정권의 어이없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결정에 있었다. 그때는 아무리 대통령이 친일 민족반역자를 연상시키면서 미국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미국 축산업자들의 요구에 시민 건강을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짓을 벌여도 누구도 나서서 저항을 조직할 것 같지 않았다. 시민사회 조직들조차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뿌리 깊은 패배 의식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도 여중생들과 고등학생들이 나섰다. 그리고 세상은 순식간에 촛불 이전과 이후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촛불 집회의 동력은 다름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여중생들을 비롯한 중·고등 학생들이야 이미 그들 자신이 학교라는 집단을 토대로 강한 또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형성의 공동체들이기에 논외로 치자. 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온라인 토론장과 커뮤니티, 유모차 부대와 무적의 김밥부대를 가능케 한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들, 한살림을 비롯한 수많은 생협 조합원들이 갑자기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들 온라인 공동체들의 요구는 단순히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상기시키는,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근원의 민주주의와 소통에 대한 요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취미와 경향,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형성된 커뮤니티에서 이미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소통을 실천해 오고 있었던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자들이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그리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독재정부건 민주정부건 할 것 없이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성장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의 지상과제로 받들어 모셔졌다. 민주정부가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이제 한국은 극단의 기업국가, 경영국가, 공동체는 사라지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경쟁이 유일무이의 가치가 되어버린 기업사회로 변모되었다. 대학생들의 최고 목표가 고시 합격과 재벌기업 정규직 노예로 들어가는 것이 되어버린, 취직시험 준비하느라 바빠 촛불도 들지 못할 정도인 극단의 사막사회로 전락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기업 사장 출신으로서 국가를 확실히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와 전국을 뉴타운으로 만들겠다며 다수당이 된 한나라당은 그 극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도저히 회생 불가능한, 암담한 현실의 밑바닥에서 도저히 형성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마을이, 소통과 교류의 인간관계가, 커뮤니티가 놀랍게도 온라인에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무리 동물임에 틀림없었다.
명박산성을 넘어 소통의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한미 FTA, 한미동맹,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 경제성장, 대운하, 민영화 등등의 용어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세상이 그것이다. 그동안 대다수 대중들은 이 같은 성장 신화와 주술의 용어가 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촛불 집회는 이런 경제 개발 신화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근본에서부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과 재검토를 할 수 있는 난장을 마련했다.
물론 촛불 집회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미 FTA에 반대한다거나 자본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예컨대 과연 한미 FTA를 맺으면 누가 이익이고 재벌이나 사장들이 아닌 대다수 인민들도 과연 잘 살 수 있는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질문과 의문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공동체는 질문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 대선은 유권자 10명 가운데 4명은 투표를 하지 않는 역대 최저 투표율의 대통령 선거였다. 결국 전체 유권자 10명 중 3명의 지지로 새 대통령이 권력을 차지하였다. 올해 4월 실시된 총선은 역대 최저인 4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기피한 셈이다. 결국 전체 유권자 대비 18%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심지어는 지역 유권자 10명 가운데 1사람 이하의 지지로 당선된 경우도 있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가 반드시 선거를 통한 간접민주주의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와 선거, 정당정치는 서로 꼭 그래야만 하는 필요충분조건의 관계가 아니다.
서구에서 절대왕정이 시민혁명으로 폐지되고 근대 공화정 국가를 출범시킬 때 민주주의의 이론과 철학을 제공했던 수많은 정치사상가들 대부분이 선거는 참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엘리트정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이상화된 아테네 시민들은 모두가 선거는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는 상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테네 시민들의 상식으로는 민주주의에 가장 적합한 제도는 제비뽑기였다.
아테네에서는 약 700명 정도 되는 임기 1년의 행정관들 가운데 600명 정도가 제비뽑기로 선출되었다. 민회를 대표해서 일종의 최고 권위를 가졌던 역시 임기 1년의 500명인 시민대표 평의회 위원도 제비뽑기로 임명되었다. 누구도 평생 2번 평의회 위원이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임기 1년인 6000명의 배심재판원도 30살 이상의 지원자 가운데서 제비뽑기로 선임했다. 이들이 매일 열리는 법정에서 재판관과 501명, 1001명 1501명 등으로 구성되는 배심원들이 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행정관, 평의회 위원, 배심원에 지원할 수 있었다. 대신 공직자들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법정의 감시를 받아야 했고 엄격한 책임이 뒤따랐다.
