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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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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신영복 교수 〈프레시안〉창간 5주년 기념 특별 강연

"진지한 소통은 사라지고,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과 대립만 남아 있는 곳." 한국 사회에 대한 이런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많다. 그렇다면 해법은? 쉽지 않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한데 모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널리 지혜를 구하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은 언론의 대표적인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레시안〉 역시 이런 반성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애써 온 〈프레시안〉은 창간 5주년을 맞아 지난 21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강연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신 교수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하려면 우리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성찰은 당장의 밥벌이와 무관한 인문학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신 교수는 속도와 효율만을 숭상하도록 우리를 길들여 온 근대화의 과정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짚어 볼 것을 주문했다. 모든 것을 화폐 가치로 단일화시킨 상품 사회가 근대화의 토대가 됐다고 지적한 신 교수는 목표의 달성만을 강조하는 '도로의 논리'를 넘어서는 '길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근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자기 존재를 배타적으로 강요하는 '존재론'의 패러다임이라며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관계론'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관계론의 철학이란 개인을 사회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닌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론의 철학은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면면히 살아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시각이다.

신 교수는 또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우직한 실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태도는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세상은 이런 우직한 이들의 발걸음에 의해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이런 우직한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취할 때 언론은 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직한 이들, 그리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세상을 가장 깊고 넓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신 교수는 우리 사회가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려면 강물의 움직임에서 배움을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 결국 바다에 닿는 강물처럼 낮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하방연대'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하방연대'의 길에 언론이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

이날 강연은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이 뿜어내는 열기로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지난 21일 한국일보 본관 12층 강당에서 진행된 신 교수의 강연 내용 전문이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프레시안

강연 요약문 보기

〈프레시안〉창간 5주년을 축하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과 많이 다른 환경이었는데, 그렇게 어렵게 시작해서 5년 동안 고생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소개할 수 있는 매체가 됐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는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입니다. 이것은 창간 5주년을 맞는 〈프레시안〉에 대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신뢰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프레시안〉이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계속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나이든 사회, 그래서 고집이 세다

사실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듯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은 굉장히 답답합니다. 누가 이야기를 해도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다룬 쟁점들을 되짚어 볼까요. 소위 전시 작전통제권, 한미 FTA 문제부터 심지어 헌재 소장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서로 합의해내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립과 갈등만 있을 뿐,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다면 저도 참 답답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속 시원한 방도가 없어요.

사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느끼게 된 것이 "나이 드신 분들은 굉장히 고집이 세다. 그리고 그 고집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삶의 결론이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쌓아 온 역사의 결론이라는 것이죠.

한국 사회를 가리켜 흔히 젊은 사회라고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나이 많은 사회예요. 지난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아 온 사회거든요. 켜켜히 쌓인 세월의 무게를 지고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지요. 이렇게 나이 많은 사회라서 우리 사회는 무척 고집이 셉니다. 우리 사회가 처한 대립과 갈등의 문제를 풀어 가려면 이런 전제, 즉 "우리 사회는 무척 고집이 센 사회다"라는 것을 먼저 수긍하는 태도가 우선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등 우리 사회에서 아주 열띤 담론을 이끌어 가시는 분들이 참여하는 토론이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는 앞으로의 토론에서 다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저는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내용에 국한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조금은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해관계만 놓고 대립하는 사회에서 인문학은 설 곳이 없다

제가 나눠 드린 유인물을 볼까요. 첫 번째 장의 제목이 '인문학과 소통의 장(場)'이죠. 며칠 전 고려대 교수 70여 명이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어제(9월 20일)는 민교협에서도 지지 성명을 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래도 좋은가?" "인문학이 이토록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이 지속가능할까?"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려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지요. 앞서 이야기한 교수들의 성명은 이런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인문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는 우리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물음을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최근 인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사실 인문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며 그렇지 않은 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그저 비싼 음식을 내놓기만 하면 대접을 잘 한 것이라는 생각, 일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로 오르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생각, 이런 생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물질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잊고 있는 사회거든요. 그리고 이런 사회를 뛰어넘게 해 주는 게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가난한 이에게 인문학은 사치? 천만에!
▲ ⓒ프레시안

인문학의 의미와 역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꼭 소개하고 싶은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저희 학교(성공회 대학교)에서도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요. 클레멘트 인문학 강좌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얼 쇼리스라는 분이 처음 시작한 것이지요.

이 분이 뉴욕 형무소의 재소자들을 오랫동안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각종 마약, 폭력 사범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종의 워크숍 같은 행사에서였지요.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 이 분이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20살이 채 안 된 여성 재소자와의 인터뷰에서였어요. 그 재소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왜 우리들은 연극이나 음악회, 오페라와 같은 예술적 경험을 할 기회가 없는 거죠"라고요.

흔히 가난한 사람들 혹은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의 경제적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인문학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사치라고 여기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당장 돈이 되는 내용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게 오히려 협소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얼 쇼리스는 빈민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강좌는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당장 돈이 되는 내용이 전혀 아님에도 말이지요.

