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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날, 백번을 돌아가도 답은 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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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날, 백번을 돌아가도 답은 한가지"

<시사저널> 사태, 기자 전원 사표 제출로 막 내려

"싸움에 지쳤을 때, 1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리곤 했습니다. 오늘이 만약 금창태 사장이 인쇄소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한 다음날이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했을까? 100번을 생각해봐도 대답은 같았습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한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장이 삼성 고위층과의 친분을 들어 기사를 무단으로 삭제하는 언론사, 그 곳은 지난 18년 동안 시사저널이 걸어온 길이 아닙니다. 우리 파업 기자들이 자부심처럼 여겨온 독립언론 <시사저널>의 정신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일입니다."

지난해 6월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사건 이후 1년을 끌어오던 <시사저널> 사태가 26일 기자 22명 전원의 '결별 선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간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이 일방적으로 기사를 삭제한 것에 항의하며 편집권 독립 장치 마련을 요구해왔으며 지난 1월부터 파업을 벌였다.

시사저널 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청양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5일 총회를 통해 파업 기자 전원이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복귀하지 않기로 결의를 모았다"고 밝혔다.

'독립언론' 시사저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뜻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나온 기자들은 기자회견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사저널 기자들과 독자들이 편집국 앞에 걸려있던 현판 앞에 흰 국화를 헌화하는 퍼포먼스로 끝이 났다.

"고목에 꽃이 피길 기대하는 투쟁 멈추겠다"
▲ 26일 '결별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사저널> 기자들. 검은 옷을 입은 기자들은 기자회견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카메라를 외면했다. ⓒ프레시안

지난 18일부터 서울 북아현동 심상기 서울문화사 회장 자택 앞에서 8일간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던 정희상 노조위원장은 "기자들이 밥그릇까지 내던지면서 지키고자 했던 <시사저널>의 정신을 회사는 끝끝내 외면했다"며 "징계, 고소, 파업 등 지난 1년간 사측으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왔던 기자들은 이제 복귀를 포기하고 편집권을 지키는 새길을 가기로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고목에 꽃이 피길 기대하는 미련한 투쟁을 멈출 것"이라며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편집인과 기자에게 복종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경영진, 언론을 공산품으로 여겨 언제든지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주가 독립언론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편집권은 편집인의 사유물이 아니며, 기자에게는 복종보다는 불의를 고발할 줄 아는 정신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년8개월 동안 월급 못 받을 때도 지켰던 이름을 떼어내려니…"
▲ 흰 국화가 놓인 '시사저널 편집국' 현판 ⓒ프레시안

또 단식 농성 기간 중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릴레이 편지'를 보냈던 기자들은 이날 마지막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서 기자들은 "창간 때부터 일했던 <시사저널> 최고참 기자는 이 회사에서 18년 동안 일했고 막내 기자는 7년 동안 일했다"며 "짧게는 7년, 길게는 18년 동안 우리 이름 뒤에 붙어 있던 '시사저널 기자'라는 이름을 떼어내려니 회한이 절절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서 1년8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았을 때도 지켰던 이름인데, 삼성 관련 기사를 경영진이 무단으로 삭제한 사건이 발단이 돼 전원 사표를 제출한다니 억울하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 기자가 생활비 때문에 집에 있는 에어컨을 떼다 팔았다고 했을 때, 백발이 성성한 50대 선배가 누이들에게 생활비를 보조받는 날이면 아내의 신경이 예민해진다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을 때, 우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하늘만 쳐다봤다"며 "그래도 우리는 밥벌이 앞에서 신념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길 가는 기자들 지켜봐달라"

현재 새 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시사저널 기자들은 오는 7월 2일 이와 관련해 첫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정희상 위원장은 "어떤 이들은 우리의 결정을 '파국이다', '기자들이 패배했다'고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며 "명분과 도덕성 면에서는 이미 이긴 싸움이었고 이제 새로운 희망의 길을 가는 우리는 의기충전해 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김은남 기자는 "매체를 버리는 기자가 어디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현명한 독자들은 양해해주리라 믿는다"며 편집권 독립을 위한 앞으로의 활동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했다.
정치권 "거대 자본 맞선 투쟁, 높게 평가한다"

한편 이날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논평을 내고 "<시사저널> 사태는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으로부터 언론이 독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며 "복직이라는 승리를 이루지 못해 안타깝지만 독립언론의 길을 가기 위해 대 삼성 자본에 맞선 투쟁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 역시 논평을 통해 "시사저널 기자들이 기필코 '펜은 돈과 권력보다 강하고, 정의는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입증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며 "자본과 권력에 저항할 새로운 무기 제작에 기꺼이 동참할 것을 약속한다"며 새 매체 창간을 격려했다.

또한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이례적으로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논평을 했다. 천 대변인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등 논란이 많은데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자본에서 자유로운 언론의 꿈이 접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기억되고 교훈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1월 기자들이 파업을 시작하며 사태가 불거지던 당시 청와대 측은 "개별 언론사 일에 논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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