1년 임기를 마칠 때 모든 행정관들은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임기 중에도 시민들은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고 직무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재임시 잘못이 드러나면 탄핵되는 것은 물론 매우 과중한 벌금을 물어야 했고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심지어는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행정관들 가운데 장군이라든가 최고 재정 담당가라든가 하는 전문 직종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행정관들은 주요한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행정관이란 결국 관리자이고 집행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천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권력은 말 그대로 시민들의 민회와 법정에 있었다. 아테네의 모든 권력은 민회에 있었다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민법정이 최고 권위를 행사했으며 평의회와 민회, 시민법정이 적절히 권력을 나누어 행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거가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행해진 것은 아테네 시민들이 선거란 그 본질과 속성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재산과 능력이 있는 유명 인사를 뽑게 되는 것으로 귀착되는 귀족정이라고 확고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구와 한국의 선거에서 나타나는 현상, 배우나 관료, 법조인,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 위주로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된 순서대로 인지도 높은 유명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정책 능력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엘리트 귀족정 현상을 이미 오래전 아테네 시민들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영국 시민혁명,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혁명에 강한 영향을 주었던 루소,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가들도 선거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루소는 "영국인들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용지가 함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노예다"라는 극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구에서는 근대 공화정 국가를 만들면서 인민 대표를 뽑을 때 제비뽑기가 채택되지 않고 선거가 채택되고 말았다. 이것은 당시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주체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생각했던 가치는 '인민의 동의'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인민의 동의가 없는 절대왕정과 달리 공화정은 반드시 인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관심사였다. 인민의 동의에 걸맞는 대표 선출 방식은 신의 의지나 우연이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선거였다. 여기에는 그때 공화정을 이끌던 정치가들의 대다수가 유산계급이었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영국도 그렇고 미국 독립 당시에도 노동자들은 아예 투표권도 없었다.
흔히 대의민주주의를 정당정치와 선거로 곧바로 연결시키는 사고는 매우 위험한, 민주주의를 제도와 선출 방식으로만 가두어 놓는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해서 인민대표 선출이 꼭 선거여야 하는 법은 없다. 아무리 인구수가 많다고 해도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지역으로 나누어 제비뽑기를 도입할 수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인민대표 선출 방식은 제비뽑기이다. 민주주의는 규모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현대의 서구 민주주의 정치학자들과 최장집 교수 등의 제도정치론자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학자들이 고려에 넣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에 대한 재검토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기반은 개개인의 인민들이 아니다.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성립되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시 새롭게 공동체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 재정립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60여 년의 한국 정당정치가 보여주고 있고 지난 대선과 총선이 웅변해주고 있듯 한국의 선거와 정당정치는 이미 엘리트 귀족정치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민주주의의 암세포가 되어 버렸다. 지금의 한국 선거제도와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무덤이다. 인민의 대표가 대표로 선출되는 순간 인민을 배반하는 선거 귀족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촛불집회는 한국의 선거가 민주주의가 아님을 너무나 절박하게 외치는 대안 모색의 인민 직접 행동이다. 촛불은 지금까지의 한국 민주주의가 허구임을 선언한 일종의 민주주의 선언이었다.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도, 민주주의가 손쉽게 무너지는 유리창이 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는 공동체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역과 생활 현장에서 밑바닥의 풀뿌리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은 위험사회에서 최후의 사회안전망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에너지-식량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은행에 금괴와 떼돈을 쌓아두어도 말짱 도루목이다. 위급한 시기에는 금괴와 떼돈이 곧바로 석유와 식량으로 교환되지 않고 오히려 죽음만 재촉할 수도 있다.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는 비단 위기 때만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넉넉하게 하는 일상의 필수품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인민이 주인 되는 학교로서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또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촛불정당의 출현은 그러므로 필연이다.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역의 각종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형성의 전망을 갖춘 정당이야말로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당장 현실의 선거제도와 각종 법과 제도에 얽매여 있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한꺼번에 혁신할 수는 없다. 경로의존성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현실주의의 정치, 현실주의의 민주주의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 기존 정당정치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대의민주주의와 선거라면 아마도 촛불이 지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력과 역동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촛불 민주주의란 진보의 틀에 갇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넘어선, 실체도 모호한 이른바 개혁정당을 넘어선 그 어떤 다른 정당일 것이며 그리고 당연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념과 조직과 실천의 정당이어야 마땅하다.