인문학이라는 게 물론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과 갈등, 소통이 이루어지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탕이 성숙하지 않은 사회는 이해관계만을 놓고 다투는 사회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앞서 이야기한 클레멘트 강좌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인문학, 사회적 소통의 전제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학교 공부는 보통 '문,사,철(文,史,哲)'을 중심에 둔 것이었습니다. 당장의 경제적인 쓸모는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문학과 역사, 철학이 보다 완전한 인간을 기르기 위한 이상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게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대신 돈이 되는 공부, 잘 팔리는 학문이 대학을 차지하게 됐죠.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의 대립, 갈등, 소통의 단절을 낳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좀 생소한 말일지 모르지만 인문주의자를 영어로 휴머니스트라고 합니다. 휴머니스트가 없는 사회. 참 삭막한 사회지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회를 흔히 인문학의 본고장이라고 합니다. 아테네는 플라톤이 주장한 것과 같은 필로소퍼 킹(Philosopher King), 즉 철인 군주를 갖지는 못 했죠. 하지만 필로소퍼 시티(Philosopher City), 즉 철인 도시를 세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이런 배경에서 피어난 것이지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대립과 갈등을 넘어 소통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통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어야 하죠. 그게 바로 인문학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지(知), 즉 안다는 게 무엇이냐?"라고요. 그랬더니 제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인(知人), 즉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고요. 요컨대 앎이란 바로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가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참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또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애완견에 대해, 또 어떤 친구들은 주식이나 아파트에 대해 전문가가 따로 없을 정도로 잘 알 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정보와 지식이 정작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데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이고요.

빌딩과 다리가 아닌 한 소녀의 모습을 통해 그린 서울의 얼굴

제 경험 하나를 이야기할 게요. 제가 교도소에 참 오래 있었잖아요.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강에 제2한강교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지하철도 뚫리고, 63빌딩도 세워지고, 제3한강교도 놓였지요. '제3한강교'라는 노래도 제가 수감생활을 하던 시절에 나왔어요. 그 시절에는 감방에 신입이 들어오면 감옥에 와 있는 사이 변한 서울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한 일과였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서울의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방에 있던 젊은 친구 하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서울의 발전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꼭 핀잔을 주곤 했어요. 서울에 새로 생긴 건물에 대해 설명하면서 "얼마나 높은지 아냐"라고 말하면 "임마 그게 네 거냐. 쳐다보면 고개만 아프지"라고 대꾸하는 식이지요.

그 젊은 친구는 서울역에서 13살 먹은 누이동생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동생을 10년 뒤에 만났어요. 어디에서냐 하면 서울의 어느 사창가에서요. 처음에는 이 친구가 동생을 못 알아 봤대요. 그런데 동생이 먼저 오빠를 발견하고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그제서야 쫒아갔지만 결국 동생을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서울을 증오해요. 서울은 그에게 순진한 13살 소녀를 창녀로 만든 곳이었던 것이지요. 그 친구에게 만약 '서울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과연 어떤 모습을 그릴까요. 순진한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낯선 창녀의 모습이 아닐까요.

개인적 비극 때문에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울에 대한 그 친구의 생각이 매우 인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 대해 빌딩의 높이나 교량의 숫자로 판단하는 이들과 달리 그 사회의 오갈 데 없는 한 소녀가 10년 뒤 어떻게 성장했느냐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인문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문학적 사고가 설 자리가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화폐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는 가치입니다.

화폐 가치가 전면화되면 인간의 정체성도 사라져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두 번째 주제는 "화폐 가치의 전면화"입니다. 상품사회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사라집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설 자리를 잃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이야기지요. 그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단 하나의 가치, 즉 화폐 가치로 단일화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쌀 한 가마가 구두 한 켤레와 같다." 이건 말이 안 되죠. 왜냐고요? 당연하지요. 밥을 짓는 쌀과 발에 신는 구두는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상품이 되면 달라집니다.

쌀이 상품이 되는 경우, 그냥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파는 상품이 됩니다. 그런데 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치 형태로 표현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등가물이 무엇이냐를 따지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구두라는 등가물, 즉 가치가 같은 물건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쌀은 쌀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집니다. 쌀이 구두로서 표현되면 말이 안 되잖아요. 구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시장에 나오는 순간 쌀은 밥과 관계없고, 구두는 발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상품의 가치표현 형식입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사람 한 명이 구두 한 켤레와 가치가 같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굉장히 기분 나쁘겠지요. 그런데 만약 구두 한 켤레가 아니고 연봉 1억의 가치가 있다고 하면 대개는 기분 나빠하지 않겠지요. 이게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사람 역시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의 등가물이 무엇인지를 판가름하는 가치가 화폐 단위로 환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순간 화폐단위로 가늠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은 사라지는 것이지요. 또 사람을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예는 어떻습니까. 남편이 아주 뛰어난 변호사인데 그 부인은 매우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반응들이 나와요. "아 부인의 친정이 잘 사나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천박해졌을까요.

모든 노동에 대해 "얼마짜리"인지 묻는 사회
▲ 신영복 교수.ⓒ프레시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됩니다. '출산'을 예로 들어봅시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 이게 과연 상품이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람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출산' 행위를 상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산모는 '환자'로 규정되어 산부인과 병원에 보내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사의 손을 거쳐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우리 사회는 어느새 노인을 '환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노인은 오랜 경륜을 갖고 삶을 마무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각종 서비스 상품의 소비자가 돼 버립니다.

