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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대에 영화보기란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이 글은 무비위크 최근호에 실린 글임 - 편집자)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다. 이게 바로 진정한 다양성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다. 전혀 상반된, 예전같으면 지금이 이럴 때냐며, 전혀 이질적으로 대했을 사람들이 이제는 한몸이다. 얼마 전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칸영화제 관련 기사를 쓰고 있을 때였던 것같다. 그 때가 서울 시청앞과 광화문 일대에서는 서서히 촛불집회의 열기가 상승하던 시기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집회가 꼭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영화 축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보통 나같은 오랜 문화관련 프리랜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에디터와 그런 얘기를 주고받기 십상이다. "아, 이런 판국에 문화기사가 먹히겠어? 누가 읽기나 하겠냐고? 무슨 기사 있냐고? 아 설경구가 영화 <강철중> 끝내자마자 13Kg이나 뺏대! 뭐라고? 한가한 소리 작작 하라구? 아 왜 승질은 부리고 지랄이여! 알았다니까. 당분간 휴업한다니까!" 그리고 정말 원고쓰는 일을 중단하고 며칠간 문을 걸어 잠근다. 대못질 꽝꽝. 시국 관계로 며칠간 휴업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그렇지가 않다. 이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이 동시에 여러 일들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촛불집회 와중에도 서울 잠실 운동장 어디에선가 벌어진 조용필 데뷔40주년 기념 콘서트 같은 곳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뉴스를 보다 보니까 거기서 사람들이 흔드는 형광막대와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아버지 엄마 아들 손자 갓난아이할 것 없이 들고 다니는 촛불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무슨 주책스러운 착시 현상일까. 나라 안이 이꼴인데, 잠실이니 프랑스 남불의 해변가니 거 너무 유유자적하는 거 아냐,하는 시선이 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추격자>가 큰 호응을 얻었다라든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기립박수를 받았다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 정말로 큰 격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화다양성이 높아졌다는 증거이자 우리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임 낫 데어
얼마 전 주말에 가 본 광화문 시네큐브도 마찬가지였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를 보러 갔는데, 함께 간 친구가 약간 걱정어린 표정으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오늘, 시내 들어가도 돼?" 그런데 천만에. 시네큐브는 그날 한마디로 '박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아 언제 이렇게 우리나라에 토드 헤인즈 팬이 많아졌다고. 아니 밥 딜런 팬이 많아졌다고. 관객들 가운데는 나 같은 중년들도 꽤나 눈에 많이 띄었다. 친구가 얘기했다. "여기 근방에서 곧 촛불집회하지 않아?"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80년대 초반 늘 치도곤 당하고 사느라 여전히 이상한 강박증에 싸여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달리, 그러한 주변상황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식인 것 같았다. '일단 영화를 보는 거야. 야, 토드 헤인즈가 정말 걸작 만들었구나. 밥 딜런의 저 자유의지는 정말 대단해. 자유! 그거 좋은 거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게 다 민주주의야. 그럼 영화 다보고 촛불 좀 들다 집에 갈까나?' 참으로 한심하고 불쌍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만, 나라를 '통치한다'는 인간들만 모른다는 것이다. 거 참 무식한 아날로그들 같으니라구. 이러니 나라가 자꾸 모로만 흘러가는 것이다. 요즘 부쩍 소통, 소통하는 단어들이 들린다. 소통. 그거 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 주말에 한번씩 극장에 나오는 것이다. 공연장에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한번 나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입 꼭 다물고 아무 말 안하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소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근데 젠장할. 요즘 하도 물가가 올라서 극장이나 공연장 같은 데를 갈려고 해도 마음이 좀 쓰이는 건 사실이다. 어쩌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됐을까. 그래도 아직은 영화가 제일 싸다. 영화들 열심히 보시기들 바란다. 특히, 정치하시는 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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