지금도 여전히 촛불은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지 아무도 모르지만, 촛불 집회가 한국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꾸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촛불은 비폭력이어야 하며 애써 청와대를 가려 할 것도 없다. 무기를 들려면 국가의 정규군 폭력을 능가할 수 있을 정도로 무장해야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그런 유격투쟁이나 도시게릴라 투쟁이란 시대착오이다. 경찰의 진압에 즉각 분노의 대응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의 진압에 명분만 주는 이적행위에 가깝다. 우리의 촛불 저항은 형성의 저항이며 광장의 저항이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촛불 집회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의제들을 학습하고 토론하는 광장의 문화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긴 호흡으로 지속가능한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
서울의 자동차가 언제까지 저렇게 많을 수 있을까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한 때는 단란한 한 가정을 극지의 지독한 추위와 바람, 폭풍과 눈보라로부터 지켜주던 알래스카의 현대식 가옥 한 채이다. 집은 이미 거의 45도 각도로 보일만큼 심하게 기울어 무너져 있다. 지구 온난화로 늘 얼어붙어 있던 알래스카 동토 지역의 땅이 녹으면서 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이 함몰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원주민들의 이글루나 이끼가 낀 땅을 네모나게 잘라 쌓은 전통 뗏집과 다른 이 현대식 주택에는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다.
또 한 장의 사진을 본다. 2008년 4월 식량 폭동이 일어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 시민이 입에 잔뜩 풀을 물고 완전무장한 유엔 치안 유지군에게 풀이 담긴 그릇을 내밀고 있다. 한 때 콜럼버스가 "히스파뇰라는 하나의 기적이다. 산과 언덕, 들과 초원이 모두 기름지고 아름답고 항구는 믿지 못할 만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며 찬탄했을 정도로 아이티는 먹을 것 걱정 없는 지상천국이었는데 세월이 어떻게 흘렀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당시 25만~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라워크족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착취와 학살로 말 그대로 멸종되었다. 심지어 백인들은 칼날의 예리함을 실험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원주민들의 살점을 베어 수십 명이나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구인들이 숲을 베어내고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짓자 노예로 수입된 아프리카 흑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플렌테이션이야말로 오늘날 아이티에서는 식량폭동이란 비극의 서막이었다.
이 두 사진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사진이지만 사실은 서로 쌍둥이처럼 같은 배에서 나온 두 현상의 증거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풍요의 극점에 서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조만간 이런 풍요로운 자본주의 석유 문명이 붕괴되는 것은 필연이다. 앞으로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한, 석유 문명의 풍요를 지속시키는 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는 필연이다. 두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조만간 들이닥치게 될 우리의 미래, 에너지-식량 위기의 모습이다.
이런 사진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절반으로 줄어든 북극 빙하, 순식간에 사라진 호수 등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의 증거들과 식량생산의 위기를 입증하는 사건들은 이제는 흔한 정치인들의 선거 캠페인용 소도구로 등장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그동안 석유 정점에 대한 논쟁과 그 의미에 대한 소개는 여기저기서 많이 이루어졌다. 유가가 로켓처럼 고공비행하기 시작하면서 고유가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도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 시내에는 자동차들로 넘치고 넘친다. 서울은 빌딩이고 한강다리고 길거리고 에너지 절약을 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밤마다 에너지를 무제한 쓰면서 휘황찬란하기만 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
한국은 원유수입량이 2006년 231.8만 배럴에서 2007년에는 237.1만 배럴로 오히려 1.9% 상승했다(이하 BP 통계). 1차 에너지 소비량도 2006년 2억 2720만 TOE에서 2007년 2억 3400만 TOE로 3% 늘었다. 물론 중국과 인도가 각각 7.7%, 6.8% 늘어난 데 견주면 낮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일본이 0.9% 줄어든 것과 비교해야 하는 OECD 국가 처지이다.
2008년 독일의 1차 에너지 소비는 2007년에 5.6% 감소했다. 이것은 덴마크와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하고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석유 소비는 9.0% 줄었다. 독일은 1998년 석유 소비가 정점에 오른 이후 2000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줄었고 2007년 소비량은 1998년에 비하면 17.9%나 줄었다. 가스는 9.4% 줄었고, 원자력 발전은 16.1% 줄었다. 이미 독일 전기 생산량 가운데 14.2%가 재생 가능 에너지이다.
독일이 이렇게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는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독일 사회와 시민들이 에너지 위기를 확실히 인식한 토대 위에서 탈석유의 에너지전환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독일 시민들의 대중교통과 고속철 이용이다. 독일 시민들은 고효율 자동차를 타고, 아우토반에서 좀 더 천천히 달린다. 더구나 역설이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에 겨울에 난방비도 좀 덜 들었다. 무엇보다도 전력 의무매입 제도 등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정부 지원책의 영향으로 재생에너지가 대폭 확대 보급된 것이 에너지와 석유 소비량의 감소로 이어졌다.
한국이 독일보다 잘 사는 나라일까. 지금 이명박 정부는 독일과는 정반대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애초 공청회를 강행하려다 에너지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강력한 이의제기로 발표회로 바뀐 자리에서 지식경제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연구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이 초안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가를 100달러로 상정하고 있고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매년 1.7% 증가하는 것 등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이다.