얼마 전에 앨빈 토플러가 새 책을 냈습니다. 거기서 '프로슈머'라는 개념을 제시했지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책을 읽다 인상적인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비(非)시장적 영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시장은 비시장적인 부분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앞서 '출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병원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요. 병원에서 병을 치료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꼭 그런 게 아니지요. 의사에게 처방을 받는 것만으로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장 외부의 노력, 그러니까 약을 잘 챙겨 먹는 것부터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치료를 위한 자신의 의지가 병을 낫게 하는 데에 70~80%의 역할을 차지하지요. 그런데 시장 중심의 사회는 이런 영역을 무시합니다.

토플러의 책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2002년 한해 동안 미국의 현금 지급기에서 입출금한 횟수가 120억 번이라고 합니다. 한번에 2분씩 걸린다고 치면 280억 분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죠. 미국인들이 총 280억 분의 노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동은 시장의 바깥에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노동이 없었다면 현급 지급기를 통해 작동하는 시장은 굴러가지 않았겠지요. 결국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도 시장 바깥의 영역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시장 바깥에 있는 노동에 대해서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요.

이런 사회에서는 화폐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지식이나 기술, 노동은 가치가 없는 게 돼 버립니다. 이렇게 모든 게 화폐 가치로만 환산돼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질은 사라지고 양만 남습니다. "이게 얼마짜리냐"라는 기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 자신, 그리고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많은 것들은 대개 이렇게 "얼마 짜리"라는 기준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애정', '우정' 이런 것들을 어떻게 화폐 단위의 시장적 가치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사고 팔수 없는 것들, 시장적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은 어느새 주변으로 밀려나버리곤 합니다.

계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치만이 존중받고, 그 외의 것들은 도무지 배려받지 못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대립과 갈등은 상당 부분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경영학과에 다니다 경제학과로 전과한 분이 있습니다. 왜 전과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경영학 수업 첫 시간에 '부채도 자산'이라는 말을 하더라. 그런 말을 들으니 '아니 이런 도둑놈 심보가 어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만 뒀다"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경제학과를 나왔는데 제 경우에는 경제학 수업 첫 시간에 들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게 경제학의 원칙이다"라는 말이 두고두고 고민을 안겨 줬습니다. 그것도 꼭 도둑놈 심보 같았거든요. 남들 보다 일은 덜 하고 더 많이 챙기겠다는 것이잖아요. (웃음)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라 정말이지 이런 생각이 일반화되면 사회가 굉장히 천박해집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적 존재가 위협을 받기도 하고요. 상품 생산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인간 자체가 부정돼 버리거든요.

실업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상품을 만들지 못 하거나 상품으로 거래될 수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 못 받는 사회. 이런 사회는 결코 인간적인 곳이 아니지요.

▲ ⓒ프레시안

'도로의 논리'와 '길의 철학'


제가 지금 이야기한 것들은 어쩌면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라는 오늘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화와 정서처럼 화폐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을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크게 보면 그런 것들이 진정한 소통을 위한 바탕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것들은 화폐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만이 목표가 된 사회, 혹은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도 좋다는 사회에서는 종종 외면되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세 번째 주제는 목표와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부릅니다. 또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의 달성으로 모든 수단이 합리화되는 사회에서는 '게임의 룰'이 사라집니다. 그런 게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옛날 시골에서는 누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가 다 드러났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수단을 통해서건 '돈 벌이'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은 통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도시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 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곳이거든요. 얼마나 빨리 목표에 다가가느냐, 즉 속도와 효율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든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 즉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논리를 '도로의 논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는 철학을 '길의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도로의 논리'에 의해 빚어졌습니다. 이제 그것을 대체하는 '길의 철학'이 필요한 때가 됐습니다.

'도로의 논리'의 대표적인 사례가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쿠테타를 해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니. 말도 안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상한 논리를 오랫동안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 기득권 집단의 논리이기도 했지요. 어떤 방법으로건 기득권을 손에 넣기만 하면 모든 게 정당화된다는 것이죠.

일단 이기고 보자는 '도로의 논리' 속에서 소통은 요원해져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사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거든요. 그런데 장난도 많이 쳐서 선생님께 벌을 참 많이 섰어요. 지금도 초등학교 가서 보니까 복도가 제일 먼저 눈에 띄더라고요. 거기서 의자를 들고 벌을 섰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의자를 들고 벌을 서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게 우리 사회를 아주 전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의자를 만들 때는 그것을 깔고 앉기 위해 만든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위에 앉아야 할 것을 오히려 머리 위에 들고 있어요. 아주 거꾸로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다 합의해서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요.

"일단 성장하고 나중에 분배하면 되지 않느냐." "과정이 비합리적이더라도 좀 참자. 그래서 나중에 분배해 주면 될 것 아니냐." 이런 주장이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어요.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라도 일단 이기고 보자는 논리. 이런 논리가 판을 치면 대립과 갈등을 넘어선 진정한 소통은 아주 요원한 이야기가 되지요.

