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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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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자의 눈]손학규식 '중도'와 '비노비한'은 허상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탈당과 관련해 구(舊)여권의 전략통인 이강래 의원은 "한나라당은 영남지역주의와 보수주의라는 두 축 위에 서 있는데, 손 전 지사는 그 두 축 가운데 하나 위에도 서 있지 못해 한나라당 후보가 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손 전 지사의 탈당 배경을 둘러싸고 나온 정치권의 무수한 말들 중에 가장 냉정한 분석이다.

이 말을 뒤집어 적용하면 손 전 지사는 호남지역주의와 개혁이라는 두 축 위에 선 구여권의 후보가 되기도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정동영, 천정배 등 호남의 적통들이 즐비한 구여권에서 경기도 출신의 손 전 지사는 굴러온 돌일 뿐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최대 강점인 '충청도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해 온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옷을 벗었다고 갑자기 개혁의 전도사로 표변하기도 민망한 일이다.

한나라당과 구여권이 우리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 손 전 지사의 가장 큰 한계는 어느 쪽에서도 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손 전 지사가 실제로 지향하느냐와 무관하게 '중도'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출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중도는 함정이 많다. 실체도 불분명하다. 그저 자신을 중도라고 평가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지면 정치인들도 너나없이 중도를 따라 외쳤다. 중도니 민생이니 하는 방패는 자신의 처지가 남루할 때 나오는 구호이거나 한 쪽에서 요지부동의 기득권을 확보한 세력이 기반을 더 넓히기 위해 사용하는 레토릭이기 일쑤다. 구여권에서 나오는 중도론이 전자라면, 후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가 스스로 중도라고 평가하는 게 예가 될 수 있다.
▲ ⓒ연합뉴스

손 전 지사는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다. 올해 초 그는 대구를 방문해 한 지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를 중도개혁 세력의 대표 정치인으로 보는데 잘못됐다. 한나라당은 보수를 표방한다. 하지만 개혁이 없는 보수는 후퇴한다.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손학규가 가치 있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닌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사람이 아니다.(1월19일 매일신문)"

'중도'에 대한 손 전 지사의 고민이 적어도 탈당 전까지는 숙성되지 않았었다는 증거다. 별다른 고민 없이 '중도의 길'을 가르쳐달라고 한 손 전 지사에게 김지하 시인이 "중도의 약점은 기회주의로 보일 수 있다"고 충고한 건 매우 적절해 보인다.

신기루 쫓는 손학규

요즘 쓰이는 '중도'의 정치적 용어는 '비노비한(非노무현-非한나라당)'이다. 손 전 지사는 이 공간을 노린다. 그런데 비노비한도 사실 여의도 정치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정치권이 비노비한의 공간에 본격적으로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당선된 지난해 7.26 재보선이었다. 5.31 지방선거에서 처참하게 죽을 쑨 구여권은 '비노비한'을 내건 조 의원의 당선을 예사롭지 않게 봤다. 적절한 인물을 내세우자 불과 두 달 전에 그리도 혹독한 심판을 했던 호남 유권자들이 순식간에 재결집하는 현장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고건 전 총리에게 눈이 쏠렸다. 노무현식 개혁노선과 대비되는 중도노선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갈 곳 없는 여권 인사들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가 대권도전 포기를 선언하기 직전까지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선 고건 신당에 합류할 사람이 줄잡아 40~50명은 된다는 말이 파다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한마디에 고 전 총리가 무너졌다. 고 전 총리의 한 측근이 고 전 총리가 대권도전을 포기하게 된 이유를 후일담 삼아 최근 털어놨다. 그 중 하나는 노 대통령 한 마디에 지지율이 확 빠져버리더라는 것이었다.

독자적인 줄 알았던 자신의 지지기반이 여론조사 수치에서 보이지 않던 노 대통령의 지지기반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간파하고 대권 포기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구여권에게 '비한'은 쉽게 성립될지언정 '비노'는 애당초부터 사상누각이기 십상이라는 교훈이 숨어 있다.

여하튼 고건 전 총리가 무너진 뒤 '비노비한'은 다시 무주공산이 됐다. 구여권의 거의 다수는 이 공간에서 새집을 짓자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정운찬 전 총장도 유력한 기대주로 성장했다. 손 전 지사에게 비노비한이란 경쟁자들이 이미 즐비한 좁은 공간인 셈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그를 '제2의 고건'으로 주저앉힐 태세다. 만약 손 전 지사가 구여권 지지층의 도움을 얻어 대권을 넘보려 한다면 고 전 총리의 전철에 비춰 '비노'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영역 속에 자신이 둥지를 틀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는지를 찬찬히 뜯어봐야 할 것 같다. 노 대통령의 "보따리장수" 발언이 오히려 그를 비노비한의 영역으로 진입하도록 활로를 열어준 것처럼 반색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권자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겠다. 그의 탈당에 대해 호남권에서 상대적으로 호응이 높은 대목이 반한나라당층의 결집의 징후일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그에게 대권주자의 지위를 내줄 것처럼 해석돼선 곤란하다.

'새로운 손학규'는 가능할까?

이렇게 볼 때 '비한'의 공간에서 '비노'로 뭉뚱그려지는 유권자들은 속성은 사실 '극노(克盧)'의 대권주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은 싫지만 노무현을 넘어서서 그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살게 해 줄만한 리더를 눈여겨 고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손 전 지사는 가장 선명한 한미FTA 찬성론자라는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와 성장우선주의의 궤도를 탄 사람이다. 이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은 이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흡수해 갔다. 그렇다고 한나라당과 다른 방법으로 극노를 실현할 수단을 그가 지금 손에 쥐고 있지도 않다.

그렇게 손학규식 중도와 비노비한은 설 자리가 없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 온 행로와 축적해 온 정치적 자산으로 미루어 볼 때,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여의도는 물론이고 시베리아와 툰드라에도 이런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세력이 없고 돈이 없고, 게다가 탈당의 멍에까지 지고 있는 외적인 조건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손학규 그 자신이 만들어 온 본인의 한계다. 그는 과연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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