기본 계획의 주요 핵심은 세 가지다. 원자력 발전의 대폭 확대(2006년 15.9%에서 2030년 26.0%로). 자주 개발 확대, 발전 차액 지원 제도 중단과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 사업 한전 독점화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시대착오의 계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지난 6월에 발표한 국무총리실 기후변화대책기획단의 기후변화 대응 종합기본계획(안)은 거창하게 '저탄소 녹색한국(Low Carbon, Green Korea)'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산화탄소 감소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산업분야 감축 대책을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고 하질 않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서 기후친화 산업의 육성과 연구개발을 지원한다고 하질 않나 도무지 현실성 있는 감축 계획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기후 변화를 내세워 원자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른바 기업-관료-전문가 부패 동맹, 핵-화석연료 기득권층의 추악한 단기 돈벌이 동맹만이 벌거벗은 채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지금 석유생산정점은 코앞에 와 있거나 이미 진행 중이다. 이미 전 세계 1일 원유생산량은 2007년 8153.3만 배럴로 2006년 8165.9만 배럴에 견주어 0.2% 감소되었다. 물론 이것은 BP의 통계이며 산유국의 생산량은 수십 년 동안 철저하게 비밀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석유생산정점이 도래했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그럼에도 특히 사우디의 생산량이 2005년 1111.4만 배럴을 정점으로 2006년 1085.3만 배럴, 2007년 1041.3배럴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중동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대다수 산유국들이 이미 석유생산정점을 지났다. 그만큼 사우디 석유 생산의 감소가 주는 의미는 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올 들어서만 두 차례나 사우디 국왕에게 증산을 공식 요구했음에도 사우디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었다. 시시때때로 사우디는 얼마든지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고 호언하지만 이제 이를 믿는 석유 전문가들이나 투기 자본가들은 거의 없다. 공급량이 충분하다면 투기자본들이 도대체 왜 석유에 투기를 하겠는가.
전 세계 에너지의 절반은 산업, 4분의 1이 수송, 4분의 1이 가정상업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해서 최종에너지 소비량 1억 7358.4만 TOE 가운데 산업 분야에서 9723.5만 TOE(56%), 가정상업 3598.6만 TOE(21%), 수송 3652.7만 TOE(21%), 공공 기타 3836만 TOE(2%)를 쓰고 있다. 석유환산톤(TOE, ton of oil equivalent)은 다른 종류의 에너지원들을 원유 1톤의 칼로리를 기준으로 표준화한 단위이다. 1TOE는 일반승용차(연비 12㎞/ℓ)가 서울-부산을 16번 왕복할 수 있는 휘발유량이며, 일반가정(200㎾h/월)에서 약 1년 8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1㎾h는 맨손으로 땅에 있는 경승용차를 에펠탑 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기 소비량은 2007년 7607㎾h로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 한 사람이 하루에 에펠탑 꼭대기에서 평균 21번씩이나 경승용차를 들어 올리는 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초슈퍼맨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슈퍼맨 생활은 절대로 지속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석유는 교통에 50%, 개별난방과 중앙난방에 25%, 전력생산에 10%, 석유화학에 8%, 농업에 3%, 기타 4%로 사용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석유생산정점 이후 가장 충격을 받을 분야는 교통 수송 분야이다. 이제 값싼 비행기 관광산업은 종말을 고할 순간에 와 있다. 이제 탈자동차 사회를 기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택과 건물의 냉난방 에너지 소비도 거의 혁명 수준으로 줄이지 않을 수 없다. '패시브 하우스' 개념의 단열 주택으로 신축하거나 보강하는 작업을 시민들 스스로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석유가 투입되는 석유 농업, 공장식 석유 축산업은 점차 불가능해진다. 지금과 같은 음식물의 무차별한 장거리 이동 또한 중단되거나 대폭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석유공급이 끊기고 나서 북한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지금까지 북한이 어떻게 힘든 세월을 견뎌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아사 사태는 남의 일이 전혀 아니다. 남한도 언제 어떻게 북한과 같은 식량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 북한의 식량 자급률이 60%대임에 견주어 한국은 25% 수준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민의 대표가 인민을 배반하고 반민주주의를 향해 돌진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체험하고 있다. 촛불은 그런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새로운 공동체 형성과 직접민주주의의 형성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문화혁명이다. 촛불이 제기하는 광우병 쇠고기 없는 세상이란 곧바로 닥치게 될 에너지-식량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탈석유 사회의 기획에 다름 아니다. 국가가 오히려 탈석유 사회의 걸림돌로 버티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촛불이 자동차 없는 민주주의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한 몫을 해야 된다고 운동화 끈을 질끈 졸라매면서 원천 봉쇄된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글은 최근 발행된 <녹색평론> 2008년 7~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필자와 녹색평론사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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