제가 초등학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자꾸 괴롭힘을 당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괴롭힘 당하던 친구를 계속 격려해서 괴롭히는 친구와 한판 싸우기로 했어요. 저와 괴롭힘 당하던 친구가 한편이 되고 괴롭히던 친구와 또 다른 친구가 다른 편이 돼서 방과 후에 학교 뒤편에 있는 강가에 가서 대판 치고 받고 싸웠어요. 하지만 저와 제 친구의 코피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졌지요. 이긴 친구들은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갔고요. 정말 괘씸하더라고요. 그때 강가에 앉아 코피를 씻으며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놈이 이기는 경우도 있구나." 30년 뒤 감옥에 있을 때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기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구나. 한 쪽에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쪽에 어린 시절 강가에서 코피를 씻던 나처럼 좌절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은 매사를 '도로의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도로는 고속도로가 좋은 것이지요. 또 짧을수록 좋습니다. 최대한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소통을 배제하는 근대성, 이제 반성할 때

하지만 '길의 철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 위를 걷는 것 자체가 삶이거든요. 우리 삶을 무시하면서 목적을 이루려 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삶을 희생하여 추구하는 목적이란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진정한 목적과 수단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겠지요. 마치 사람이 깔고 앉기 위해 만든 의자를 머리 위에 들고 있는 모습처럼요.

도로의 논리. 그러니까 과정은 무시한 채 속도와 효율만을 숭상하는 논리.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다름 아닙니다. 자본은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더 많은 이윤을 얻습니다. 또 자본은 그 속성상 적게 투자해서 많이 벌어 들이는 것, 즉 높은 효율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자본의 논리가 내면화 되면서 우리는 속도, 효율에 대해 거의 광신적으로 몰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바로 근대 사회의 속성이자 구성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근대라는 게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이니까요.

결국 속도와 효율만을 숭상하는 도로의 논리를 넘어서 과정 그 자체를 존중하는 '길의 철학'을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근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네 번째 주제는 '근대성에 대한 반성'입니다.

근대 사회는 자본의 원리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증식을 거듭해야 하는 자본의 원리는 속도와 효율의 논리를 사회화한 것이거든요. 이런 문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가 정말 진보된 사회다" 혹은 "사회의 근대화는 진보의 과정이었다"라는 이야기는 이제 다시 검토해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59학번입니다. 저희 세대는 '근대화'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세대였습니다. 아마 요즘 젊은 학생들은 하지 않는 고민일 것입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4.19를 겪었습니다. 3학년 때 5·16을 겪었지요. 당시는 1960년대 초였는데, 우리 것을 완벽히 버리고 미국과 유럽의 것을 경쟁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시대적 분위기였습니다. 그것을 근대화라고 여겼고, 이런 근대 기획이 국정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를 잡았지요. 물론 이런 근대 기획은 일제 식민지 때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근대 기획에 대해 이제 반성할 때가 됐습니다. 앞서 인문학의 위기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사실 이런 것들이 바로 근대의 결과물입니다.

근대화는 우리 현대사의 국가적 기획이었으며 당연히 근대성의 존재론 논리가 대화와 소통의 문화를 배제해 왔습니다.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의 전환이 진정한 소통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는 관계론 원리를 기조로 하는 인문학적이고 공동체적인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오늘 이야기의 다섯 번째 주제입니다.

근대가 어떤 역사였는지,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등을 살펴보면 근대사의 핵심 내용에 대해 알게 됩니다. 강자가 계속 자신을 키워 온 소위 '강철의 철학'이지요. 그것을 제 논리 체계에서는 존재론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강화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는 것이지요. 개인이건 집단이건, 국가건 자기 존재를 강화하고 키워내려는 욕구가 근대성의 핵심 원리로 작동해 왔습니다.

거울에 비친 시대, 사람에 비친 시대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근대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이런 패러다임이 근거하고 있는 패권적 질서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강의>라는 책을 냈는데요. 그 책에서 묵자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서로를 계속 흡수 합병하여 덩치를 키워가던 시대입니다. 주나라 말기 수많은 나라로 갈라졌던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며 12개의 나라로 줄어들고, 다시 전국시대에는 7개로 줄어든 뒤 결국 진나라 하나로 통일됩니다. 한 국가의 패권으로 정리가 된 셈이지요.

지금과 닮았습니다. 지금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지향이었던 '부국강병'을 목표로 삼고 사활적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국가의 패권으로 귀결되고 있고요.

진나라의 패권으로 끝난 춘추전국 시대의 치열한 경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혹자는 이런 경쟁을 통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묵자는 그런 이들의 주장을 "만 명에게 약을 썼는데 서너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어버린 것"에 비유합니다. 이런 약을 결코 좋은 약이라 부를 수 없겠지요.

'부국강병'을 목표로 한 치열한 경쟁은 소수의 국가, 결국은 한 개의 국가만 승리자로 남기고 모두를 몰락시켰습니다. 우리는 소수의 승전국에 주목할 게 아니라 다수의 패전국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승전국마저도 종국에는 패망하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상을 지켜본 묵자는 "불경어수(不鏡於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거울이 없어서 맑은 물을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았던 시절입니다. 결국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묵자는 이어서 "경어인(鏡於人)"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물이 아니라 사람에 비추어 보라는 것이지요. 부국강병을 추구하며 전쟁을 일삼는 패권적 질서의 외양은 잠시 화려해 보일 수 있습니다. 거울(물)에 비춰보면 이런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겠지요. 하지만 거울(물)이 아닌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 비춰보면 다른 모습이 나타나겠지요. 전쟁 승리의 혜택을 보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피해를 입은 이들은 압도적으로 많을 테니까요. 아마도 사람에 비추어본다면 전쟁의 그늘에서 피폐해진 삶이 드러날 것입니다.

묵자의 말은 부국강병의 화려한 면모가 아닌,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 시대를 평가하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거울에 비친 화려한 모습이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힘을 과시하며 약소국을 계속 병탄해 가던 국가가 결국 약소국의 연합전선에 부딪혀 무너지는 것을 계속 지켜봤기 때문이지요.

묵자의 "불경어수(不鏡於水)"라는 말은 훗날 유학자들에 의해 "무감어수(無鑑於水)" 등처럼 개인 윤리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바뀌어 갑니다. 하지만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 대신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난 모습을 통해 시대를 파악하라는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남깁니다.

우리가 히말라야 산에 사는 토끼를 닮지 않았는지

산업자본주의는 어쨋거나 가치를 창출하기는 합니다. 물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지요. 비록 그 과정에 투입된 노동력과 자연에 대해 제대로 갚아주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금융자본주의는 가치 창출과는 아예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끊임없이 큰 자본이 작은 자본을 흡수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결코 지속가능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춘추전국 시대와 마찬가지로요.

패권적으로 쌓아올린 부와 영광,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 쌓아올린 공적에 대해서는 이제 보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르가 한 말 중에 "히말라야 산에 사는 토끼가 주의해야 할 점"이라는 게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에 사는 토끼가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크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쪽 문화권에 히말라야 산에 사는 토끼를 지칭하는 '히말라야 래빗'이라는 표현이 있나 봅니다.

우리가 혹시 이런 '히말라야 래빗'을 닮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높은 곳에 서 있는 이가 정말 그 아래에 있는 이들보다 자신이 더 크다고 여기고 있은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반성을 통해 사람들은 겸손해집니다. 또 이렇게 겸손해지면 존재론적 패러다임 속에서 자기 것을 무턱대고 끝까지 추구하는 무식함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 속에서 서로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죠.

하지만 근대 사회는 우리가 계속 "히말라야 산에 사는 토끼"를 닮아가도록 추동합니다. 심지어 자녀를 교육할 때조차 우리는 경쟁력을 강조합니다. 남보다 더 강한 존재로 크기만을 바라는 것이지요. 이런 사회에서 소통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소통의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름이 뭐냐?"…우리 문화의 관계론적 전통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런 것과 달리 굉장히 아름답고 인간적인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관계론적 원리에 따른 인문학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전통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다섯 번째 주제가 이런 것입니다. 먼저 제 감옥살이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대전교도소에서 같은 사건으로 한 30명 정도가 징역살이를 했습니다. 저는 대법원까지 올라갔다가 파기 환송되고, 다시 재판 받느라 좀 늦게 대전교도소로 이소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가 "조금 일찍 왔더라면 고암 이응노 선생님을 만날 뻔 했는데…" 하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이 선생님과 함께 지냈던 분을 찾았습니다. 한 젊은 친구가 감방에서 함께 지냈더군요. 그 친구에게 이 선생님에 대해 물었더니 "괴팍한 노인네"라는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왜냐? 자꾸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쪽 팔리게 말이죠. 교도소에서는 이름을 잘 안 부르거든요. 수번으로 불러요. 저도 제일 잊어 버리지 않는 숫자가 교도소 수번이거든요.

그런데 이응노 선생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이 뭐냐고 묻고 다닌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서 어떻게 번호로 부르냐는 것이죠. 그래서 이 친구가 자기는 응일이라고 대답했더니 "아 뉘집 큰 아들이 징역 들어왔구만" 그러시더래요. 자기가 맏아들이 맞다더군요. 그 친구는 이 선생님에게서 이런 대답을 듣고 밤새 한잠도 못 잤다고 하더군요.

이 선생님 세대의 분들은 사람을 결코 따로 떨어진 개인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들여다 봅니다. 누구의 자식인가. 누구의 형제, 누구의 친구인가라는 틀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관점이 아주 삭막하기만 한 근대의 존재론적 사고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관계론적 원리라 할 수 있지요.

조화와 균형의 예술, 붓글씨에서 관계론적 원리를 찾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제가 붓글씨를 잘 쓰는 편입니다. '처음처럼' 소주도 있잖아요. (웃음) 그 외에도 제가 붓글씨 써서 크게 걸어놓은 게 제법 많습니다. 한문도 잘 쓰고요. 그런데요. 붓글씨, 즉 서도라는 것은 서양에는 없는 예술 장르예요. 제가 서도의 관계론에 관한 책도 쓴 적이 있는데요. 서도는 동양의 관계론적 원리가 아주 잘 녹아 있는 장르입니다.

붓글씨를 쓸 때는 처음에 쓴 획의 각도가 비뚤어졌다고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쓰지 못 합니다. 그 다음 획을 통해 결함을 교정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안 되면 다음 획으로, 또 안 되면 다시 다음 획으로…. 또 글자가 틀리면 역시 다음 글자로 고쳐야 하죠. 한 행의 잘못은 그 다음 행으로 보완하고요. 이런 식으로 고쳐가면서 쓰다 보면 글씨를 쓰는 내내 굉장히 여러 곳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그래서 붓글씨를 쓸 때는 굉장히 긴장해야 합니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전체를 동시에 봐야 하거든요.

그리고 붓글씨 쓸 때 제일 중요한 게 흑과 백의 조화입니다. 굉장히 큰 종이에 조그만 글씨를 쓰면 안 되죠. 조화가 안 되니까요. 저 정도의 수준이 되면 붓글씨 쓸 때 까만 건 안 봅니다. 하얀 게 어디에 얼마나 남았나를 봅니다. 디자인 전공하는 분들이 제가 붓글씨 쓰는 것을 보더니 "선생님은 네거티브 스페이스만 보시는군요"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까만 것과 하얀 것만으로 붓글씨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요. 전체적으로 하나의 글씨가 완성되면 빨간 낙관도 들어가고 정서도 들어가서 최종적인 균형을 이룹니다.

이런 하나 하나가 모여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요. 이것이 동양 미학의 절정이라고 하는 서도의 미학입니다. 글자 한 자, 획 하나 잘 쓴다고 좋은 글씨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런 글씨를 가져오길래 저는 "서구 시민적 질서는 잘 잡혀 있구만"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웃음)

서도는 관계론의 예술인데, 그것은 어떤 배타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란 없다는 생각에 바탕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 공유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단절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지극히 기계적인 곳이 돼 버립니다.

면벽 명상으로 건진 기억…"왜 1월1일을 특별하게 여기나요?"
▲ ⓒ프레시안

또 징역살이 이야기를 할 게요. 제가 징역살이를 20년 정도 했는데, 그중 독방에 있었던 기간을 다 합치니 5년 정도 되더군요. 그 5년 동안 제일 열심히 한 것이 명상, 면벽 명상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오늘의 주제도 소통인데, 그렇게 면벽 명상을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소통된다는 것이에요. 우주의 정보진리체계와 통한다는 것 아닙니까.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솔깃한지 모릅니다. 단전호흡하면서 아주 열심히 해 봤는데, 절대로 소통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명상의 방법을 바꿨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하나씩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기억들까지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이죠. 단지 기억만 떠올리는 게 아닙니다. 당시의 경험을 추체험하면서 나이 든 상태에서 다시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과거에 겪었던 일을 감옥에서 다시 겪어 보면 굉장히 많은 것들을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제가 4살 때부터 기억이 나더군요.

또 굉장히 저와 가깝고 함께 오래 지냈지만 제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잠깐 만나고 말았지만 제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학교에서 1월 1일에 학생들을 소집했습니다. 신년식을 한다는 것이죠. 당시에는 학교에서 그런 행사를 하곤 했어요.

신년식을 마친 뒤 선생님께서 신년을 맞이하는 각오에 대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뻔한 이야기를 했지요. 저도 심부름 잘 하고, 숙제 잘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순서가 중간쯤 가니까 한 친구가 독특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는 공부도 못 하고, 집도 가난해서 별로 주목받지도 못 하고 학교에서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일어서더니 자기는 시간은 원래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인데 굳이 1월 1일이라고 특별하게 여기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교실이 조용해졌어요. 저 역시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요. 물론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죠. "내가 저런 이야기를 할 걸." (웃음)

만약 제게 조금이나마 사색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신년식에서 들었던 강물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곤 합니다.

5년 동안 독방에서 지내며 면벽 명상을 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란 뭐냐? 결론은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 내 속에 들어와 있는 모든 사람들, 내가 겪은 모든 사건들. 이 모두가 나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내가 살았던 사회, 우리 시대의 파란만장한 사건들과 아무런 상관없는 나의 고유한 배타적인 정체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을 살고 있는 시대를 삶 속에 가장 깊숙이 끌어들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가 오랫 동안 진행해 온 근대기획의 결론으로 내면화된 존재론적 문화, 존재론적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자신이 겪은 것이 유일하다고 믿는 데서, 또 자신의 존재성을 강화하려는 데서 모든 대립과 갈등이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여지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물론 존재론적 문화에 기반한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자세를 반성하는 게 먼저라고 봅니다.

우직한 이의 세상 보는 법 배워야…"머리에서 가슴으로 향하는 여행"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여섯 번째 주제는 "2개의 가장 먼 여행"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사회에 태어나서 학습과 포섭에 의하여 기존의 문화와 의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은 기존의 사회의식에 대한 우직한 독법을 키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존의 문화, 즉 근대성과 자본의 원리, 존재론적인 원리에 던져져서 세상의 기존 질서를 부지런히 배우기만 한다면 사회의 변화, 발전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잘 맞추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대로 사회를 자신에게 맞출 수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모두 지혜로운 사람들만 있다면 그래서 누구나 사회에 자신을 발빠르게 맞춰가기만 한다면 사회가 변화할 계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 우직한 사람, 좀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회를 지금보다 인간적인 곳으로 바꿀 수 없을까 하면서 노력하는 가운데 사회는 조금씩 바뀌어 왔습니다.

기존의 사회 의식이 얼마나 편견에 치우친 것인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어떤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깃든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인식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지혜로운 이들이 아닌 어리석고 우직한 이들에게 생겨납니다. 세상에 너무 쉽게 적응하는 이들에게 이런 능력은 필요없는 것이니까요.

우직한 이들이 세상을 보는 법, 기존의 사회의식에 대한 우직한 독법은 원래 언론의 몫입니다. 언론의 역할은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닙니다. 언론의 바른 역할은 이런 우직한 독법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독법으로 세상을 읽어내면서 자신을 완성해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을 "2개의 먼 여행"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에 이르는 여행입니다. 첫 번째 여행은 프럼 헤드 투 하트(From head to heart), 즉 자신의 우직한 독법으로 깨우친 주체적 인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인간적인 애정과 결합시켜가는 과정이지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여린 사람입니다. 제가 실토할 게 있습니다. 몇몇 친구들에게 좀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196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능력 있고 진보적인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그들과 헤어져 감옥에 있는 동안 내내 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참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출소한 직후에 제일 먼저 물어본 게 그 친구들의 근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하나도 없더군요. 다들 출세했더군요. 그 대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별 능력 없어 보였던 친구들, 사명감이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참여했던 이들, 그런 사람들이 남아 있더라고요.

제게는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징역을 살아 놓고도 사람에 대해 이렇게 모르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예술품으로 빚어내는 사회…"가슴에서 발로 향하는 여행"

또 하나의 먼 여행은 가슴에서부터 발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발에 도달한다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의 인성 고양뿐 아니라 동 시대의 가장 많은 이들이 고뇌하는 현장에 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슴이 나무라면 발이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회는 한 인간이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르는 여행을 해나갈 수 있도록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제일 좋은 사회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그 속의 사람들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훈도해주는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편달은 어떤 사람을 걸어가게 하고, 그 라인에서 일탈하면 그것을 채찍질해서 바로 서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훈도는 큰 가마에 집어넣고 따뜻하게 구워낸다는 뜻입니다. 편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지요.

이런 훈도는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사회적 문화가 성숙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를 누가 만들까요. 인문학적 가치도 소멸되고 그 자리에 화폐 가치라는 계량적 가치가 들어서 있는데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할은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집단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뢰집단이 없는 사회는 매우 불행한 곳이지요.

언론이 신뢰집단이 될 수 있으려면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일곱 번째 주제는 이런 신뢰집단과 언론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신뢰집단의 역할을 해야 할 곳이 바로 언론입니다. 언론은 진실과 비판을 본령으로 합니다. 진실은 사실의 창조적 구성이며 이런 창조는 당대 사회의 과제를 중심에 둔 비판적 기능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비판은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우직한 실천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기관이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에 충실해야 사회 일반의 신뢰를 받는 신뢰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신뢰 집단은 소통의 중심이며 이항대립의 극단적 갈등을 지양하는 주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뢰는 사회성의 핵심이며 그 자체가 가치입니다. 고난을 견디게 하는 것은 희망이고 희망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최근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한 프로슈머의 개념이 언론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언론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나뉘어 있는 구도 속에서 언론권력이 자신들이 조직한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프레시안〉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처럼 독자들은 더 이상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프로슈머, 즉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존재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이들과 언론의 쌍방향 소통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새로운 사회 문화를 어떻게 키워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프레시안〉을 포함한 언론의 숙제가 될 것입니다.

앞서 언론의 본령이라고 이야기한 진실과 비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단순한 사실은 작은 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닷물을 그릇으로 뜨면 그 그릇에 담긴 것이 바닷물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바다라는 진실을 이야기하지는 못 합니다.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얘기한다고요. 그것은 거짓말이지요. 어떤 사실을 헤드라인으로 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수용자에게 관여할 수 있습니다. 사상은 선택입니다. 수많은 사상 중 어느 것을 선택해 그 선택된 사실이 어떤 발언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언론 권력이 해 온 역할이었습니다.

언론은 사실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사실을 진실로 창조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캐물어야 합니다. 사회를 우직하게 읽고 그래서 조금씩 바꿔내는 비판적 기능을 가지고 사실을 새롭게 선택하고 구성하고 조직하여 진실을 창조해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여럿이 함께" 모인 지혜의 힘

언론의 역할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사례로 프란시스 골튼이라는 통계학자이자 유전학자가 겪은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시골 장터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황소 한 마리를 무대에 올려 놓고 그 소의 몸무게를 맞추는 퀴즈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얼마씩 낸 뒤, 각자 소의 몸무게를 종이에 적어 통에 넣고 제일 가깝게 맞춘 사람이 각자가 낸 돈을 모두 가져가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골튼이 지켜보던 날은 800명이 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소의 몸무게를 얼마나 맞출 수 있을까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아마 아무도 못 맞출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통을 열어 확인해보니 정말 맞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걸 조사해보니 13명은 무엇을 적었는지 판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걸 빼면 787장이 남는데, 거기에 적힌 숫자들을 다 더해서 다시 787로 나눴더니 1197파운드라는 숫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소의 몸무게가 얼마였는지 아세요. 1198파운드였습니다.

어쩌면 소의 몸무게가 1197파운드였는지도 모르지요. 저울이 틀렸을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을 보고 프란시스 골튼은 크게 뉘우쳤습니다. 단 한 사람도 맞추지 못 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니까 정확한 몸무게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이죠. 언론도 얼핏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대중의 지혜를 모아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요즘처럼 쌍방향 소통이 발달한 인터넷 시대에는 더욱 그렇지요.

제가 감옥에서 나와서 붓글씨로 처음 쓴 내용이 "여럿이 함께"였습니다. 다들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한글 액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잘 아는 후배 교수 한 사람이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어요. "여럿이 함께"라는 말에는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는 것이지요. "여럿이 함께 어디로 가자는 거냐. 그건 방법이지 목표가 없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제가 글씨 아래에 방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고요. 여럿이 함께 가야 할 목표는 이렇게 생겨난 길 위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목표는 길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특히 언론은 이런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대중은 잘 알아요. 아무리 강조하고 크게 활자를 뽑아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그 소의 몸무게가 1197파운드인 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때 대중에게 소의 몸무게가 1197파운드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언론은 비로소 신뢰받는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아래로 손내미는 연대…사회 통합은 강물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 신뢰받는 집단이 있습니까. 대학? 대학교수? 전혀 신뢰받지 못 합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 안 끼는 곳이 없어요. 최근 바다이야기 사태에는 끼어들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정치권, 종교계, 법조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신뢰집단이 없는 사회는 이항대립만 남아 있는 사회가 됩니다. "가위와 바위만 있는 가위바위보"가 됩니다. 보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낳기 마련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신뢰집단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보이는 모습이 어떤 것이지요. 상대방을 흠집 내서 자신이 신뢰 받으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엄청난 내부 소모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소모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인간이 사회 속에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언론이 담당해주길 바랍니다. 이런 역할이 제대로 이뤄질 때 진정한 사회통합도 가능해지겠지요.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의 여덟 번째 주제는 사회통합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가장 절실한 아픔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관대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관대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입니다. 오만한 사람들을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자신보다 강한 이들에게는 결코 오만하지않습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관대한 사람인지 오만한 사람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보다 약한 이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사회 통합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자리에 설 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강물을 닮아야 합니다. 사회 통합은 강물처럼 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은 항상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바다가 됩니다. 가장 큰 물, 가장 낮은 물. 그것이 바다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니까 이름이 '바다'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래로 손을 내미는 연대를 하방연대라고 부릅니다. 한 사회의 역량은 내부 소모를 줄이고 통합의 외연을 확대함으로써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통합은 낮은 곳, 약한 자와 연대해 나가는 하방연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반면 이처럼 아래를 향하지 않는 연대나 통합은 매우 위험합니다. 자신들보다 강한 세력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불안에 바탕한 연대는 자칫 자신들보다 약한 세력에 대해서는 매우 오만한 모습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는 통합과 연대는 추종이나 야합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찰의 힘에서 비롯된 당당한 자부심

오늘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주제는 '성찰과 양심, 그리고 주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언론 매체를 대할 때 그냥 한 번 보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언론은 사회의 빠른 변화를 쫒아가며 표면의 출렁거림만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언론의 역할은 '사실 보도'가 아니라 '진실의 창조'입니다. 그리고 사실 보도를 넘어서 진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문화를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성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역사 상 대표적인 성찰론자를 꼽으라면 장자를 들 수 있습니다. 장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개구리와는 바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메뚜기와는 얼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개구리는 우물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고, 메뚜기는 한 철밖에 살지 못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성찰은 바다와 얼음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지엽적인 한계에 갇혀 바다와 얼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개구리나 메뚜기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을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큰 시야에 바탕한 성찰을 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또 양심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적으로 조금 더 잘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인간적인 자부심, 자존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부심과 자존심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자부심과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를 끝으로 오늘 강연을 마칠까 합니다.

또 감옥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우리 방에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신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주는 수의만 입고, 알루미늄 식기 2개와 숟가락만 갖고 들어온 거예요. 심지어 런닝 셔츠도 입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참 딱해서. 치약도 좀 나눠주고 런닝 셔츠도 하나 벗어줬거든요. 그랬더니 필요없다면서 바로 거절하는 거예요. 표정도 어둡고 말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이상한 놈이라고 했어요.

이튿날 세수할 때 제가 다시 치약을 좀 나눠줬거든요. 그랬더니 "필요없다니까요"라고 하면서 세탁비누를 집어서 그걸로 양치질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 보는 데서 나눠주려던 제 행동이 좀 부족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새 치약을 하나 따로 사서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줬어요.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 다 듣게 큰 소리로 "필요없다고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랬는데 한 달 후에 제게 다가오더니 "선생님, 치약 하나 사줄 수 있어요? 선생님한테는 받아도 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받으면 안 그래도 좁은 잠자리를 제가 또 양보해야 하잖아요"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친구는 사람이 역경 속에서 살아갈 때 약간의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는 게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떳떳하게 자부심과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게 어려움을 견디는 데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 친구는 저처럼 개념어로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실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것이지요.

자부심을 키우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언론이 앞장서야

이런 자부심과 주체성을 키워주고 존중해주는 사회, 다양성과 인간적 가치가 존중받는 문화는 이런 사회적 토양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토양을 만들어 가는 데 언론이 앞장서야 합니다.

더구나 〈프레시안〉과 같은 인터넷 매체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일방적으로 주장을 전달하기만 하는 매체가 아닌 까닭에 이런 역할을 담당하기에 더욱 제 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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